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잊힐 권리’가 이번주부터 도입된다. 타인의 게시물을 삭제하는 초안과 달리 본인의 게시물에 대해서만 삭제할 수 있도록 해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방통위가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는 탓에 사업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11번가, 인터파크, 넥슨, NC소프트, 페이스북, 구글이 이번주부터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들 사업자는 자사 사이트에 ‘잊힐 권리’에 대한 안내 및 게시물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페이지를 개설한다. 예를 들어 본인이 10년 전 작성한 게시물을 지우고 싶지만, 해당 사이트에서 탈퇴한 경우 본인이 쓴 글이라는 걸 입증하면 해당 게시물은 블라인드 처리되거나 삭제된다.

가이드라인이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지만,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업자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도입을 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가이드라인이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인터넷사업자는 탈퇴한 회원의 개인정보를 탈퇴 후 30일 이내에 삭제해야 한다. 따라서 이미 탈퇴한 회원의 게시물이 본인이 작성한 게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인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실수로 타인의 게시물을 사업자가 지울 수도 있고, 이 경우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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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가 형식적으로만 소통을 한 채 가이드라인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잊힐 권리를 도입하려면 피해사례가 어느 정도인지 현황조사부터 해야하는데, 이런 조사는 한번도 없었다”면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형식적인 소통마저 일부 대형사업자들에 국한됐다.  네이버, 카카오, 11번가, 페이스북 등 대형사업자들과는 간담회를 열고 직접 소통을 했지만, 군소사업자들에게는 가이드라인이 나왔다는 사실을 e메일과 전화를 통해 알린 게 전부다. 방통위 관계자는 “일일이 모든 사업자들과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면서 “대신 인터넷사업자들을 대표하는 인터넷기업협회와 논의를 거쳤기 때문에 소통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방통위가 6월 도입을 목표로 정한 탓에 사업자들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6월 전면도입은 힘들다보니 같은 사업자라도 일부 서비스만 우선 도입하는 모호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6월 중 도입을 하라고 해, 급하게 진행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라고 해도 방통위가 행정지도 성격이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기한을 무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6월 마지막주인 현재까지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사업자들마저 가이드라인 도입 시기를 확정하지 못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기존에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테스트를 하고, 내부 방침을 만드는 등 시간이 걸린다”면서 “포털 '다음' 서비스 먼저 6월 목표로 오픈하고 '카카오' 관련 일부 서비스는 7월에 도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역시 핵심 서비스에 대한 가이드라인 도입은 6월 중에 하되, 일부 서비스는 7월에 도입할 계획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사업자별로 진행 중인 상황이 다르다보니 어느 업체가 언제까지 도입한다고 확답을 줄 수 없다”면서  “본사가 따로 기술적 처리를 해야 하는 페이스북, 구글 등은 도입이 다소 늦춰질 수도 있고, 제때 될 수도 있다. 군소사업자들은 7월 이후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게시물 삭제 권리는 본인의 게시물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게시글을 삭제하게 되면 댓글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게 문제로 꼽힌다. 최성준 방통위원장 역시 지난 4월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댓글의 경우 부당하게 삭제된다고 볼 수 있다. 댓글은 유지한 채 게시글만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밝혔으나 대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잊힐권리 가이드라인’부터 적용된다.

방통위는 장기적으로 ‘잊힐 권리’를 법제화할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타인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도록 권한이 확대될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자들이 잊힐 권리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한 상황에서 이를 타인의 게시물에 적용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본래 방통위의 가이드라인 역시 타인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포함할 계획이었으나 반발이 커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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