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퇴근시간, 아수라장 된 대한민국 심장부’

조선일보 7월8일자 기사 제목이다. 7월6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1만4000명(경찰 추산) 노동자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아수라장’이라 표현한 것이다. 어딘가 익숙하다. 집회·시위를 비판하는 보수언론의 익숙한 문법이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이날 집회가 끝난 후 3000여명의 노조원들은 밤늦게까지 서울광장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농성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깔고 앉아 김밥·어묵 등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일부 시위대는 금연 구역인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인도에서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시위가 마무리된 이날 자정쯤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인도에는 빈 소주병과 김밥 포장지, 담배꽁초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7월8일자 기사.
‘교통지옥’ 또한 집회를 보도하는 보수신문의 익숙한 문법이다. 조선일보는 “교통지옥은 시위가 끝날 무렵인 오후 6시쯤, 퇴근 시간대와 맞물리면서 시작됐다”, “버스들이 노조원들을 태우기 위해 1시간가량 대기하면서 도로에는 400m가량의 버스 띠가 생겼다”, “서울시청 맞은편 서울시의회 앞 도로에도 전세버스 10여대가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차지하고 차벽을 치고 있었다”며 퇴근길 직장인들의 분노를 상세히 소개했다.

익숙한 문법에 집회 당사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전국건설노조는 8일 성명을 내고 “6일 아침부터 기자들 전화가 빗발쳤다. 핵심은 충돌·마찰이었다. 마치 폭도들이 떼로 몰려올 것처럼 기대하는 듯했다”고 밝혔다. 언론이 처음부터 집회의 취지나 노사 갈등 원인보다는 충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보수신문 취재기자들의 경우 충돌이나 시민 불편 등에 초점을 맞춰 취재현장에 나서라는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건설노조는 “우리는 어리석을 정도로 참고 살았다. 저놈이 떼먹고 이놈이 등쳐먹어도 못 배운 죄 탓하며 소주 한 잔 털어넣고 쓰린 속 달래가며 참았다. 하지만 건설현장 노동조건은 끝을 모르고 막장으로 치달았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투쟁했다. 그러나 건설노조 투쟁에 담긴 한과 응어리는 온데간데없고, 기자들은 오로지 충돌만 쫓더니 결국 평화로웠던 집회 후 청소 건으로 사회면 전면 보도를 장식했다”고 비판했다.

건설노조는 “요즘 집회하면서 청소하는 건 기본 센스다. 집회 후 청소차량을 동원해 청소했다. 이런 걸 해명해야 한다는 게 슬플 정도로 말끔했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이어 “이 기사를 쓴 기자들의 양심에 묻고 싶다. 그날 시청광장에 모였던 건설노동자는 모두다 임금을 제때 못 받는다. 당신들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조선일보에서 이번 달 월급을 안 주고, 2~3개월 밀려서 주고 때때로 떼먹는다면, 하루 2명씩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죽어간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8일자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를 ‘오늘의 나쁜 신문 보도’로 선정했다. 민언련은 “이 보도에는 정작 집회를 하는 이들의 요구조건이나 실제 집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가 담겨있지 않다. 이번 집회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요구한 것은 원청 건설사 직고용을 통해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해 잦은 타워크레인 재해 등을 막자는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해당 업종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주장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민중총궐기를 비롯해 각종 집회현장에 대해 그간 조선일보는 ‘집회를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비난을 위한 기사를 써 왔다. 심지어 이 기사들은 날짜, 집회 이유, 집회 단체가 다 달라도 전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며 “제발 자기복제는 그만 좀 하고 취재를 하라”고 꼬집었다. 이날 조선일보 기사는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 하는가”라고 말했던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떠올리게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