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 철거 앞두고 이사 했어요. 차로 한 25분 이동하는 곳으로요. 이사한 곳도 좋은데 마음은 이쪽(우토로 마을)에 오면 더 좋은 거 같아요.” (강춘자, 72세)

강춘자 할머니는 지난 17일 오랜만에 일본 교토부 우지시 51번지 우토로 마을을 찾았다. 한달 전인 5월17일까지만 해도 살던 곳인데 이제는 가끔 일이 있을 때 방문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강춘자 할머니는 1939년 우토로 마을에서 일본군 비행기 활주로를 만들던 아버지를 찾아 와 가족과 함께 우토로에서 살게 됐다. 당시 할머니 나이 5세. 그는 77년 간 우토로 마을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가 처음으로 마을을 떠나게 됐다.

다음 달부터 공사가 시작되는 우토로 마을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42년 한때 식민지 출신 조선인 노동자가 1300명에 달했던 마을, 1989년 서일본식산이 우토로 주민에게 토지 명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주거 불안이 일단락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우토로 마을의 현재와 미래. 구글 위성 지도 내의 노란선은 마치즈쿠리 사업 이후 새로 놓일 도로를 표시한 것이다. 한국 정부와 한일시민사회 모금 등으로 매입한 토지는 4,5,7,9번 사진이 포함된 구역으로 여기에 건물 두 동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이주하게 된다.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2010년 한국 정부 예산 30억원과 한·일 시민사회와 동포들이 모은 모금액 17억원을 들여 우토로 마을 토지를 매입한 이후 본격적인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된다. 마을의 중심인 동포 생활센터 에루화(지화자, 좋다라는 뜻의 우리말 감탄사)를 중심으로 한 우토로 곳곳에는 변화된 모습과 현재가 공존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하수구다. 에루화 건물 마당을 가로질러 자위대와 맞닿는 도로는 지난 5월 완공됐다. 새로 놓인 듯 윤기 있는 까만빛을 내는 아스팔트 도로가 잘 닦였다. 도로가에는 반짝반짝한 은빛의 하수구 덮개가 있다. 우토로 마치즈쿠리 사업의 전초작업인 마을 인근 길 확·포장 공사 후 달라진 모습이다.

마을 안내를 하던 김수환 미나미구 동포생활센터 대표는 “이 도로 위로는 우토로 마치즈쿠리 사업을 위한 공사 차량이 지나다니게 되고 지하로는 우토로 마을로 연결되는 상하수도 시설이 준비돼 있다”며 “이 하수구 하나 놓는데 77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마을 안길은 정반대 모습이다. 여전히 1945년 해방 당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KIN(지구촌동포연대) 우토로 방문단과 김수환 대표는 곳곳에 움푹 패인 물웅덩이를 조심스레 피해갔다. 일찍 장마철로 접어든 교토부에 전날 내린 비가 여전히 고여 있다.

▲ 김수환 미나미구 동포생활센터 대표가 17일 옛 우토로 마을 입구 사진을 담은 기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뒤는 사진 속 마을 입구의 현재 모습. (위 이미지의 3번 사진)


마을 안쪽의 하수구는 새 도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폭 10cm 가량의 수로 같은 곳을 시멘트로 발라 하수구로 쓰고 있다. 게다가 지상으로 드러나 있어 비가 오면 빗물과 하수가 섞이기 일쑤다.

일본인 거주구역과 맞닿은 곳에선 우토로 마을의 열악함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길 하나 차이로 건너편은 좁은 골목이지만 깨끗하게 포장돼 있다. 우토로 마을은 흙바닥에 하수구가 드러나 있다.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전쟁 당시 비행기 활주로 건설에 사용할 흙을 조달하고 남은 자리에 마련됐다. 다른 지대보다 낮아서 비라도 내리면 물이 잘 고이는 데다 하수구까지 지상에 드러나 있어 범람도 잦았다. 

김수환 대표는 “상하수도 시설 자체가 없다보니 비가 오면 오물과 폐수가 비에 섞여서 모두 흘러 넘쳤다”며 “위생은 어땠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춘자 할머니는 “어릴 때 비가 오면 무릎까지 물이 넘치곤 했다”고 기억했다.

“어릴 때 기억해보면 집안에 물이 꽉 차서 (무릎 높이를 가리키며) 여기까지 찼어요. 중학교 때까지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어릴 때엔 그게 뭔 지 아나. 어른들은 심각했겠지만… 우리는 어릴 때 물 위에서 널빤지 타고 놀고 그랬죠.”(강춘자)

이런 물난리는 2년에 한번 우토로를 덮쳤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강경남 할머니(우토로 전후 1세대) 집 앞집 가족도 3년 전에 마을을 떠났다. 당시 집 안까지 치고 들어온 빗물을 견디다 못해 결국 떠나갔다고 한다.

