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걸어가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다. 놀이터 바깥으로 떨어진 공을 지나가던 어른이 주웠다. 그 어른은 공을 한 번만 던져봐도 되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좋다고 했고, 그는 아주 잠깐이나마 투수가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법 밝은 표정을 짓던 아이들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그가 있는 힘껏 공을 던졌고, 그 공을 그 아이는 도저히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표정을 읽은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평소에 야구를 좋아했고 공을 무척 던져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자신의 상대가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거나 잠시 잊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계속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하겠다고 우기면 아이들은 곤란한 걸 넘어 거세게 항의할 것이다.

며칠 전 우연히 본 이 광경은 지금 현대카드가 만든 음반 매장 바이닐&플라스틱과 음반 소매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과 흡사한 점이 많다. 기존 소매점을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라고 비교하면 억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자본력에 관한 비교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배트를 민첩하게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없는 동네 꼬마들을 빠른 공으로 제압하듯, 큰 자본을 가진 기업은 자금 여력이 적은 작은 자영업자들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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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야구에 강속구 투수 등판, 누구든 투수 교체 요구하지 않을까”

덩치가 크다고 해서 어른들이 모든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에게 물리적으로 위협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위협이라는 것은 결국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인 경험이나 트라우마에서부터 뉴스에 오르내리는 끔찍한 기사들이 주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위협감과 공포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한국의 상당수 대기업들이 그간 해왔던 일들을 직간접으로 체험해 온 자영업자라면 대기업이 자신과 같은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리고 그 영향력이 매출 감소라는 현실로 연결이 될 때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음반 소매점들이 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에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인 야구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사회인 야구 리그에는 선수 출신이 뛸 수 있는 리그가 있고 그렇지 않은 리그가 있다. 선수 출신이 뛰는 걸 허용하되, 투수-포수 배터리를 이루는 걸 금하는 리그도 있다. 선수 출신이 투수로 뛸 수 있다면 당연히 수준이 더 높은 리그다.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리그에서는 빠른 공과 예리한 슬라이더 정도만 던지는 투수만 있어도 승부가 쉽게 결정된다. 130~140km/h 정도 되는 직구나 그 직구 후에 들어오는 슬라이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면 경기는 싱겁게 끝난다. 그래서 리그마다 선수 출신이 뛸 수 있는 범위에 관한 규정을 둔다. 만약 이런 규정이 없다면 어떤 팀은 매 경기 승리를 거두고, 어떤 팀은 매 경기 패배와 좌절을 맛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음반 판매라는 비인기 종목, 혹은 사양산업에서 근근이 생존해 왔거나 그 상황에서도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상인들은 이제 현대카드라는 강속구 투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타석에 들어선 이들은 두 가지 마음일 것이다. 살살 던져주기를 바라거나 저 투수를 강판시켜 달라고 요구하거나. 선수 출신이 투구를 할 수 없는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공을 선수처럼 던지는 투수가 등판을 하면 상대팀에 항의를 하는 풍경을 종종 본다. 피켓을 들고 현대카드 바이닐&플라스틱 앞에 모여 있는 상인들은 그렇게 강속구 투수의 강판을 요구하고 있다. ‘강속구 투수(대기업)라서 나쁘다’는 의미보다는 ‘우리가 이 야구(음반 소매업) 경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해 달라’라는 항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 6월 24, 25일 수도권의 LP 음반 소매점주들이 바이닐&플라스틱 건물 앞에서 현대카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사진=SETE RECORDS 인스타그램

현대카드 무심코 던진 돌에 소매상 못 일어날 수도… 근거 없는 불안 아닌 ‘구조적 문제’

그렇다면 ‘현대카드의 매장은 과연 얼마나 소매점에게 위협적인 존재인가’를 묻고 싶을 것이다. 현대카드는 소매상들이 문제 제기를 하자 몇 가지 대책을 발표했다. “중고 음반 판매를 중단하고 할인율을 20%에서 10%로 낮추며, 앞으로 산업 전반에 대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면서 현대카드는 “우리는 수익을 목적으로 이 매장을 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말이 중요하다. 현대카드는 이 매장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얘기를 했겠지만, 이 말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대카드가 이 매장을 수익을 위해 열지 않은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업계 관계자들은 쉽게 알 수 있다. “음반 소매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한국에서) 이미 끝났다”고 단언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중고 음반을 제외하고 정상적으로 생산되는 새로운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의 경우 소매상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조건은 대략 이러하다. 음반 소매업에서 100원어치를 팔았을 때 남길 수 있는 마진은 평균 20원 정도다. 소매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비, 즉 인건비나 월세, 카드 수수료 같은 기타 고정비 등의 비용을 계산하기 전 마진이다.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 남았을 때 남는 이익이 15원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15원이라는 이익이 순이익이 되려면 남는 재고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음반 소매업은 반품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10장을 구매해서 1장 정도를 반품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의 조건으로 거래한다. 반품을 아예 못하게 하는 거래처들도 있다. 그러면 15원을 남기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남는 재고 없이 주문한 제품을 모두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전이라도 남기려면 10장 중 8.5장 정도는 팔아야 한다는 가정이 나온다. 야구로 따지자면 타자가 8할 5푼 정도는 쳐야 계속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 서울 중구 회현지하쇼핑센터에 있는 LP 음반 가게 '리빙사'의 외벽. 사진=손가영 기자

