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간, 인터넷게시물이 마구잡이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팀이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국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총선 기간 삭제한 게시물은 1만7101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가 직권으로 삭제요청한 게시물이 1166건이며, 서울 및 각 지역선관위가 삭제한 게시물은 총 15935건이다. 

미디어오늘은 우선적으로 중앙선관위의 삭제자료 1166건을 전수조사했다. 중앙선관위의 인터넷 게시물 삭제내역을 공개하는 건 최초다. 정당이나 후보자가 공직선거법을 악용해 비판을 봉쇄하고, 선관위가 과도하게 게시물을 삭제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나경원 비판 게시물 ‘192건’ 삭제

총선기간 후보자를 비판하는 게시물 중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에 관한 게시물이 가장 많이 삭제됐다. 관련 삭제 및 블라인드 건수는 192건에 달해 중앙선관위가 총선기간 삭제한 전체 1166건 중 6분의 1을 차지했다. 이 중 1건이 ‘비방’을 했다는 이유로 삭제됐으며, 다른 191건의 게시물은 자녀 부정입학 등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 및 블라인드 처리됐다.

“장애인 전형 반짝 생겼다가 없어진...의혹 해명할 차례.” “나경원 의원 딸 입학 후 장애인 전형 폐지.” 삭제된 게시물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뉴스타파의 ‘나경원 의원 자녀 부정입학 의혹’보도 중 “나경원 의원의 딸이 성신여대에 합격한 이후 같은 전형의 합격자가 없었다”고 밝힌 내용을 언급하면서 “전형이 사라졌다”는 표현을 쓰면 허위사실이라는 것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총선기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삭제요청한 인터넷 게시물이 비판한 후보자 상위 10명. 지역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제외한 수치.
엄밀히 따져보면 합격자가 없을 뿐 전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틀린 건 맞지만 맥락상 명백한 허위라고 보기 힘들다. 또한 삭제된 대부분의 글이 부정입학 의혹 자체를 비판하거나 나경원 의원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전형의 존폐여부’는 핵심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나경원 의원측이 일부 사실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게시물 전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 삭제돤 MLB파크의 게시물.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지워졌다.
문제가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로 삭제된 경우도 있었다. 3월19일 삭제된 MLB파크의 댓글은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라고 나경원 의원의 딸이 면접 중 발언한 것)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고 밝혔을 뿐인데 삭제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부 게시물의 삭제 배경에 대해 묻자 “잘 알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트윗.
나경원 의원은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하기도 했다.  여기에 포털 댓글, SNS글, 커뮤니티글, 블로그글 등을 대거 삭제 및 블라인드한 것을 포함하면 사실상 인터넷에 올라오는 의혹을 전방위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공직선거법상 게시물 삭제제도가 특정 의원이나 정당의 비판봉쇄를 위한 도구에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삭제된 게시물이 직접적으로 비판한 인물이 소속된 정당을 분석한 결과 새누리당(343건), 더불어민주당(201건), 국민의당(84건), 무소속(22건)순으로 나타났다. 정의당 의원의 경우 심상정 의원에 대한 비방 게시글 1건을 제외하고는 삭제된 사례가 없었다. 새누리당 외에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자나 정당 차원에서 비판 게시글에 대한 삭제 요청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총선기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삭제요청한 인터넷 게시물이 비판한 후보자가 소속된 정당. 서울 및 지역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제외한 수치.

비방도 삭제, 여론조사는 언급도 마라?

허위사실보다 판단하기 모호한 후보자 비방도 삭제 대상이 된다. 181건이 “후보자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3월9일 네이버 뉴스 댓글 중 윤상현 의원에 관해 “전두환 장군 청와대 있을 때 딸과 결혼해서 대통령 사위로 사시다가 (중략) 이혼하고 돈 많은 재벌가 롯데사위로 갈아타시고”라고 쓴 댓글은 허위사실은 아니지만 후보자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유승민 의원의 얼굴을 ‘내시’에 합성한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린 유저들의 게시물 10여건이 삭제되기도 했다. 정치인을 풍자한 이미지지만 선관위는 이를 ‘비방’으로 본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비방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고, 이를 참고해 집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비방’의 특성상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갈 여지는 여전히 크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유승민 의원 비방 트윗.
더욱 황당한 일은 이용자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올린 게시물이 대대적으로 삭제됐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가 삭제한 게시물 중 두 번째로 많은 368건이 여론조사 관련 항목을 위반했기 때문에 지워졌다. 여론조사를 조작해서 걸린 사례는 없었다. 이용자에게도 언론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 공표에 관한 사항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다.

“2013년 대중이 안철수에게 바랐던 점. ‘여당 52 vs 야당 48% 구도를 깨고 안철수 본인이 새누리를 분열시켜 여당 42 vs 야당 58% 구도를 만들길 염원한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안철수의 모습. 여당 42vs 더민주 28% + 국민의당 9% 정의당 4%를 만든 형국.”

