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일어난 제2의 구의역 참사다.”

“매일 5명이 꼬박꼬박 산재로 사망한다. 석 달이면 400명이다. 대한민국은 석 달에 한 번씩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다.”

지난 23일 에어컨 수리기사의 추락 사망사건에 대해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이 “우리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한다”며 “위험을 외주화하는 간접고용 구조를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6월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위험의 외주화 구조를 철폐하고 실질적인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리기사 사망사고에 대한 노동조합·시민사회의 입장을 발표했다.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은 하도급 및 간접고용 구조로 인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삼성·SK·LG·태광·딜라이트(구 C&M) 등의 통신·전자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이 모인 단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비롯한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은 근본적인 사고 원인은 하도급 구조로 정착된 간접고용 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원청인 삼성전자는 한 명 분에 해당하는 수리 건수 당 위탁비를 하청업체 삼성전자서비스 지역센터에 도급보수로 지급하며 하청업체 수리기사는 건당 수수료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이처럼 고정된 위탁비 구조에서 2인1조 작업은 불가능하며 만연한 실적압박 때문에 위험업무를 거부하거나 작업환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안전모·안전고리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진씨가 안전장비를 착용했더라도 추락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진씨가 안전 고리를 걸 지지대는 진씨가 발을 디뎠던 철제 난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층 작업에 이용하는 사다리차(스카이차)의 경우, 1시간에 15만 원 비용이 발생할 뿐더러 수리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수리기사들이 사다리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수리기사에게 수리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더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엔지니어들은 2인1조로 작업하면 고인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했다”면서 “건당 수수료 체계에선 원청도 하청도 2인1조 작업에 따른 비용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꿈같은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 한 에어컨 설치·수리 기사의 작업 모습. ⓒ미디어오늘

원·하청간 ‘건당 위탁비’ 도급보수 체계는 하청이 추가 노무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근거가 될 뿐더러 최소한의 비용으로 책정돼 있기 때문에 2인1조 등 강화된 안전조치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는 이 같은 구조에서 결국 업무상 위험은 하청노동자가, 경영상 위험은 하청업체가 떠안고 원청은 안전관리비용과 경영관리 비용을 모두 절감한다고 주장했다.

발언에 나선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저 또한 3층에서 떨어져보기도 했고 감전돼 보기도 했다”면서 “(회사는) 1시간에 처리할 일을 40분 안에 처리하라고 말한다. 1시간 내에도 안전장구 할 시간은 없다. 40분 안에 무슨 안전조치를 하고 어떻게 사다리차를 불러서 내 생명을 지켜가면서 수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다. 이남신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이번 사고는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도급제에 불과한 건당 수수료, 원청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실적압박이 복합적으로 일으킨 참사다. 땜질방식으로 조치해선 해결 안 된다”면서 “전국 수리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매일 죽음의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고 재벌중심 사회이지만 사람 목숨 값을 어떻게 비용으로 환산하느냐. 상시지속 업무의 경우 직접고용 정규직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이블·통신 수리기사인 이영진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 지부장도 연대발언에 나서 “남일 같지 않았다. SK, LG, 딜라이브, 티브로드의 모든 비정규직 하청 기사들은 설치·수리 업무에 있어서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면서 “2014년 어느 비오는 날에도 설치기사가 전봇대에 올라 작업하다가 떨어져 사망한 적이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일하는, 그런 일이 없는 일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한 수리기사가 기자회견에 참여해 삼성전자서비스의 건당 수수료 체계와 무리한 실적관리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은 근본 대책으로 원청 삼성전자를 향해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의 외주화를 즉각 중단하고 간접고용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단기적 대책으로 △가정용 에어컨 실외기에 제조사 감리 확장 △2인1조 작업수당 책정 △충분한 수리시간 반영한 위탁비 책정 △스카이차(사다리차) 사용 범위 확대 △살인적 실적관리 중단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정부를 향해 산업안전기준 등 관련 법규 정비 실시를 주장했다. 수리기사의 작업환경은 작업발판, 안전망, 안전벨트 등 기존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 조치가 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엄정한 수사 및 특별근로감독도 실시도 요구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서울 성북센터 가전제품 수리기사인 진아무개씨(44)는 지난 23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빌라 3층 외벽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던 도중 딛고 있던 난간이 무너지며 함께 추락했다. 진씨는 이날 오후 9시경 장파열로 끝내 사망했다. 사고 당시 제대로 된 안전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수리기사를 둘러싼 위험한 작업환경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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