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월남 패망’ 발언을 거세게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라며 “과거 월남이 패망했을 때도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 큰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늘 분노하는 일본 우익의 망언과 같은 격”이라며 “월남 사람 입장에서 보면 ‘미제 침략에 돈 받고 보조원 노릇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강간한 것에 대해 국가 수준에서 사과, 배상하지 않은 데다 친미 괴뢰 남월남을 월남이라고 지칭하다니, 분노스런 망언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 태생으로 지난 2001년에 귀화했다. 본명은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다. 박 교수는 “참,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부끄러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됐던 베트남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의 내전으로 시작됐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대리 전쟁 양상으로 진행됐다. 미국이 대량 살상무기를 투입해 게릴라전을 벌였던 베트콩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으나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반전 여론에 밀려 1973년 철수한다. 한국도 미국과 함께 남베트남을 지원했으나 결국 미군 철수 이후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하고 무력 통일을 이뤄 1975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한국은 남베트남을 월남이라 부르고 북베트남을 월맹이라 불렀다. 박 대통령이 “월남 패망”이란 말을 쓴 건 자본주의 진영인 남베트남을 국가로 인정하고 북베트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40년 전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월남은 베트남의 한자식 표기인데 월남이 패망했으면 지금의 베트남은 뭐란 말인가.

▲ 베트남 전쟁 자료 사진.


박 교수는 “만약 장개석 국민당의 패망에 대해 ‘중국 패망’이라고 했다면 아마도 사죄 사절쯤을 북경에 파견했어야 했을 것”이라며 “월남이 지역 강국이 아니라서 이렇게 가볍게 무시하는 셈인데 이는 국가 지도자 품위와 사이가 먼 건 물론이고 사실 정치인으로서 해서 안 될 짓”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다음은 박 교수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마지막 부분.

“많은 한국인들이 실질적 일당제인 월남이나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는데, 차라리 이런 반성적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형식상 ‘민주주의’인 한국식 다당제를 통해 만약 이런 무자격자가 대통령쯤이나 될 수 있었다면 이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어떤 중요한 결함이 내재돼 있지 않을까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인간은 권력 가까이도 가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남에 대한 우월감을 갖기 전에 우리 자신들부터 바로 보죠.”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