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한상균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제30형사부(재판장 심담)는 4일 오후 선고공판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및 집시법 위반 등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5년,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에 규정된 집회의 자유는 평화적인 집회에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정한 집회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은 오직 평화적인 집회"라면서 "정부정책과 사용자의 행위가 정의롭지 못하고 경찰의 집회 제한 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적으로 항거한다는 것을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지될 길이 없다"고 밝혔다.

▲ 민주노총은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고 결과와 재판부를 규탄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재판부는 민중총궐기 집회의 폭력 양상이 심각했고 피고인의 선동이 폭력 시위에 기인한 바가 큰 점을 양형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일부 시위대가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당겼고 버스가 끌려오고 나서 틈을 메운 경찰에게 쇠파이프 휘두르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면서 "경찰에게 보도블록, 의자, 각목 등을 집어던졌으며 경찰관이 탑승한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이려는 등 경찰 생명에 위협을 주고 대형참사로 이어질 만큼 심각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한 "피고인은 시위를 주도한 주도자로서 경찰 차벽을 뚫는데 쓴 알루미늄 사다리와 밧줄을 참가자에게 나눠줬고 현장연설, 기자회견 등을 통해 폭력시위를 선동했다"면서 "서울 중심부에 일어난 일부 시위대의 폭행 상해 손괴 방화 등에 대해 불법 시위를 미리 준비하고 폭력시위 선동한 피고인에 큰 책임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구형을 참작한 데 대해 재판부는 폭력 시위 배경에 고용불안과 임금 문제 등 사회적 갈등요소가 있는 점, 일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앞서 검찰은 지난 달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쌍용차 점거 파업으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상황에서 누범기간 중에 범행을 저지른 점, 위원장 당선 때부터 대규모 폭력 시위를 치밀하게 계획한 점, 반성의 기미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엄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8년의 중형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각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변호인은 지난해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와 관련해 경찰의 집회 금지 통보 및 살수차·차벽 사용이 위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시위대 행진에 의해 세종대로에 교통불편을 초래할 상황이었음에도 집회 신고를 이틀 전에 해 행진 시간, 장소, 행진로 등에 대해 경찰이 협의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서울경찰청장이 언론을 통해 제한적 협력 의사표명을 했음에도 민주노총이 사전 대화와 협력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경찰로서는 집회 당시 목전에 임박 위험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시위대 행진을 제재하는 수단으로써 경찰버스와 차벽 등을 이용했다"면서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후 순차적 차벽을 설치했으며 도로점거행위가 종료되면 차벽을 뺐다. 경찰의 차벽 설치는 검찰관 직무집행법 요건을 만족한다"고 지적했다.

살수차의 위법성에 대해서 재판부는 "시위대는 해산명령·살수경고 방송에도 불구하고 차벽을 전도하려 했고 사다리, 보도블럭을 이용해 경찰을 폭행했다, 이는 살수차운영지침에 따른 허용 요건에 해당된다"면서 "직사 살수로 뇌진탕을 겪게 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 그러나 백남기 등에 대한 일부 진압이 위법하다고 해 경찰 공무 집행 전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상균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최후 변론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절박함, 정부가 노동계와 대화를 하지 않는 점,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한 신념 등을 강조하며 파업와 집회의 정당성을 항변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민중총궐기 집회에 6만8천 명에서 10만 명의 인원이 참여한 것만 보더라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뜻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서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대규모 폭력사태를 일으킨 것은 법질서의 근간을 유린하는 행위로서 그 동기 여하를 불문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재판이 열리기 전인 4일 오후 1시 30분에 서울중앙지법 앞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한상균 위원장 석방판결 촉구 결의대회' 참석자가 한 위원장에 대한 무죄판결을 촉구하는 손펼침막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방청석에선 재판장이 "경찰의 공무집행은 적법했다", "변호인의 주장을 기각한다" 등 판결 요지를 밝힐 때마다 탄식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징역 5년이 선고될 때 법정에서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법정 방청석을 가득 메운 민주노총 조합원 및 간부들은 "말이 되는 판결이냐"며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고 재판장은 "조용히 해주십시오"라고 제지했다.

공판 종료 후 즉시 법정 구속된 한상균 위원장은 법정을 나가면서 대법정을 가득 메운 민주노총 조합원을 보며 주먹을 쥐고 머리 위로 지켜올렸다. 조합원들은 박수를 치며 "이런 판결이 어디있냐", "물대포 쏴서 어르신 죽인 건 무죄고 한상균은 유죄냐" 라고 외쳤다.

한 위원장은 선고 후 민주노총 간부를 통해 "'동지들이 무죄라 생각하시면 무죄'라 생각한다."면서 "독재 정부 때보다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은 더 가혹하고 교묘하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태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마저 청와대의 손바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오늘 판결은 정권을 우러러 민주와 인권, 노동을 짓밟은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고 사법부를 규탄했다.

▲ 민주노총은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고 결과 및 재판부를 규탄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어 민주노총은 "오늘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정치보복, 공안탄압, 유죄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폭압에 맞서 노동개악폐기, 최저임금 1만원 등 5대요구 쟁취를 위한 7.20 총파업 총력투쟁, 9월 2차 총파업, 11월 20만 민중의 총궐기로 휘청거리는 정권의 마지막 기반을 무너뜨리는 투쟁의 가장 앞자리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 위원장이 주도한 12차례의 집회 및 171일간의 점거농성에 대해 공소사실을 제기했다. 2015년엔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포함해 4월16일 세월호 범국민 추모행동, 4월18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범국민대회, 4월24일 민주노총 1차 총파업 집회, 5월1일 세계 노동절 집회, 5월6일부터 28일까지 4차례 열린 공무원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집회, 8월28일 민주노총 집중행동, 9월23일 민주노총 3차 총파업 집회 등 11차례 집회가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2014년 5월24일 세얼호 국민대책회의 추모 집회와 관련해서도 한 위원장은 일반교통방해죄와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다.

한 위원장이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위해 2012년 11월20일부터 2013년 5월9일까지 171일 간 평택 송전탑 점거농성을 한 데 대해서도 집시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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