▲ KIN(지구촌동포연대) 우토로 방문단과 김수환 미나미구 동포생활센터 대표가 17일 일본 우토로를 답사하며 함바 문을 열어보고 있다. (이미지의 1번 사진) 


우토로 마을엔 일제시대 유물인 ‘함바’도 남아있다. 주로 독신인 조선인 노동자들의 합숙소로 이용된 함바는 낡은 건물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수환 대표는 “1980년대까지 사용했던 곳”이라며 함바 출입문을 열어줬다.

그는 “들어가 보셔도 되지만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확답할 수는 없다”고 농담을 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함바는 천장이 뚫리고 바닥도 내려앉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방은 다다미가 깔린 방 두 칸으로 나뉘고 한국식 대청마루처럼 좁은 마루가 놓여있다.

김현태 리츠메이칸대 객원 연구원은 “함바는 보통 다다미 6개가 깔린 6조가 기본이었던 것 같다”며 “이런 방에서 최대 10명까지 잤다는 기록이 있다. 좁은 방이라서 다들 모로 누워 자야 한다”고 몸을 반으로 접어 보였다.

현재 주민들은 차근차근 이사를 나가고 있다. 60% 주민이 먼저 이사를 나가면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마치즈쿠리 사업을 위한 철거가 시작된다. 1년 반에서 2년쯤 뒤면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된 공적주택( 일본은 공공임대주택이 공영주택과 공적주택으로 나뉘는데 공영주택은 일정기준을 채우는 저소득자가 다 들어갈 수 있고, 공적주택은 공영주택 입주 기준+특정 목적 기준에 부합해야 입주 가능)이 들어서겠지만 70여년을 이어온 우토로 마을의 옛 모습은 사라진다.

새로 들어서는 우토로 마을에선 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하수도 시설과 일제 당시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함바다. 그리고 그 마을에는 방문객이 찾아가면 흥겨운 노래로 맞아줄 강경남 할머니도 없다.

강경남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산 집을 마치즈쿠리 사업 후에도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우지시는 용인하지 않았다. 특정 목적에 맞게 현 거주자를 재입주 시킬 목적의 공적 주택을 제공하지만 이전 집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보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강경남 할머니가 뒤로 멀리 보이는 2층 건물 집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이미지의 2번 사진) 


우토로 주민들이 이사 간 곳은 흩어져있긴 하지만 모두 우지시가 제공한 공영주택에 입주했다. 마을이 재개발되는 동안 임시로 거처하게 되는 곳이다. 주차장 사용료 4000엔과 아파트 관리비 4500엔을 내면 되는 저렴한 임대 주택이다.

주민들은 이사 자체에 대한 불안감도 표출했다. 강춘자 할머니 동생인 도자 할머니는 “나이도 나이지만 이사라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귀찮고 피곤한 일”이라며 “1년 반 뒤 다시 이사할 생각을 하니 깜깜하다. 지금 사는 곳도 마음에 들어 계속 살고 싶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른 한 주민은 “개인적으로 (오래 살던) 집도 없어지고 이사도 해야 해서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조춘자 할머니는 “한 명 두 명 모두 이사 가고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이런 자리 아니면 만나기 힘들어졌다”며 “자주 못 만서 아쉽고 쓸쓸하다”고 말했다.

일본인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사이토 마사키 공동대표는 이날 “2년 뒤 40채가 지어지면 주민들이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사업의 90% 가량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사업이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 김수환 미나미구 동포생활센터 대표가 17일 우토로 내의 하수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의 5번 사진)


사이토 대표는 이와 함께 “마을 주민들과 때때로 마을 카페를 열고 있다”며 “주민들이 집을 지킨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공동체가 이어져 나가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카페를 열어 한 달에 한 번 만날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우토로국제대책회의 간사 단체 역할을 했던 KIN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최상구 KIN 사무국장은 “현재 일본 행정부가 조선인 집단 주거지의 역사성을 배제한 채 불량주택 개선 사업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특히 우토로는 한국 정치인과 정부, 재일동포와 한국 시민이 나섰던만큼 그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토로 주민들은 역사기념관(가칭)을 건립해 우토로 현재 마을 모양과 주민 생활 등을 기억하고 우토로 마을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방송을 보고 찾아오는 시민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와 주민을 위한 모임 공간 등도 포함하겠다는 게 이들 계획이다.

다만 우토로역사기념관 건립 문제는 공적주택이 완성되는 시점 즈음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우토로에 관련된 다양한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김수환 대표는 “일본 대법원이 강제퇴거 명령을 내린 가운데서도 동포들이 마을을 지켜냈다는 측면도 있다”며 “일단은 주민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은 이후에 부가적인 사업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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