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치는 정치의 모습은 때론 스포츠경기입니다. 새누리당이 이기나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나 친노가 이기나 친박이 이기나. 하지만 정치란 스포츠경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리더라도, 아주 작은 하나라도 바꿔내 결국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일입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디어오늘 기고를 통해 진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편집자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536-6번지 건물주이자 가수인 <리쌍>의 노래 한 소절이다. 그러나 진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은 리쌍 소유 건물의 지하층 세입자 ‘서윤수’라는 사내다. 나와는 동갑내기, 곱창집 사장님, ‘맘상모’ 대표 그리고 셋째아이를 꿈꾸는 4인 가족의 가장.

신사동 가로수길에 가면 ‘리쌍포차센터’라는 술집이 있고, 그 지하에 곱창집 ‘우장창창’이 있다. 지하층에 곱창집이라니 생소하지만 그래도 햇수로 7년 째 성업 중, 그러나 서윤수 사장이 처음부터 지하에서 불을 피운 건 아니다.

▲ 서윤수 씨의 우장창창이 세들어 있는 가수 리쌍이 주인인 신사동 건물.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10년 11월, 서씨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퇴직금에 빚을 소복하게 얹어서 ‘우장창창’을 열었다. 일자리는 없고 장사도 안 되는 민생파탄, 서민도탄의 시대에 34살 애기아빠 직딩이 감히 사표를 내다니, 게다가 권리금 2억7천에 시설비․보증금 약 1억원을 더해 무려 4억을 곱창집에 몰빵하다니,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하다. 이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깜깜이던가 아니면 희대의 용자거나, 이러나저러나 평범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려니 싶었다.

▲ 지난 2013년 5월28일 참여연대에서 상가임대차 피해사례 발표 중인 서윤수 우장창장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근데 장사가 잘 된다. 서윤수 사장의 비결이라면 장사 수완이 없는 게 수완이고, 요령을 안 피는 게 요령이었다. 매일 하루에 두 번 씩 시장에 가서 남보다 좋은 재료를 획득하는 것, 그 단순한 원칙 하나를 단순하게 지켰을 뿐이다. ‘그래서 윤수씨네 가족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헬조선의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기에,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삶에 새로 온 건물주 길과 개리가 나타난다.

개업한 지 겨우 1년 반 만에 건물주가 바뀌고, 서윤수 사장의 인생도 확 바뀐다. 조물주 위의 대한민국 건물주, 임차인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갓(God)물주 리쌍은 본인이 건물 1층에서 직접 장사를 하고 싶다며 서윤수 사장에게 우장창창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한다. 즉 서 사장은 보증금을 제외하고 3억이 넘는 권리금과 시설비를 하루아침에 날리게 된 것이다. 돈 3억도 3억이지만 정말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사실은 리쌍의 요구가 합법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위기, 벼랑 끝에 놓인 인간 서윤수는 우울증에 걸리는 대신 잘못된 법을 고치기로 결심한다. 법을 바꿔도 본인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부조리한 법을 바꾸고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바꾸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거, 그런 투지․고집․성깔․원칙 등등을 가진 사람이 파는 곱창,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서윤수 우장창창 대표가 전단지를 나눠주던중 찾아와 리쌍측과 좋게좋게 넘어가라고 얘기하는 인근 상인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결과적으로 19대 국회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두 차례 개정했다. 같은 법을 한 번 개정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과 달리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손대기 싫어하는 상가법을 두 번이나 고치다니, 이는 전적으로 서윤수 사장의 결심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서윤수 사장이 깃발을 흔들자 전국 각지에서 억울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장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 분들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를 결성하고 여론을 환기시키고 국회를 압박(?)해서 두 번의 법 개정을 이뤄낸다. 아직도 뜯어고칠 게 많은 상가법이지만 이후에도 맘상모는 해낼 것이다.

법 개정 말고도 서윤수 사장은 삶의 터전인 ‘우장창창’을 지켜낸다. 1층을 리쌍에게 내주는 대신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지하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이 사연에 굴욕감을 느낀다면 당신도 세입자 신세인가보다. 그러나 한 푼도 못 건지고 길바닥에 나 앉아도 보호해 줄 법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서윤수 사장의 생존기는 많은 사장님들한테는 그마저 동경의 대상이다.

