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용산 주한미사령부의 현충일 행사. 주한미사령관 게리 럭(Gary Luck)은 좀 쉰 듯한 그러나 날카론 음성으로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해 이바지했고 이제 유일한 군사강국이며…”라는 연설을 했다.

KBS <일요스페셜 ― 주한미군>(연출 박정용)은 이 행사장면부터 시작된다. 촬영팀은 주한미사령부 공보실에 취재공문을 보내고 예하부대의 의견청취 과정을 거친 다음 미군 쪽 안내원 한 사람을 동행한다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촬영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박PD는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다시 잡고 씨름하기 위해 그들의 안방을 엿보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빠듯한 일정에 강행군이 시작됐다. 미보병 2사단, 55 방공포 대대, 아파치부대, 비무장 지대
의 캠프 보니파스, 오산공군기지, 주한미해군사령부 그리고 송탄 기지촌.

우선 그들이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한국까지 온 이유를 알아야 했다. 어느 부대에서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브리핑을 받고 있는 신병에게 “왜 왔는가” 물었다. 그 중 노랑머리가 “북한의 침략을 막고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왔다”고 답변을 했다. 다른 흑인은 “한국 오기 싫었다”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다. 다시 “한국의 학생들이 반미를 외치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일순 그들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이해할 수 없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다니”라고 분노의 감정을 표시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환경은 최근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이 한 테이블에 마주앉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한미관계만은 주한미군과 한미행정협정(SOFA)이 건재한 것처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그 변함없음을 촬영팀은 계속 확인하게 됐다. 최초로 우리나라 화면에 그 모습을 드러낸 주한 미해군사령부는 전쟁발발시 진해에 주둔하고 있는 해군뿐만이 아니라 오키나와, 클라크, 괌에 주둔하는 태평양 사령부 소속의 해군을 다 동원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위용이 조금도 빛바래지 않은 채 빛나고 F 16, F 15, A 10 전투기가 어느 작은 마을의 밭 위로 낮게 날아갔다. 위성중계를 통해 목표물에 정확하게 폭격을 가할 수 있는 브래들리 장갑차와 신형 애이브러험 탱크만을 보면 냉전의 해체와 상관없이 주한 미군의 역할은 점점 더 강화되는 인상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한국측, 미국측 장군과 군간부가 똑같이 근무를 하고 있지만 언제나 지시를 하는 쪽은 미국이었고 그것을 충실히 받아 이행하는 쪽은 한국인 것도 변함이 없었다. 촬영은 자주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촬영기간 중 미군의 부녀자 성추행과 폭력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촬영팀은 촬영이 중단된 사실보다 우리나라의 처지에 대해 더 서글퍼해야 했다. 성추행을 한 미군이 대충 수사가 마무리되면 SOFA의 상징인 오산공항터미널을 통해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유유히 한국을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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