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메피아’ 문제를 노조의 특권 챙기기로만 부각하며 외주화 문제의 본질을 노노(勞勞)갈등으로 흐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력감축 반대, 고용안정 보장 등 노동권에 대한 주장을 특권 요구로 보도해 노조 혐오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지난 10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일보,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등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노조는 TV조선 시사프로그램 ‘강적들’에 대한 제소도 준비 중이다. 노조는 “최근 보수언론은 구의역 사고의 배경에 노동조합의 담합이 있었다는 식의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이들 보도는 명백한 허위보도다. 노동조합에 대한 막무가내식 공격본능에 사로잡힌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제소 취지를 밝혔다.

▲ 6월3일 중앙일보 1면

이들 언론은 메피아의 ‘고용특혜’에 대해 “불평등 계약은 메트로의 노사협약에 따라 맺어진 것이 확인됐다”면서 메피아를 탄생시킨 주범으로 서울지하철 노조를 지목해왔다.

지난 3일 중앙일보는 1면 단독기사 ‘구의역 19세 죽음 뒤엔 메피아 계약있었다’를 통해 “메트로 퇴직자에게 월 422만 원의 월급을 챙겨주느라 김씨는 월 144만 원의 박봉에 시달려야 했다”면서 “메트로 용역업체에 불평등 계약을 요구한 배경에는 메트로 노사 간의 합의가 있었다. 2011년 정년 연장을 놓고 대립하던 메트로 노사는 ‘사측이 퇴직자의 분사 재취업을 알선하고 처우를 보장한다’고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도 지난 3일 사설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서울시가 강성노조에 휘둘려온 결과다. 임원 인사, 인력 재배치 등 경영에까지 개입하는 정규직 노조의 횡포로 협력·하청업체, 비정규직·파견 근로자는 짐짝처럼 노동시장의 맨 뒤 칸으로 계속 밀려났다”고 비판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15일 ‘서울 지하철 메피아 탄생의 기원’ 단독기사에서 “지난 2008년 연말 메트로와 지하철노조는 임단협 갱신 협상을 타결하면서 부대협약에 ‘향후 민간위탁을 추진할 시 노사 협의를 가진다’는 점을 명시했다”면서 “메피아가 탄생한 배경에 서울메트로 노사 간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지하철노조가 언론중재위 제소를 준비하고 있는 TV조선의 보도. 사진=TV조선 '강적들' 캡쳐

TV조선 시사프로그램 ‘강적들’에 나온 한 패널은 “강성노조의 압력에 못 이겨 부도덕한 회사를 만들었다”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진짜 주범은 귀족노조”라 주장했다.

이들 기사를 보면 서울메트로 노조는 당시 인력 구조조정, 안전업무 외주화 등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전적자 처우를 위한 노사담합에만 골몰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당시 노조는 사측의 일방적 외주화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운 것으로 확인됐다.

구의역 사고로 협력업체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차별 실태가 폭로되며 ‘메피아 부조리’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으나 이들을  특혜를 누려온 메피아로 볼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공기관 인력감축을 강행함에 따라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하청업체로 이직했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경정비 △차량기지 구내 운전 등 5개 업무를 ‘분사’ 형식으로 외주화해 1~5년 정년퇴직을 앞둔 정규직 인력을 내보냈다.

‘메피아 특혜 처우’는 노사협의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서울메트로가 결정해놓은 사안이다. 2008년 4월 서울메트로 창의혁신본부가 수립한 분사추진계획안을 보면, 만 53세~57세 직원의 퇴직을 전제로 분사업체가 이들을 재고용해 현 보수의 60%를 지급할 시 연평균 9992백만 원이 절감된다는 분석 등이 나와 있다. 계획안은 “‘분사 전출직원의 용이한 확보를 위해’ 분사 정년을 3년 연장하되, 정년이 2년 이하 1년 이상 남은 직원은 1년 연장(59세)”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현재 '메피아'에게 적용되는 임금체계도 분사계획안에 그대로 나와 있다.