하루에 특정 앨범이 200~300개씩 팔리던 시절에는 이런 조건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잘 팔리는 앨범들이 한 달에 1000장 넘게 팔리면 안 팔리는 앨범 100장 정도는 반품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고 순익을 챙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팔리는 앨범도 없고 그 정도의 판매를 할 수 있는 매장도 일부 온라인 매장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런 구조의 시장에서 큰 매장을 짓고 경비원을 고용하고, 회원들에게 20% 할인을 해주면서 판매를 한다는 건 애초에 수익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이 비용은 상품 판매에 크게 관련이 없는 이미지 광고를 기업이 수십억 정도를 써서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BTL(Below-The-Line) 마케팅, 즉 광고가 아닌 이벤트나 전시, PPL 등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8할 5푼이라는 타율을 기록하기 위해 안 팔릴 것 같은 음반을 갖다 놓는 것이 쉽지 않은 소매상들과 그 어떤 제품이든 무한정 가져다 놓을 수 있고, 할인을 몇 %로 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이 매장은 애초부터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카드가 말하는 것처럼, 음반을 구경하기도 경험하기도 힘든 시대에 그것을 보고 만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이곳을 만든 것이라면 “굳이 직접 판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는 이미 현재의 바이닐&플라스틱 매장 옆에 ‘뮤직라이브러리’라는 음반 체험 장소를 만든 바 있다. 뮤직라이브러리의 단점은 현대카드를 갖고 있는 이들만 입장할 수 있고 입장 인원이 제한돼 있으며, 라이브러리라는 특성상 현재의 음악보다는 과거의 음악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바이닐&플라스틱은 뮤직라이브러리의 단점을 보완하는 존재, 그러니까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고 지금 막 나온 신보도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대중들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새 앨범을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통해 소개하는 공간으로만 있었어도 원하는 브랜드 가치 확대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산업에 보탬이 되겠다고 시작했으나 단기간 내에 문을 닫으며 투자 효과를 전혀 노리지 못했던 ‘현대카드뮤직’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공간의 디자인이나 배치를 그토록 오랫동안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왔다면, 그리고 이미 공연이나 디지털 음원 서비스 같은 음악 산업을 경험해 온 회사라면 직접 음반 판매를 시작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파장 정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점을 넘겨 짚었다면 지금이라도 애초에 이 공간을 계획했을 때 세웠던 목표와 현재의 매장 운영이 얼마나 잘 부합하고 있는지 살펴볼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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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시장에서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 충분히 많아… 판매 고집할 필요 있나

현대카드가 소매점들의 반발에 대해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강속구를 던지지 않고 공을 살살 던지겠다고, 다시 강속구를 던지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방법들이 있다.

첫째는, 매장을 음악/음반 체험과 음악 소개의 공간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음반은 생활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에 감흥을 느낀 그 순간에 구매를 하게 하는 것이 이 산업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체험 공간으로 운영하면서 큐레이션 테마에 맞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고전 음악을 테마로 삼았을 경우 고전 음악에 전문 지식이 많고 해당 음반이 많은 소매점과 연계해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비틀즈를 테마로 했을 경우 비틀즈 레코드나 자료가 많은 소매점을 연계해서 그 공간에서 판매하게 하는 방식이다. 현대카드 매장 오픈 직후 몇 주간 매출이 50% 이상 감소해 폐업을 걱정해야 하는 매장들도 있다. 소매점들과 상의해 그런 매장을 우선적으로 입점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현대카드는 앞으로 인프라를 위해 바이닐 레코드 제작을 지원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에도 음악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종종 차트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가수나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대형 기획사에게 세계 시장 진출이라는 명목으로 지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마도 현대카드는 바이닐 레코드 제작 지원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선 이런 유명 음악가들, 혹은 인디 음악가 중에서도 성공한 음악가와 레코드를 함께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레코드 제작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 여력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힘을 써야 할 곳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지만 저작권이나 인접권 문제로 인해 재발매가 되지 않는 음반들이다. 예를 들면 지난 5월, 신중현은 한 제작사와의 재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가 1968년부터 1987년 사이에 발표한 28장의 음반에 대한 발매 권리가 이 음악의 주인공인 신중현에게 있지 않다는 최종 판결이었다. 이런 음반들에 대한 재발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백만 원대에 이르는 높은 거래가를 형성하는 오리지널 레코드가 많다. 이 권리를 양도받은 회사가 재발매를 할 수 있겠지만, 음악가와 제작사가 이처럼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제대로 된 재발매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원작자가 동의할 수 있는 리마스터링도 있어야 하고, 기왕이면 당시 자료나 상황을 지금의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인터뷰 같은 자료들도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재발매가 될 것인데, 현재로선 그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60~70년대에 활약한 많은 음악가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작업은 시기를 앞당길수록 좋다. 누군가가 현재의 권리자로부터 발매 권리를 양도 받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발매 권한을 얻은 다음 음악가의 협조를 얻어 자료를 고증하고 다듬기까지는 제법 큰돈과 긴 시간, 많은 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일은 국가가 나서거나 자본력이 있는 기업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쉽게 할 수 없을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성사된다면 해당 브랜드는 큰 가치 확대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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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공연을 하러 와서 신중현, 혹은 신중현 사단의 레코드를 어디 가면 살 수 있는지 물어왔던 해외 유명 음악가들이 그동안 무척 많았다. 그만큼 상당한 팬들이 해외에도 존재하는데, 이런 음반을 제대로 재발매하는 것은 우리가 한 때 유행어처럼 사용해 왔던 ‘국격’을 높이는 데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며, 공급이 귀하다는 이유로 수십만 원의 프리미엄을 붙여 가며 이익을 얻는 업자들을 근절시키는 데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레코드 문화를 지원하는 사업은 이런 일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 더 적절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국내외 팬들은 물론 소매점들 역시 이런 음반을 판매하면서 음반을 기획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문화 사업’이라면 좀 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다”

