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첫 번째 쟁점은 청문회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3당은 벼르던 청문회 및 국정조사 꺼리들을 들고 나왔다. 새누리당의 방어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정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야는 지난 27일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 합의했다. 특위 위원장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됐다. 관련 상임위가 참여해 특위를 만들어 국정조사 형식으로 실시한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지난 5월 초부터 야당과 피해자 가족들은 새누리당에게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이 반대입장이었다가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수용한 이유는 새누리당에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에 대해 새누리당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끌어들이며 ‘정쟁’을 예고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6월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누리당은 피해 가족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개최를 약속했다. 사법당국의 수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며 “왜 2001년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 판매 허가가 나왔는지, 왜 2003년부터 피해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 정진석(왼쪽 두번째)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5월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면담에서 피해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19대 국회에서 환노위 간사였던 권성동 의원도 5월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는 20여년 전 시작됐고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사안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옥시가 생산해 판매했다. 2006년에 원인미상의 호흡부전증 어린이 환자가 발생해 조사했지만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며 이전 정부를 거론했다. 권 의원은 “지금 섣불리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은 다른 청문회 요구에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야당은 어버이연합, 법조비리, 백남기 사건, 청와대 서별관 회의 등에 대한 청문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반대하고 있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버이연합, 법조비리, 백남기 씨 사건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해소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한참 수사기관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저희들은 이 3가지 청문회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이들 사건에는 현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버이연합게이트, 서별관회의는 청와대가 직접 연관된 사건이고 백남기 사건도 박근혜 정부의 경찰이 집회를 막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구의역 참사에 대한 청문회를 역제안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저희 당에서는 구의역 사건 국정조사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며 “서울메트로는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방관했다. 우리 당은 구의역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다시 한 번 더 야당 측에 제안하는 바”라고 말했다.

타겟은 명확하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명무실한 위원회에 진보세력을 대거 등용시켰다. 실질적으로 산하기관 전체에 박원순 시장의 관피아, 박원순의 세력들을 전 공기업에 배치하고 전 위원회에 배치하며 결국 그 결과물이 일부 드러난 것이 메피아 사건”이라며 “국정조사를 하면 메트로 뿐만 아니고 서울시 산하기관 공기업 그리고 전 위원회 포함해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겟은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로도 향하고 있다. 연결고리는 서울메트로의 감사였던 지용호씨가 문재인 전 대표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3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구의역 사고 직후 사퇴한 서울메트로의 전 감사 지영호씨는 문재인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다. 지하철 운영과 관련이 없는 문재인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가 어떤 경위로 서울메트로의 감사에 임용된 것인지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박원순서울시장이 지난 6월16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야당은 새누리당의 물타기라는 입장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구의역 문제는 국민 안전의 문제이고 열아홉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문제다. 이것을 갑자기 대선후보 공격용으로 쓰는 저의가 무엇인가”라며 “안전 문제, 민생 문제를 정쟁문제로 비화시키겠다고 하는 태도를 보고서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청문회 요구를 정쟁으로 받아치는 새누리당의 전략은 19대 국회에서 여러 번 반복됐다.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대표 사례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검증하겠다는 이유로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정세균 의원 등 노무현 정부 인사 50여명을 증인으로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자원외교했다”는 논리였다.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 간사를 맡은 권성동 의원은 “해외자원개발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된 정책으로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된 정책 중에 유일하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며 “(문제가 된) 볼레오, 암바토비 사업 모두 노무현 정부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이한호씨가 다 의사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공사가 2003년 이후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31조 4000억 원 중 27조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투자한 돈이었다.

정치공방이 벌어지면서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증인으로 요청한 야당의 요구가 “그럼 노무현 정부 인사들도 다 나와라”는 새누리당에 막혀 무산됐기 때문이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청문회도 마찬가지였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8월16일 청문회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정권 홍보 댓글 작업을 했나’ ‘2005년 고영구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의 사이버심리전 전담팀을 출범시키고 확대했느냐’고 질의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그렇게 보고 받았다”, “그렇다”고 답했다. 2012년 대선에서 벌어진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도 댓글 작업했다”고 맞선 것이다.

‘국정조사 역제안’ 수법도 비슷하다. 지난해 4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박근혜 대통령 불법대선자금 수수 의혹’으로까지 번지자 ‘노무현’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리고 국정조사와 청문회 요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유승민 의원은 2015년 4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 차원에서 (특사 논란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국회 법사위 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청문회와 국정조사 요구를 매번 정쟁으로 치부한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상시청문회법에 대해서도 ‘정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반대했다. 가습기살균제 청문회를 반대한 권성동 의원은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든 청문회를 하든 원인 밝히는 걸 본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 달라. 국정조사라는 건 정치공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정쟁에 활용하고 있는 이들은 새누리당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