▲ 2008년 4월 서울메트로 창의혁신본부가 작성한 '분사전출계획안'의 내용 중 일부 캡쳐.

지하철노조는 서울메트로의 유인책에 따라 조합원이 퇴직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08년 7월 조합원통신문에서 “전출 희망 직원이 극소수에 불과하자 회사 측은 탈법적 무리수를 두고 있다”면서 “조합원은 안정된 직장과 고용보장을 위해 공사 일방의 분할 민영화에 일체 참여하지 마시기 바란다”고 행동지침을 내렸다.

이호영 지하철노조 선전국장은 “2008년 서울 지하철엔 노사 간 전례 없는 극심한 충돌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2008년 7월 노조 소식지는 “분사는 파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분사는 극소수 퇴물 관료들의 먹튀식 사익추구 행각” 등의 외주화 반대 선언을 적고 있다. 노조는 사장 출근 저지, 집단 항의 농성 등의 직접행동을 비롯해 서울시, 정부, 국회, 시의회 등에 진정을 제기하며 외주화 반대에 앞장섰다. 이 결과 조합원 70명이 해고 및 직위해제 징계를 당했고 노조는 140차례 고소고발을 당했다.

노조는 2008년부터 매해 외주업무 직영화를 단체교섭 요구로 상정해왔다.  노조의 2012년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을 보면 ‘추가 구조조정 및 인력감축 추진계획 철회’와 ‘조건부 외주용역, 청소 및 하청노동자 고용 보장’이 포함돼있다. 이는 2013년, 2014년 임단협 노동조합 요구안에서도 발견된다.

▲ 2008년 9월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발행한 조합원 소식지
▲ 2008년 4월29일 서울지하철 노조가 서울메트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서울메트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지하철 노조 제공

지하철노조는 ‘향후 민간위탁을 추진할 시 노사 협의를 가진다’는 2008년 협의문구는 특혜를 얻기 위한 노사담합이 아니라 외주화 저지 투쟁 실패 끝에 어쩔 수 없이 교섭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지하철노조는 “열세와 고립을 면치 못하던 노조가 이미 설립절차가 완료된 외주화를 철회시키지 못했다”면서 “상기 합의는 외주화 추가 확대, 전동차 중정비 분야 추가 외주화 등에 대해 일방적으로 추진해선 안 되고 노사 간 성실한 협의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이 밖에 중앙일보가 지적한 2011년 협의 문구 ‘사측이 퇴직자의 분사 재취업을 알선하고 처우를 보장한다’의 경우 지하철 노조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2011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노사 간 그 같은 문구 합의는 단 한 줄도 없었다”며 해당 보도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아시아경제는 2015년 말 서울메트로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노사가 ‘퇴직프로그램’ 마련에 합의한 것을 두고 “노사는 최근에도 ‘메피아’의 존속·확장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하철 노조는 “해당 직원의 임금손실과 생계 불안을 해소하고자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협의했다. 정부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장년고용 조합대책’으로 인생이모작 지원제도, 사회공헌 일자리 확대 등을 내놓은 바 있다”며 “사실관계에는 눈감고 억지로 꿰맞춘 보도”라고 반박했다.

▲ 2012년 서울지하철 노조가 작성한 임단협 요구 내용안

서울지하철 노조는 이와 같은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 법적 소송 등으로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노조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 “‘메피아’ 부조리와 비정규직 차별은, 생명과 안전보다 돈을 중시하는 ‘경영 효율화’ 맹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정치권력과 부패 관료의 담합을 자양분으로 삼아왔다”며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의 호소에는 귀 닫고 눈 감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호도하여 때마다 노조 매도를 일삼는 언론이야말로 범죄의 공모자”라고 비판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차별을 방관했다는 지적에 이호영 서울지하철노조 선전홍보부장은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착취구조에 눈을 돌리지 못한 점은 노조가 크게 자성할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와 노사 담합으로 ‘메피아’를 양산했다는 언론 일각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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