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박근혜의 입’, ‘대변인격’으로 불렸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이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으로 있던 당시 언론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를 국회의원 자리에 올렸던 ‘대변인격’이 정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지경으로 몰았다.

이정현 의원은 올해 3선 의원이 되면서 당대표에 도전했다. 그는 보도통제 논란이 이는 와중에도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 대표를 최종 선택하는 사람은 국민과 당원이다. 누구는 되고 안 되고, 누군가는 사전 조정해서 누가 나가고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적었다.

친박계 일각의 당 대표 출마자 조율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당 대표 출마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당선 즉시 당 대표 출마를 기정사실화했으며 이후 ‘배낭 토크’로 전국을 돌며 당원과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일로 그의 배낭토크는 13회를 맞았다.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그는 전남 곡성 출신이다. 블로그 등 곳곳에서 스스로를 “촌놈”으로 규정하고 스스럼 없음, 특권 의식 없음 등의 인식을 전파했다. 그가 첫 지역구 선거를 치른 2014년 7월 당시에도 전남에서 자전거 유세를 하며 조용한 선거를 이어갔다.

이 의원의 기자 응대는 유명했다. 모든 정치부 기자를 친절하게 답했다. 그와 전화 통화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치부 기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에겐 ‘박근혜 대변인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때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당내 대선 경선에서 패한 후 친박계에 ‘공천 학살’이 불어 닥치는 등 ‘정치적 은둔기’를 지날 때였다. 이 의원은 언론이 차기 대선주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언론과 관계를 유지했다.

대변인격이라는 별칭은 그래서 나왔다. 당시 국회의원 중 1인에 불과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변인이라는 정당 공식 직책을 붙일 순 없었던 언론이 ‘대변인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대변인격’ 역할을 내려놓던 2011년 이 의원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2004년부터 7년 동안 (당시) 박 전 대표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는 말을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겼다”고 밝혔다.

▲ 지난 1일 채널A에 출연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2012년 대선을 앞둔 19대 총선에서 광주에 출마한 그는 낙선한다. 이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이 의원은 2012년 7월22일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박근혜 후보는 ‘나의 운명’이라는 말은 직접한 적 없고 언론이 붙여준 말”이라며 “떳떳한 정치, 당당한 정치를 해보고 싶었는데 박근혜 후보를 만나고 난 후에 서울시내를 활보해도 부끄럽지 않았다. 행복했다. 국민들이 이런 행복을 같이 누릴 수 있는 시절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박 대통령에 대한 충정심을 언급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입당 28년, 호남에서 17년 동안 3번 출마했고 첫 선거에서 720표를 얻고 피눈물 나게 이날까지 살아왔다”는 이 의원의 정치인생 전환점에 박 대통령이 있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는 박 대통령이 ‘위기’일 때 적극 나섰다. 윤창중 전 홍보수석이 성추행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후 그는 정무수석에서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청와대의 입이 아니라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역할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시’ 발언이었다. 2013년 12월 박 대통령을 향해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한 야당 최고위원 발언에 이 의원은 ‘언어 살인’, ‘국기 문란’, ‘위해 선동 조장하는 무서운 테러’ 등 발언으로 적극 방어했다.

당시 카메라 앞에 선 이 의원을 보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이정현 ‘심기 수석’께서 ‘테러·암살’ 폭언을 하며 감적이 격앙돼 울컥하셨다고. 민주공화국 홍보수석이 조선왕조의 내시처럼 구시면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 의원은 청와대 춘추관을 두 차례나 찾아 “나는 내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수석이 비분강개해 울먹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몸짓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에 돌격명령을 내렸다”며 “불필요한 정쟁을 없애려면 박 대통령이 ‘오버’하는 이 수석부터 내쳐야 한다”고 경질을 요구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의 역할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심기 수석, 심기 대변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대변인격’에 충실했던 이 의원이었다. 그는 청와대 홍보수석을 끝으로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에 나섰던 이 의원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다.

새누리당 불모지였던 전남에서 두 차례 당선 되면서 새누리당에 ‘호남 입지’를 굳힌 이 의원은 3선 의원(18대 비례대표)으로 당 대표 도전에 나섰다. 그는 이번 보도개입 논란에 사과하는 듯 하더니 지난 1일 “홍보수석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하며 탈출구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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