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불법 시위’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등이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물포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의 말이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228일째 의식을 잃은 상태다. 백씨는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어떤 형태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백씨는 아버지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기관인 경찰청, 검찰청, 행정자치부, 법무부, 외교부에 대해 비판했다. 경찰청은 사고 직후 진상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를 마쳤다고 하지만 검찰수사중이라는 이유로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씨는 진상조사단에 그날 시위 진압 담당이었던 ‘경비과’가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백씨는 “업무집행 중 사고가 났다면 누군가는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 징계 받은 사람이 없고, 오히려 시위진압 관련자들이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진상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인 아버지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지난 5월15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백도라지씨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백씨의 가족은 검찰에 청장 포함 경찰 7인을 고발했다. 백씨는 “어떤 기자가 취재차 검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며 “검찰 수사가 비밀리에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을 관할하는 행정자치부 역시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HRC(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 백씨의 동생 백민주화씨가 참여해 발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법무부가 “전화로 귀찮게 했다”고 백씨는 말했다. 올해 UNHRC 의장국은 한국이다. 백씨는 “중립을 지켜야 할 최경림 의장이 경찰청 파견인사와 법무부 서기관 등을 이끌고 마이나 키아이 UN특보를 만났다”며 “외교부 국제기구국장 유대종은 아버지를 불법시위자로 몰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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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물대포 실명된 피해자 “물대포 무해하다? 큰 착각”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독일과 영국 등 외국 사례들이 소개됐다.

독일 경찰도 한때 물대포를 사용했다. ‘검은 목요일’이라도 불리는 지난 2010년 9월30일 독일에서는 ‘슈투트가르트 21’사업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슈투트가르트 21’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과 모든 선로를 50km의 지하터널로 재배치하고 교외지구를 새로 건설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다.

그곳에는 4000여명의 시위대가 있었고, 1700여명의 경찰과 몇 대의 물대포가 있었다. 디트리히 바그너(72)씨는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시력을 잃었다. 이날 참석한 디이터 라이헤르테 전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경찰은 한 번도 물대포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동참한 이전의 수많은 시위들은 항상 평화적이었다”며 “그러나 그 날 경찰은 곤봉과 캡사이신, 물대포를 동원해 매우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했다”고 말했다. 디이터 라이헤르테 전 부장판사에 따르면 이날 부상자와 관련한 공식 집계 수치조차 없다.

▲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디트리히 바그너씨는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몇 주간 여러 번 수술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왼쪽 눈을 실명했고, 오른쪽 눈도 1m 정도 거리에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물대포로부터 10~12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도 실명했다”며 “물줄기가 얼마나 셌는지 눈 주변의 뼈까지 부서져 타이탄 금속을 주입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의사가 말하기를 만일 물줄기를 1~2초 더 맞았다면 물이 뇌까지 침투해 생명을 잃었을 수 도있었다고 한다”며 “물대포가 무해하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2010년 9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한 독일인 디트리히 바그너(72)씨.

독일도 과잉진압 이후 시위대 탓하기

바그너씨의 변호사 프랭크 울리히 만씨는 “경찰은 사과는커녕 중상해죄 미수, 물대포에 대한 재물손괴 등을 이유로 (바그너씨를) 기소했다”며 “정부는 경찰 명령을 따르지 않아 부상을 자초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시위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한국과 닮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민중총궐기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경찰청장으로서 불법시위 주도자와 폭력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법적 책임을 묻고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한다”며 “앞으로도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용납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경찰의 법 집행 원칙 또한 흔들림 없이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디이터 라이헤르테 전 부장판사에 따르면 처음 정치인과 언론은 시위대가 폭력적이라 공권력 개입이 필수였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는 “특히 내무부 장관은 그날 밤 TV에 나와 시위자들이 경찰을 향해 도로포장용 돌을 던졌다고 말했지만 그 진술은 즉시 거짓으로 밝혀졌다”며 “최근 여론은 그 사건이 잔혹하고 불법적인 경찰 대응이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사전 약속한 시위대와 최소한의 거리 확보를 무시한 채 평화적인 시위대를 상대로 캡사이신을 사용했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을 상대로도 캡사이신을 사용했다”며 “개개인의 머리를 향해 물을 분사하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돼있지만 수 시간동안 참가자들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를 쐈다”고 지적했다.

