'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 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은 지난 달 27일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세습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는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짜사장 공동행동은 하도급 및 간접고용 구조로 인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삼성·SK·LG·태광·딜라이트(구 C&M) 등의 통신·전자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이 모인 연대단체입니다. 이들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재벌문제 해결 없이 풀리지 않는다"며 "편법·불법 세습 찬반투표로 심판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내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조돈문 상임대표가 삼성그룹의 3대 세습 경영 문제에 침묵하지 말 것을 제안하면서 아래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남북한 권력의 3대 세습이 한창 진행 중이다. 북한의 국가권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남한의 시장권력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남북이 명실공히 왕조시대로 퇴행하는 형국이다.

남북한 권력의 새로운 정점을 구성하게 된 김정은과 이재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이 닮았다. 그들은 3대 세습의 상속자라는 점 외에도 막강한 권력의 독재자가 되었다는 점, 구성원들에 의한 선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 통치·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 권력 이양 과정이 인권유린을 수반하며 불법·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정당성 결여한 권력 획득 과정은 권력의 구조적 불안정성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 그들의 권력은 범죄 카르텔의 기획과 지배블록의 엄호 속에서 유지·행사된다는 점 등 거의 일란성 쌍생아 수준으로 서로 빼닮았다.

▲ (왼쪽부터)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타파 캡쳐

3대 세습이 북한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진전되어 거의 완료된 상황이지만, 남한의 경우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충직한 언론은 이미 ‘이재용 시대’로 호명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심근경색 입원으로 2세 이건희의 퇴진은 엉겁결에 시작되었고 이후 2년의 시간이 경과하며 3세 이재용의 승계는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지배 블록의 비호로 3대 세습은 불법·탈법과 함께 추진될 수 있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발달된 시민사회로 인해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 여론을 무시하기 쉽지 않다는데 남한사회의 차별성이 있다.

삼성그룹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앞세워 수출총액과 주식시장의 20% 수준을 점하는 거대 권력 집단으로 성장하여 시장경제는 물론 정치사회와 법질서까지 좌지우지하는 존재가 되었다. 삼성그룹은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지배경영권의 독점·세습과 무노조경영 방침을 위해 노동기본권을 유린하고 법질서를 농단해왔다. 그렇게 이건희 체제는 경제적 성공의 신화를 쓰며 불법행위와 인권유린의 어두운 그늘과 함께 구축되었다.

2세 퇴진과 3세 승계가 진행된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에도 삼성그룹은 거듭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 사진=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제공

1990년대 말 주식형 사채를 헐값에 발행하여 이재용 남매에게 몰아주면서 사회적 지탄 속에서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던 삼성SDS와 에버랜드는 2014년 11월과 12월 차례로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막대한 차익을 이재용 남매에게 안겨주었다. 뒤이은 제일모직(구 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1 대 0.35 비율로 추진되어 삼성물산의 총 자산가치 30조원은 29%로 저평가되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자문기관들의 반대의견과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사회단체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합병에 찬성투표를 던짐으로써 감사원 감사 등 진상 규명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성신약 등 일부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5월의 2심 판결은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었다고 판단함으로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의 불법성과 총수일가의 숨은 의도가 다시금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는 이재용의 0.57%라는 작은 삼성전자 지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재용 남매의 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을 상대적으로 고평가함으로써 제일모직이 지배하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물론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까지 통제함으로써 3세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입원했던 2014년 5월 삼성전자는 백혈병 등 산업재해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반올림과의 교섭을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올림과 피해자들의 사과, 보상, 재방방지책의 요구에 대한 삼성의 자의적 처리 입장은 그대로다.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그룹 전자·전기 계열사의 백혈병 등 직업병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금년 초에 이미 100명을 넘어섰고,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반올림 노숙투쟁은 10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또한, 세계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면서도 삼성전자서비스는 AS기사들을 사용하며 직접고용하지 않고 임금·단체협약의 직접교섭도 회피하는 한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서도 바지사장의 협력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에버랜드에서 민주노조 결성 움직임을 포착하고 2011년 6월 민주노조보다 한 달 먼저 어용노조를 조직한 다음 민주노조가 결성되자 부지회장 해고 등 노조간부들에 대해 징계조치를 내렸다. 이후 모두 법정에서 부당해고 혹은 부당노동행위 등 사측 유죄 취지의 판정을 받았지만 원직복직 등 법원 판결은 집행하지 않고, 삼성물산은 지난 5월부터 새로운 해고·징계 조치들을 재개했다.

이처럼 소위 ‘이재용 시대’에도 지배경영권의 3대 세습을 위한 불법비리와 노동자 생명과 노동기본권을 유린하는 노동탄압은 현재진행형이다. 2세 이건희 퇴진은 삼성그룹이 이건희 체제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고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계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3세의 합리성과 비전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렇게 변화를 거부하는 삼성재벌의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4월 특검과 유죄판결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총수일가의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차명계좌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었지만, 총수일가는 그룹위기를 강조하며 경영일선에 복귀했고,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복원되었고, 차명계좌 재산의 사회 환원은 아직껏 이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총수일가의 복귀 명분으로 주창되었던 5대 신수종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결국 2세 이건희의 대국민 사과성명은 그룹 위기와 구속 수감을 모면하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는 지난달 29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3대 경영세습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커스뉴스

삼성재벌 총수일가는 급변하는 세계시장 정황을 강조하며 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에게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촉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완강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결국, 2세가 퇴진해도, 관리자만 바뀔 뿐 ‘이건희 없는 이건희 체제’는 지속되고 변화는 없다.

삼성재벌의 변화가 어려운 것은 3세 개인의 의지 문제를 넘어 총수일가의 불법비리를 기획·집행하는 범죄 카르텔과 이를 비호하는 지배블록의 존재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개입이 절실하며. 삼성그룹의 3대 세습 문제부터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지회 등 삼성그룹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이 삼성재벌의 3대 세습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이유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묻는다, “왜 북한의 3대 세습은 비판하면서, 삼성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삼성재벌의 3대 세습에 대한 찬반투표는 삼성의 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사회적 개입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호소드린다.

* 삼성 이재용 3대 세습의 찬반투표에 참가하실 분은 다음 링크(http://samsungvote.com)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찬반 투표를 받는 모습. 사진=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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