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탈원화 정책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사람은 지역사회로 돌아간다. 이들에겐 상담·치료를 받거나 취업 등 사회복귀 위해 지역기반 정신보건서비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서비스의 규모와 범위가 제한적이다. 정신병원 등 의료기관이 중심이다.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 관련 시설과 의료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도 않다. 정신병원은 “지역의 정신보건 욕구가 충족되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 낸다. 국민들은 현재 10만에 이르는 병상 수 탓에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 시스템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의 대표적인 기관은 정신건강증진센터다. 미디어오늘은 이곳에서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듣기 위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주상현 사무장을 만났다. 그는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위기관리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1995년 강남구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시작으로 현재 각 자치구마다 하나씩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25곳),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서울 광역정신보건센터 등 27군데(전국 208군데)가 있다. 이곳에 고용된 350여명의 정신보건전문요원(전문요원)이 1000만 서울시민의 정신건강을 떠맡고 있다.

▲ OECD 대부분 국가들은 전체 보건예산의 5~18%를 정신보건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3%에 머물고 있다. 지역사회 시스템에 비해 지나치게 병원 등 정신의료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서울시와 팀장들 간 (노동조건 등에 대한)비공식적인 채널이 있었어요. 그러나 불합리했죠. 임금이 보통 물가상승률에 비례해 올라야 하는데 그런 것도 지켜지지 않았어요. 어떤 해에는 야근수당 월 20시간까지 인정해주다가 갑자기 10시간으로. ‘복지사가 무슨 노동조합이냐’는 인식도 있어서 지난 20년간 노조가 없었죠. 그러다 지난 2월 노조(서울시정신보건지부)를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270명이 가입했죠.”

전문요원 1명이 환자 60~80명 담당

전문요원은 일이 많다. “중증정신질환자 사업은 기본적인 일이고, 소아청소년 사업, 정신건강 상담, 조기정신증 사례관리도 해요. 일반 정신건강 증진사업, 자살사업, 알콜사업도 하고, 보통 전문요원 1명이 환자 60~80명을 ‘사례관리’하죠. 여기에 정신건강 관련 캠페인 행사가 있으면 업무는 더 추가되고요.”

사실상 정신건강 관련된 일은 모두 정신건강증진센터로 몰린다. 중증정신질환자는 보통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명단을 받아 전문요원이 병원에 데려가기도 하고 약을 잘 먹는지 확인하거나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이를 ‘사례관리’라고 한다. 사례관리가 제대로 안 될 경우 환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한 정신간호사는 “알콜 회원(알콜의존증)들이 만취해서 저에게 욕을 하고, 성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정신도 없고 빨리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상처받는지도 모르고 버텼다”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하면서 처음 만난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그분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 자기불신 감정으로 몇 주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요원들의 감정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중증질환자 뿐 아니라 청소년도 관리하고, 정신과 진단을 받은 시민들이라도 상담을 받고 싶으면 이곳에 문의해 상담이나 안내를 받는다. 어떤 위험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면 8주간 ‘위기개입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한다.


▲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하는 일. 사진=은평구정신건강증진센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하는 일. 사진=은평구정신건강증진센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세월호 희생자·메르스 피해자 등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자들을 떠맡는 곳도 정신건강증진센터다. 주 사무장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년전 4월 1577-0199(마음이음상담전화) 번호가 노출되면서 상담건수가 엄청났다”며 “국민들은 우리가 공무원인 줄 알고 밤새도록 욕해 그 욕을 다 먹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 심리상담과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서울시 시민건강국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에 대상자가 109명이고 명단이 환경부에서 넘어올 예정”이라며 “국립정신병원에서 각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동행해 치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재난의 뒷수습은 오로지 이들의 몫이다.