영국, 물대포 도입 논란

영국의 인권단체 리버티(Liberty) 정책담당 샘 호크씨는 영국의 물대포 사용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샘 호크씨에 따르면 영국 전역에서 실제 물대포가 사용 주장이 나온건 2011년이다. 같은해 8월4일 마크 더건이 런던에서 검문 중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고, 영국 경찰은 더건 씨가 경찰에게 총을 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 발표가 허위로 밝혀졌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소요를 일으켰고, 폭동은 영국 전역으로 퍼졌다. 1860건의 방화 및 재산피해, 1649건의 절도 사건 등 5000여건의 범죄가 발생했고, 5명이 사망했다.

2011년 폭동사태 이후 영국 경찰서장협의회는 2011년 이전에 발생한 4차례 시위에서도 물대포 사용이 허용됐더라면 도움이 됐을 것이라 주장했고, 물대포 사용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폭동 관련 위법 행위로 기소된 자들을 공영 주택에서 쫓아내고 소요사태 발생 시 소셜 미디어를 중단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등이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물포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한 영국 인권활동가 샘 호크(맨 왼쪽)씨와 디이터 라이헤르테 전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 부장판사(왼쪽에서 두번째). 사진=장슬기 기자

독일·영국, 한국과의 차이점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려는 공권력의 속성은 독일과 영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사법부는 물대포로 인한 과잉진압 이후 경찰에 대해 책임을 물었고, 영국은 시민사회와 경찰 내부의 반대로 물대포 도입을 막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를 보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21’사업에 반대하는 측 변호사들의 노력으로 경찰 가운데 세명이 시위 대응 과정에서 상해를 초래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이들은 물 분사기로 일부 사람들의 머리에 부상을 입힌 것에 대한 책임으로 유죄를 받았다.

‘물대포 행정소송’은 수년째 유예됐다. 피고인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슈투트가르트는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는 시위대의 집회가 합법적 집회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헌법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슈투트가르트 행정법원은 “그 시위가 집회의 권리에 의해 보장받는 평화 집회였다”며 특히 “시위 참가자들이 폭력적이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행정법원은 “경찰이 사용한 모든 수단이 불법이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경찰이 물대포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사용한 흔적이 있다”고 봤다.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는 법원 판단을 수용했고, 주지사는 불법적인 경찰 대응으로 피해를 당한 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원고들에게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다른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은 포함되지 않았고, 이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한국에서 백남기 농민에 대한 아무런 사과·보상·조사도 없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를 보인다.

영국 리버티는 “2011년 폭동 사태들이 시위권 축소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버티는 경찰 내부에서도 물대포 사용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샘 호크씨에 따르면 경찰서장협의회 대표인 휴 오드 경은 “물대포는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그대로 있는 시위대와 거리를 유지하는데 사용되는데 빠르게 흩어지며 움직이는 시위대를 상대로 물대포를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리버티 등 시민사회의 반대로 인해 영국 경찰 최대 규모의 병력 6개 가운데 5개가 “물대포 배치 승인을 받는다 해도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샘 호크씨는 “한국의 백남기 농민과 독일의 디트리히 바그너의 사례는 물대포의 위험성을 조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동일한 성과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디이터 라이헤르테 전 부장판사는 판결문 일부를 인용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의미는 나중에 집회 금지나 집회 해산을 통해 기본권의 행사가 억제될 경우에도 항상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개입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집회 권리는 연좌 농성을 비롯한 비언어적 형태의 표현을 포함하는 다양한 형태의 집단행동까지 보호한다. (중략) 사람들의 얼굴을 강타할 위험성이 매우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직접적 물리력의 부적절한 사용을 막기 위해 물대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뒀어야 했다.” (2015년 11월18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행정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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