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집회를 금요일로 바꿔줄 수 있습니까.”

서울 중구 회현지하쇼핑센터에서 LP상점을 운영하는 김지윤씨(51)는 28일 오전 용산경찰서 정보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담당 경찰은 김씨가 7월3일 일요일에 열기로 한 집회를 1일 금요일로 앞당겨 달라고 말했다. “그 날이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그냥 그날 집회를 열지 말란 말 아니냐”면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찰의 ‘집회 관리’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민의 집회·결사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경찰이 신고 집회를 자의적으로 통제한 사례가 연이어 발견됨에 따라 이 같은 집회 관리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가 된 집회는 LP음반을 매매하는 전국의 중소상인들이 모이는 최초 시위다. 이들은 7월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앞에서 현대카드의 ‘바이닐&플라스틱’ 매장 개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다. 대기업이 영세한 규모의 LP 음반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그동안 중소상인들이 형성한 LP 음반 문화가 파괴되고 골목상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 6월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바이닐 & 플라스틱 매장 앞에서 레코드 매장 상인들이 집회를 열었다. 사진=시트레코즈 인스타그램

김씨는 지난 21일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앞을 개최 장소로 지난 6월24일부터 7월21일까지 한 달을 예정한 집회를 용산경찰서에 신고했다. 오는 3일엔 현대카드 건물 인근 100m 근방을 행진하는 행진 신고도 해놓은 상태다. LP음반 소매업자들의 최초 시위인 만큼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집회를 알렸고 언론을 통해 집회 일정도 보도된 바 있다.

김씨가 용산서의 권유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경찰의 집회 조정 권유 이유가 석연치 않을 뿐더러 대기업을 상대로 싸운다는 절박함이 있어서다. 김씨는 “LP음반 문화가 파괴되는 문제, 생존권 문제 때문에 현대카드를 상대로 처음으로 LP음반업자들이 전국 규모의 시위를 계획했다”면서 “이렇게 다 알린 상황에서 날짜를 바꾸라는 건 그날 집회를 하지 말라는 말 아니냐”고 항의했다.

이와 관련해 용산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집회를 막으려고 한 의도는 전혀 없다. 금요일에 더 사람이 더 많이 모이는 것 같고 일요일에 한 번 쉬는 데 (집회가 열리면) 나와야 하니 옮기는 건 어떠시냐고 권유해본 것”이라며 “(경찰이) 날짜를 조정하기도 한다. 중복 집회 신고가 있거나 하면 경찰도 조정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3일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앞에 집회를 신고한 사람은 김씨밖에 없다. ‘상부의 압력이 있었냐’는 김씨의 지적과 관련해 관계자는 “그런 이유는 전혀 없다”며 “처음 집회 하신다 하니 평일에 사람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신고가 한 달 동안 돼있으니 아무 때나 와서 하시면 된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다른 집회가 있다거나 당일 다른 행사가 있어 굉장히 붐빌 것이 예상될 때 경찰은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게 집시법의 취지”라면서 “(용산서의 이유는) 전혀 조정 이유가 될 수 없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가 잘 열리게끔 최대한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의 자의적인 집회 관리는 최근 연이어 지적받은 문제다. 경찰은 지난 2014년 세월호 관련 집회는 61건 불허한 반면, ‘관제 집회’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의 신고 집회는 지난 3년 간 단 한 번도 불허하지 않아 편파적으로 집회를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더해 28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및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어버이연합의 당일 집회신고에 대해서도 허가를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집시법은 최소 48시간 이전에 신고서를 경찰서장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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