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는 옥시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가습기 피해자는 현재까지 정부에 신고된 수만 2336명에 달하고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462명이다. 검찰 수사 결과 가해 기업들은 제조원료의 독성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원료를 써 추가 피해를 양산해왔고 옥시레킷벤키져는 독성을 입증한 보고서를 은폐하기까지 했다. 가해 기업은 인명 피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이 기댈 수 있는 법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다. 재해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물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생명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제품의 허위 표시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옥시레킷벤키져가 받게 될 처벌은 1억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수백 명의 희생에 상응하는 책임이 될 수 있을까.

중대재해를 낳은 기업을 처벌할 법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영책임자의 안전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무원의 관리·감독 과실에 대한 법적 처벌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토론회’를 열고 20대 국회에 발의할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기업처벌법)’ 준비안을 발표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6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토론회’를 열고 20대 국회에 발의할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기업처벌법)’ 준비안을 발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산업재해·시민재해, 기업의 조직적 범죄 행위로 봐야

기업처벌법의 대전제는 대형재해 사건은 ‘조직 차원’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발제를 맡은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조직유발사고’라 말하며 “오늘날 기업의 위험관리는 점점 시스템화되고 각 행위자는 시스템의 한 부문에서 한정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면서 “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안전하지 않은 행동을 저지른 하위직 노동자에게만 재해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업이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 무기력하게 된다. 그러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관할하고 지배하는 것은 기업, 그리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라고 지적했다.

기업처벌법은 기업과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를 이행하게끔 이들에게 대형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명확히 지우는 수단이다. 현행법상으론 기업을 처벌하기란 불가능하고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위반 법규에 ‘벌금 100만 원 이하’ 같이 처벌규정이 달려있을 경우에만 처벌을 받는다. 가령 청해진 해운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화물과적과 고박부실을 일삼아왔고 이것이 참사를 일으킨 원인이었으나, 청해진 해운은 ‘과실선박기름배출’ 위반으로 벌금 1000만 원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대형재해의 책임 규명은 최고 경영책임자에게까지 올라가지도 않는다. 대부분 재해에 직접 영향을 준 하위직 직원이 업무상과실치사사상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현행법은 ‘과실이 입증될 경우’ 최고경영진에게도 재해 책임을 지우고 있지만, 기업의 책임 분산 구조 등의 이유로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봐주기 수사’라 불리는 검찰의 자의적 기소 탓도 크다. 1년 동안 10명이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 가스 누출 사고의 경우, 기소된 사측 관계자 중 당진공장 생산본부장이 가장 높은 직책이었다.

때문에 대형재해를 ‘조직의 구조적 범죄 행위’로 간주하지 않으면 재해 예방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강조됐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재 사망을) 안전 난간을 설치 안 했다는 단순한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본다든가, 안전 매뉴얼이 없거나 지키지 않아서 발생했다고 본다”면서 “(추락사한) 노동자가 왜 저기 빠져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나 단순한 기술적 수준의 위반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상태에서는 대형재해를 근절할 수가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기업·최고경영자 형사 책임 물어야 안전 사회 가능해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제정안은 1조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과 다중이용시설 및 다중을 상대로 교육·강연·공연 등을 행하는 장소에서 안전관리 및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보건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범죄”에 대해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을 처벌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 법인 처벌 조항’이다. 기업처벌법 제정안 5조는 기업이 소유·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법인, 경영책임자, 대리인, 종업원이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나 결함이 있는 제조물을 제조하여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한다.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과 보건 상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을 조장하는 ‘조직문화’가 존재할 땐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한다.

사업주·경영책임자의 포괄적인 안전조치 의무와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기업의 안전·보건 의무에 관한 한, 해당 기업과 기업책임자가 최종적으로 포괄적인 의무 주체임을 보다 분명히 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이나 다중이용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 국가행정기관도 안전의무의 주체로 사정하고 처벌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제정안은 △사업장·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감독 책임 △건축 및 사용에 대한 인·허가 책임 △원료나 제조물 취급 및 사용에 대한 인·허가 책임 등을 소홀히 한 공무원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공무원 처벌 조항도 두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의 흔적도 보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가 ‘악의적인’ 행동으로 입은 피해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다. 독성 물질임을 알면서도 해당 원료를 쓴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과태료, 영업정지 같은 행정제재보다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기업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처벌이라는 취지의 제도다.

제정연대는 9조를 통해 “사업주나 법인 또는 경영책임자,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이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경우 손해액의 12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진다.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 지난 5월31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희생된 고 김아무개군의 친구와 흙수저당, 청년전태일 등에서 나온 청년들, 시민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김군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대기업은 안전관리 잘해? 중소기업보다 안 지켜… 법인 책임 강화는 선택의 문제

기업처벌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에 배치된다는 반론이 제기돼 온 데 대해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선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형법 10조를 예로 들며 “10조는 (피고인이) ‘심신장애’인 경우 형을 감경하는 조항인데 성폭력특별법이나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 원칙을 배제한다. 기업 처벌 문제도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면서 “프랑스는 법인의 형사처벌을 인정하지 않는 ‘대륙법’ 쪽이면서도 형법 자체에 법인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책임자 개개인에게 안전의무 위반 책임을 획일적으로 물을 수 있는지 반론도 제기됐다. 책임자가 기업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위험방지 의무나 안전관리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최명선 노안보건국장은 이와 관련해 “당진현대제철의 경우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금액이 0원이었다. 하청에 내려보내는 관리비도 내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싸움 과정에서 전담관리보건자가 한 명도 없었던 사실이 확인된 적 있다”면서 “(민주노총 조사결과) 대기업들이 전체 기업 평균 이하로 안전보건에 투자하고 있는게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2012년 기준 사업장 규모별로 매출액 대비 안전보건지출 비중을 비교한 결과 50인 미만 사업장은 0.27%, 50~99인 사업장은 0.40%인 반면, 500~999인 사업장은 0.08%, 1000인 이상 사업장은 0.06%로 나타났다.

더욱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정안은 개인의 의무 위반이 전제돼야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방식이다. 최정학 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기업의 조직구조상의 결함에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호주의 기업처벌법처럼 기업의 독자적인 형사책임을 과감하게 주장하라고 제안했다.

같은 취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교수는 “강력한 처벌은 결국 금전성 제재밖에 없다”며 “철저한 제재를 통해 ‘다시 한 번 사고 났을 땐 기업이 망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기업들에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일 조사관보는 “처벌, 법인 형사처벌, 징벌적 손해배상도 하고 이익에 대해 몰수추징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23일 열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토론회는 416연대 안전사회위원회 및 박주민·전해철·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사진은 토론회에 참석한 전해철 의원의 발언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모호한 규정 구체화, 실효성 강화해야 입법 과정 통과할 수 있어

법리적 검토는 과제로 남았다. 모호하게 표현된 일부 구문을 구체화하고 다른 법 조항과의 관계를 검토한 수정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정안이 명시한 ‘산업안전보건범죄’ 개념과 ‘안전보건조치의무’ 구문의 모호성이 지적돼 향후 구체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됐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일부 도입한 규정에 대해서도 ‘악의적 불법행위’를 요건으로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재해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정안의 이름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이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중대재해 상황에 대한 법인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제정안 이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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