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하는 것이지만 시사개그가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개그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유를 개인들에게 원인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KBS 제 31회 개그 공채 최종 시험이 열렸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개성 있는 이들은 없었고, 무엇보다 시사개그를 구사하는 이들이 1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고 한다. 그 한 명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고 한다. 시사개그 종족이 멸종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없어진 이유가 의식이 없기 때문일까. 그것은 방송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담당 PD들이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KBS2 <개그콘서트> ‘1대1’ 코너

이날 개그맨 공채 심사에 참여한 한 PD는 심사를 끝내지 않고 경찰서에 갔다. 개그맨 이상훈이 검찰에 고소를 당했기에 이와 관련해서 경찰조사를 받아야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어버이연합이 제기한 명예훼손(형법 307조) 고소 때문이었다. 고소 이유는 KBS2 ‘개그콘서트’의 ‘1대1’ 코너에서 말한 대사 때문이었다. 개그맨 이상훈이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한 자답이 문제였다. “계좌로 돈을 받기 쉬운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어버이연합”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문제가 되었다. 개그맨 이상훈은 “어버이연합은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을 받는다. 전경련에서 받고도 입을 다물고 전경련도 입을 다문다.”라고 했던 것. 이에 대해서 어버이연합은 모멸감과 명예 타격을 주었다며 고소했던 것이다. 즉, “연예인으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가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공연한 모독과 조롱으로 어버이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시킴으로써 어버이날을 맞은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단체의 명예에 타격을 입혔다”라고 고소이유를 밝혔다.

이상훈만이 아니었다. 유병재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 1분짜리 패러디영상을 문제 삼아 어버이연합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역시 검찰에 고소했다. 방송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인터넷 SNS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물론 예술창작의 자유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해당 개인들에게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도 맞닿아 있다.

이렇게 고소를 남발 하게 되면 그 결과와 관계없이 창작 행위들이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웃음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개그는 고사하고, 시사 개그 소재 자체에 대해서 법적인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피곤하고 부담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다루고 싶은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때문에 이같은 구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이나 정치세력이 있어 온 이유다. 무엇보다 그것은 결국 시민들이 보고 싶은 개그를 침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방송콘텐츠 자체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행태이기도 하다.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방송 내용이 재미가 없어지고 만다.

실제로 지난 3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경우, 시청률 9.5%를 기록해 지난 5월 1일 8.5%에 이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개그콘서트가 20%대의 시청율의 고공행진을 하던 시절은 이제 꿈같은 옛날이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풍자개그가 사라진 것만이 아니다. 그나마 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라디오인데 심각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다. 2000년대 정치 풍자쇼를 견인해던 SBS 러브FM ‘배칠수,전영미의 와와쇼’는 2010년 폐지되었고, 이 프로와 쌍벽을 이루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최근 전격 폐지되어 14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진행자 최양락은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 그동안 사실상 시사 풍자도 못하던 식물방송에서 이제 멸종 수순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TBS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도 지난 3월 방통위에서 행정지도 제재를 받았다. ‘백반토론’이라는 꼭지에서 정부정책을 풍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도를 내리게 된 배경은 “지나치게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는 민원에 따른 것이었다. 방송심의소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제5호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해선 안 된다”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의견제시 제재처분이 있었다.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는 작년에 메르스를 다뤘다는 이유로 방통위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볼 수도 없었다.

▲ TBS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
방송사 내부의 압박은 물론이고 사회단체 그리고 국가기관까지 정치 혹은 시사 개그에 대해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로 열정이 있는 개그 지망생들이라도 개그 소재를 다루기 힘들 것이다. 이는 개성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정치의식의 부재 탓도 아니다. 방송이나 언론의 환경은 물론 디지털 공간 자체도 정치 개그는 물론 시사개그도 시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암암리에 강고하게 작용하는 정부 비판 금지 불문율은 창조를 억압한다. 하지만 이는 모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를 지향한다면 오히려 자유로운 풍자와 비판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숟가락을 얹고 있는 한류만 해도 그렇다.

며칠 전 26억 뷰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한류를 일으킨 것은 재미와 웃음 여기에 약간의 사회 풍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한류를 진흥한다면서 한쪽으로는 풍자를 위축시키고 있으니 한류가 헐벗는 걸그룹에 치중하게 되어 쇠퇴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건전한 비판과 풍자는 한류콘텐츠의 질을 높여준다. 비판적 풍자와 해학을 배격하는 환경이라면 품격 있는 엔터테인먼트 예능 프로그램의 도약은 요원할 것이다.

이는 비단 개그프로그램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웃자고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까지 압박이 온다면 진지한 메시지의 보도나 교양 다큐는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인지 그야말로 끔찍하다. 우민화를 넘어 동물이 되는 먹방 푸드 포르노나 신파드라마나 봐야 하는 상황이니, 이는 억지로 편중된 콘텐츠에 사육당하는 셈이다. 그나마 한국의 대중문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왜 다양해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처럼 곧 획일적인 방송과 문화콘텐츠환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콩 영화의 몰락 같은 일이 벌어질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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