이 대형 매장이 생겨서 기뻐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레코드를 좋아하지만 작은 매장에서 웅크리고 앉아 레코드를 고르는 것이 불편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기존 매장들의 운영 방식이나 가격 체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던 애호가도 있었을 것이다. 음반을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이 하나 더 생겨서 기뻐했던 제작사나 음반사도 있었을 것이다. 음반을 판매하고 음악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일해 왔지만, 동시에 음반을 여전히 열심히 사는 소비자 중 한 명으로서 이런 매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혹은 그냥 음반이 좋아서 시작한 대기업의 문화 사업이라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얻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애초부터 소매상들과의 경쟁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면 소비자에겐 좋은 체험의 장소를 제공하고, 소매상에겐 공간 지원이나 서비스 지원, 기타 자사 카드/금융 서비스를 통한 혜택 등을 제공하면서 기존 매장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소수의 매장 중에는 음악가들과 예비 음악가들에게 꾸준히 자극도 주면서 서브 컬처의 작은 기반으로 남아 있는 곳들이 제법 많다. 그들 중 상당수가 현대카드 매장 오픈 이후 홍역을 겪고 있다. 진지하게 폐업을 고민하는 곳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소비하는 품목을 판매하는 곳은 한 곳이 없어지면 다른 한 곳이 또 생겨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장 몇 군데 문 닫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음반 매장은 이미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업종이다.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이미 많은 괜찮은 매장이 사라졌고, 사라지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카드가 그 소비의 폭을 늘리겠다고,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 파이가 커지기 기다리는 동안 많은 매장들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시장은 협소하다. 누군가는 소중한 생의 터전을, 그 누군가는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보물 창고 같은 곳을 영영 잃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정말 ‘문화 사업’이라는 목적에서 이 공간을 구상했다면 좀 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는 7월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현대카드 측 매장 ‘바이닐&플라스틱’ 앞에서 현대카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 주장에 동의하는 음반 소비자들과 정의당 중소상공인부·문화예술위원회가 함께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아이들 야구 게임에 강속구 던지며 낄 것인가 아니면 그들 옆에서 성장을 도울 것인가

동네 꼬마들이 하고 있던 야구 게임에 잠시 끼어들었던 그 어른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은 다시 웃으면서 경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윽박지르고, 때때로 보호 받지 못하는 곳으로 내던져 놓으면 결과적으로 경쟁력이 생긴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강속구를 던지면 거기에 적응을 해서 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강속구에 적응하기까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우울한 것은, 한국 경제에 어둠이 걷히지 않는 것은 많은 이들이 대부분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거나 그런 이들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중 대부분도 언젠가는 그들, 그러니까 그 정도 배려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현대카드가 사양 산업인 음반 판매에 애정을 갖고 문화 사업을 시작했다면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강속구를 던지며 그들을 압도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옆에 서서 그들과 관련된 산업이 발전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나는 후자가 그들을 진정 빛나게 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혹은 국가 기관들이 이런 관점에서 문화 사업을, 혹은 문화 지원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쓴이 김영혁씨는 레이블·공연기획사이면서 음반 가게를 겸하고 있는 ‘김밥레코즈’ 운영자인 동시에 국내 음반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음반소매상들이 직접 참여해 여는 ‘서울 레코드 페어’ 기획자입니다. 김씨는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며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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