전문요원 350명 전원 비정규직

전문요원은 사회복지사, 간호사, 임상심리사가 추가로 정신보건 교육과 실습을 받고 자격시험(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을 통과한 이들이다. 조합원은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비율이 8:2정도 된다. 전문요원 중 임상심리사는 거의 없다. 간호사 비율이 낮은 것도 병원에서 일하는 게 조건이 더 좋기 때문이다. 전문요원은 100%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전문요원의 고용불안은 질 좋은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장애물이다. 게다가 서울시의 경우 노원·구로·관악 등 3곳을 제외하면 간접고용 형태다. 서울과 각 자치구가 각 센터를 여러 병원에 민간위탁 형식으로 맡기고 센터장과 전문요원들이 근로계약을 맺는다. 사용자는 센터장이지만 예산은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서 절반씩 지원한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광역자치구·기초자치구·복지부 3자가 함께 예산을 지원한다는 점만 다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각 센터 운영 및 설치와 프로그램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고용의 질’과 관련한 구체적인 조건은 찾기 어렵다”며 “민간위탁이나 간접고용의 경우 근로관계나 집단적 노사관계 차원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센터장들과 단체협약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장이 각 자치구에서 위탁받은 상황이라 협상은 쉽지 않다. 노조는 서울시가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주 사무장은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인사권이 없고, 센터장은 실질적인 예산 권한이 없어 교섭이 진행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민건강국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센터장이 사용자니까 거기랑 (협상을)하는 거고, 서울시는 사용자가 아니라 참관을 할 수는 있지만 감독권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요원들은 근로계약을 1년마다 한다. 주 사무장은 “(자치구와 센터 간) 위탁계약을 3년마다 하니까 3년은 조금 안정적일 수 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라며 “센터장이 바뀌면 또 고용승계가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협상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예산을 지급할 때 인건비와 사업비를 구분해서 주지 않는다. 주 사무장은 “명목상으로는 이 둘을 구분해서 주지만 사실상 통으로 주고 각 센터별로 알아서 쓰라고 한다”며 “인력이 부족해도 사람을 더 뽑을 수 없고, 심지어 호봉이 높은 사람은 ‘나 때문에 사업비가 부족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동료들에게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이 지난 3월부터 전문요원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2%가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1년 내 이직 의향을 가지고 있는 전문요원이 31.3%나 됐다. 직장생활 만족도는 43.8점으로 지난해 서울시 공공부문 종사자 만족도 45.5점보다 낮았다. 이중 특히 고용안정성 영역은 17.5점으로 서울시 공공부문 종사자 33.2점에 비해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다.

▲ 서울시 정신보건전문요원 업무 만족도. 자료=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노원·구로·관악 등 자치구 보건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이라고 노동조건이 더 좋은 건 아니다. 주 사무장에 따르면 이 중에는 10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곳도 있고, 노원의 경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심리 상담을 다 떠맡을 뻔하기도 했다. 자치구 별로 실적 경쟁이 있어서 어디나 노동 강도는 세다.

“서울시에서 인센티브 평가라는 것을 해요. 상담건수로 실적을 내 자치구별로 경쟁, 양적평가를 하는거죠. 사례관리자 얼굴 도장찍고 올 수밖에 없어요. 상담의 질이 떨어지죠. 적당한 인원을 배분해 정말 그 사람이랑 집중적으로 상담을 해야될텐데… 왜 20년 만에 노조가 생겼냐면 서로 경쟁을 시켜놨기 떄문이기도 하죠.”

이들은 누가 돌보나?

전문요원은 다른 간호사·사회복지사 혹은 선생님들과 좀 다르다. 인연을 맺고, 치료·교육 등을 끝낸 뒤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 사무장은 상대가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할 때가 가장 반갑다고 했다.

“8주 위기개입 관리를 하면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죠. 그러다 6~7주쯤 제가 전화했는데 상대가 ‘더 이상 전화하지마세요. 안 죽을 거니까 귀찮게 하지 말아요’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근데 그 말이 제일 좋아요. 괜찮아진 거니까. 그렇지만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구조죠.” 업무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을 눈으로 확인하긴 쉽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5월부터 감정노동자 권익보호위원회와 감정노동자보호 TF를 만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건 예산과 인력이다. 정신병원의 인권침해와 강제입원이 계속 지적되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정신보건 시스템은 더 열악하다. 인구 10만 명당 정신보건간호사 수는 한국 13.7명으로 네덜란드 132.3명, 아일랜드 112.8명의 10분의 1 수준이다.(2011년) OECD 평균은 49.7명이다. 정부의 탈원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사회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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