▲ 여론조사에 관한 사항 위반으로 삭제된 네이트댓글.

▲ 언론보도 내용을 단순히 캡처해서 공유했지만 여론조사 공표에 함께 명시해야 할 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지난 3월 이 같은 네이트 댓글이 삭제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발표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고지해야 할 최초 공표 보도출처 매체명과 발행일자 등을 적시하거나 표본, 오차 등에 대한 설명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선관위는 TV뉴스에서 여론조사 발표화면을 캡처해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도 어김없이 삭제요청을 했다. 캡처화면에 여론조사 공표 때 함께 고지해야 할 항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해당 네이트 댓글은 여론조사 결과공표라기보다는 현재 정치지형을 대략적인 지지율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커뮤니티 글의 경우 여론조사 결과를 지인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지항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손지원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언론에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이용자에게 요구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4년 전 게시물을 20대 총선 선거법으로 삭제?

게시물 삭제 요구는 어디든, 언제든 사실상 걸면 걸린다. 이번 조사에서 삭제 대상이 된 사이트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 뿐 아니라 MLB파크, 루리웹 등 커뮤니티,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 해외 SNS등이 포함됐다. 특히 중앙선관위가 게시물을 삭제한 사이트 상위 10곳 중 가장 많은 삭제가 해외사업자인 트위터(281건)에서 이뤄졌다. 페이스북(65건)도 6위를 차지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총선기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삭제요청한 대상 사이트 상위 10곳. 서울 및 지역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제외한 수치.
해외사업자의 경우 어떨 때는 사업자에게 공문을 보내 삭제요청을 하고, 어떨 때는 이용자에게 직접 댓글을 쓰거나 메시지를 보내 삭제요청을 하는 등 절차가 일관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해외사업자의 경우 직접 공문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댓글을 달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식으로 직접 삭제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 3월28일 공문으로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때 업무협조가 된 것으로 이후엔 공문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지난 4월 삭제요청을 보면 또 다시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집행했다.

▲ 페이스북 게시물의 경우 최초 작성 및 공유현황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원혜영 의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현황파악 자료.
삭제 대상에 대한 기한이 정해져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2012년 7월2일 김X봉씨가 작성한 페이스북 게시글이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담았다는 이유로 올해 3월 삭제됐다. 중앙선관위가 20대 총선 기간 삭제한 게시물 중 11건이 2015년 이전에 작성된 게시물이다. 선관위는 법으로 삭제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면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전 게시물을 마구잡이로 보는 건 아니고 최근 다시 공유가 돼 논란이 일자 민원이 들어와 삭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선관위 논리대로라면 10년 전 게시글도 삭제대상이 된다.

게시물 내용 뿐 아니라 이용자 계정 이름이 문제가 돼 삭제된 경우도 있다. ‘돌무성 유승민 안티’라는 계정을 쓰는 트위터리안은 3월28일 ‘실명등의 허위표시 위반’을 이유로 삭제요청을 받았다.

형식적 소명절차, 이의제기 ‘0건’

물론, 이용자들은 소명을 할 기회가 있지만,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실제 20대 총선 때 전국 선관위가 삭제한 전체 게시물 1만7101건 중 이의제기 건수는 단 한건도 없었다. 결국 이용자에게 삭제요청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인데, 선관위는 “우리가 이용자에게 전달이 됐는지 확인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선관위가 삭제요청 사유를 추상적으로 작성한다는 점도 문제다. 선관위는 지난 4월1일 작성된 “최경환 총선에서 세월호 관련 말실수 하다” 게시글을 20대 총선 유세 중에 한 말이 아닌데 20대 총선 유세발언처럼 묘사했다는 이유로 ‘허위사실’로 분류해 삭제했다. 그런데 요청공문엔 사유를 ‘최경환 총선에서 세월호 관련 말실수 하다’로 썼다. 

이런 식으로 삭제 사유를 게시물 내용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업자 입장에선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힘들다. 선관위 관계자 역시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업체 관계자는 “우리에게 판단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선관위에서 불법여부를 판단해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체적으로 이의제기하지 않고, 따른다”고 말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삭제 및 이의신청 현황. 이의신청이 1건도 없다.
해외 SNS 서비스 게시물을 삭제할 때처럼 선관위가 직접 삭제요청을 하는 경우 이용자에게 별도의 소명기회가 있다는 점을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선관위의 댓글과 메시지를 보면 ‘허위사실’ 또는 ‘비방’을 이유로 삭제를 해야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처벌된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손지원 한국인터넷투명성보고연구팀 변호사는 “욕설이나 비방이 문제가 있다면 따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데 모든 걸 선거법 위반으로 처리하고 있다”면서 “조금이라도 문제 있으면 허위사실로, 사실을 적더라도 비방으로 처벌할 수 있어 선거기간 표현의 자유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사항은 사법기관이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선관위가 임의적으로 법을 해석해 집행하는 것은 개선해야 하는 문제”이라고 덧붙였다.

자료정리=김준호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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