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지인씨(가명)에게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2009, 미국)는 '인생영화'다.  '바비를 위한 기도'는 아들을 변화시키려던 어머니가 아들이 자살한 이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가입해 성소수자 인권운동가가 된 메리 그리피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지인씨는 영화에서 “아이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건 동성애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다”라는 대사가 나올 때 눈물을 흘렸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창립멤버인 지인씨를 20일 강남역에서 만나 2시간 가량 인터뷰했다.  

▲ 지난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성소수자 부모모임 제공
“처음에 아들이 게이인 걸 알았을 때는 ‘아이가 어렸을 때 태권도를 더 시킬걸’ 하는 잘못된 생각까지 했다. 충격과 자책의 단계였다. 1년 쯤 울고 나니 감정적으로 안정됐고 이것저것 찾아봤다.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보고나서 다른 성소수자 부모들은 어떤지 궁금해졌고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들의 커밍아웃을 들은 지 1년이 지나고 지인씨는 ‘성소수자인권연대’에 전화를 걸어 다른 성소수자의 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2013년 겨울 3명의 성소수자 부모가 만났다. 부모들은 다음 달에도 만나게 됐고 정기 모임이 됐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미 미국에서는 PFLAG(피플레그)라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40년 전에 생겼다. 1973년에 20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지금은 미국 전역에 500개 지부가 있고 회원은 20만 명이다. 한국은 늦은 편이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 관련 모임이 활발하다. 중국은 성소수자모임이 생긴지 8년 됐고 50개 도시에 1200명의 활동가가 있다. 일본도 10년 전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생겼다. 지난 5월 10일에는 서울 중앙대에서 중국과 일본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초청해 '아시아 LGBT 부모모임 초청 포럼'을 열기도 했다. 

"이날 중국에서 온 한 부모가 '한국은 3년 됐는데 8년된 우리를 초청하다니'라고 놀라워했다. 포럼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중국이나 일본의 성수자 부모모임은 정기모임을 갖고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활동은 물론이고 정치인이나 공인이 혐오 발언을 하면 단체로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인식개선을 위해 출판물을 배포하는 활동도 한다. 앞으로 우리가 배울 점들이다."

▲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모습. 사진= 성소수자 부모모임 제공
한국에서 2013년 만들어지고 2014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정기모임을 갖는다. 보통 30~40명 정도가 모인다. 성소수자의 부모도 있고, 성소수자들도 온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자식에게 팁을 주기도하고, 부모에게는 자식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부모모임에서 성소수자들이 많이 하는 고민 상담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일찍 말하기를 바란다. 혼자만 비밀을 가지고 끙끙 거렸을 걸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 나는 아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부모 성향을 들어보면 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독립할 수 있을 때 말하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비밀이 없기를 바라지만 막상 커밍아웃을 하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또 힘든 일이라고 한다. 지인씨는 커밍아웃 이후 부모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만약 부모가 이해를 못해준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커밍아웃 이후 받아들일 시간을 주라고 조언했다.

“커밍아웃을 접하고 나서 부모들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쿨하게 바로 받아들이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의 경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만해도 거의 2년이 걸렸다. 성소수자에 대해 받아들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식에게 큰 비밀이 있었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스스로도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 시간을 가지고 부모와 함께 모임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나.”

▲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정기모임을 하는 모습. 사진= 성소수자 부모모임 제공
부모모임에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하거나 처음 찾아오는 부모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고 한다.
“정신질환이냐, 고칠 수 있냐, 내 잘못 아니냐고 울기도 하고. 에이즈 걸리면 어쩌느냐, 이거 죄 아니냐. 거의 비슷한 질문이 쏟아진다. 사실 처음엔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도 뒤져보고 책도 보면서 공부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하고 혐오에 기반을 둔 허위정보가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가이드북’을 제작해 편견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정리했다. 가이드북을 통해 △동성애나 양성애, 무성애는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와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질병이 아님이 공표됐다는 점 △탈동성애 운동을 펼쳤던 ‘액소더스 인터내셔널’은 2013년 공식 사과를 발표하며 문을 닫았으며 탈동성애 치료는 허위라는 점 △성소수자는 모든 형태의 가족에서 나타나기에 특정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에이즈(AIDS)는 감염되어도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와 치료를 받으면 되는 무서운 병이 아닌 점 등을 알 수 있다.

▲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발간한 자료. 사진=성소수자 부모모임 홈페이지

부모모임과 성소수자 간의 관계는 점점 더 연결되고 확대되고 있다. 부모모임은 작년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첫 번째에는 6명이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30명 가까이 참가했다.

두 번째 참가인 올해에 프리허그를 진행했고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현재 한국  조회수만 40만이 넘었다. 외신을 타고 넘어간 영문판 영상은 475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미국의 영화배우 마가렛 조(Margaret Cho)의 페이스북에 공유되기도 했다. 부모모임에서는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는 사람 있으면 한번 안아주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프리허그하는 곳에 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다. 애들도 울고 우리도 울고. 감동적이었다. 이야기 해보면 어찌나 부모 걱정을 하는지. 자기 부모님 쓰러지면 어떡하냐고 고민하더라.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이 취향으로 동성애를 한다고 말한다. 그냥 취향이라면 이렇게 걱정하면서 힘들어하겠나.”


인터뷰 내내 지인씨는 준비해 온 자료집들과 논문을 이것저것 꺼내보였다. 지인씨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확산된 성소수자 혐오에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모임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메리 그리피스가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이 없던 자신을 후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살게 하고 싶다.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는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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