서윤수 사장은 이제 맘상모의 대표다. 우장창창이 해결됐다고 이 싸움을 접지 않은 것이다. 서 사장님뿐 아니라 맘상모 회원 분들이 다들 참 이상하다. 나는 맘상모와 함께 하면서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극복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맘상모가 만들어 지는 과정과 투쟁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사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처음 맘상모가 만들어질 때,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모임이 지속 가능한 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억울한 사장님들이 모인 건 좋지만, 자기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히도 쫓겨나거나 어쨌든 상황이 종료되면 맘상모 활동을 접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이익단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맘상모 역시 이익단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보였다.

▲ 가수 싸이와 분쟁을 겪었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지난 1월28일 오후 테이크아웃드로잉에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강제집행을 막기 위한 기둥이 세워져있었다. 유리문 역시 자물쇠로 잠겨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맘상모의 활동은 다양하다. 그만큼 회원들은 각자의 시간과 노력을 내놓아야 한다. 국회 앞 1인 시위, 상가법이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국회 토론회는 기본이고, 상가법 개정을 위해 전방위적인 국회 로비(?)를 한다. 건물주에게 사형선고-임차상인에게 가게를 잃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기에-를 받은 회원이 있으면 기자회견, 길게는 200일이 넘는 1인 시위, 정기적인 문화제를 집요하게 이어 나간다. 그래도 합의가 안 되면 건물주는 강제퇴거를 시도하고, 회원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용역업체를 막기 위해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 전쟁 같은 나날을 견뎌내야 한다.

기어코 사단이 날 때, 용역의 폭력에 찢어지고 멍든 몸뚱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어제까지도 건강한 밥을 지어 정성껏 대접하던 밥솥이며 숟가락, 젓가락이 길바닥에 나 뒹구는 광경을 보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장사하러 가는 회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살아야하나 말아야하나? 대체 내가 뭘 잘못했나? 건물 한 채 사지 못한 거, 그게 대한민국에서는 죄목이 된단 말인가? 단지 맘 편히 장사를 하기 위해서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아니 이 사회는 야만적이다.

맘상모 회원들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서로를 지킨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단지 가게가 아니었다. 삶의 의지를, 서로의 목숨을 지킨다. 법이 지켜주지 않는 버림받은 삶을 당당하게, 굳건히, 스스로 지켜 낸다. 밤늦게 장사를 마치고 한 숨이라도 더 자고픈 사장님들이 한 두 시간 거리를 마다않고 눈물겹게 연대하는 것을 나는 그냥 기적이라고 부른다. 국가의 주인은 법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그들은 옳고, 대한민국 정치는 아직 천박하고 미숙하다.

처음 맘상모를 만난 곳은 참여연대였다. 맘상모 결성을 준비하는 임차상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장사가 잘 되면 도리어 망하는 사장님들의 사연, 상권이 없는 곳에 문화와 활기를 불어넣은 장본인들이 탐욕스런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고질적인 현상을 생생하게 들었다. IMF 전후로 청년기를 보낸 내 또래의 젊은 사장님들이 어떻게 일터, 즉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짧은 성공과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 모든 사연은 하나같이 처절했다. 내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맘상모와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세대적 동질감, 그리고 평생 손바닥만 한 가게를 운영하며 나를 키워 낸 홀어머니의 삶을 연상했기 떄문이다.

그리고는 맘상모가 부르는 곳에 달려갔다. 기자회견도 하고, 분쟁이 있는 상가에도 가고,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에게 존재감을 발산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현장에 있을 때 그 때 뿐이었지만, 맘상모 회원들은 이따금 현장을 어슬렁대는 국회의원의 존재가 반가웠다고 한다. 나는 상가법 개정안도 발의했고, 회원 분들이 국회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도록 맘상모의 국회 출입증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진짜 정치’는 내가 아닌 맘상모 회원들이 한 것이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 아니 그들은 삶 자체를 활활 불태웠고 나는 겨우 풀무질을 했을 뿐이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법을 제대로 못 만들어서 벌어진 일인데, 법을 어기지도 않은 건물주를 왜 비난하고 압박하는지 꼬집기도 했다. 물론 맞는 말이고 부인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맘상모와 함께 거리에 서서 건물주에게 상생을 촉구하던 일, 상가법 개정을 촉구하던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직 상가법이 악법인 것은 국회의원인 내 책임이고 잘못이 있다면 나한테 있는 거다. 그러니 건물주에게 제발 내쫓지 말아달라고 사정할 의무도 내게 있지 않은가?

국회의원이 입법기관이긴 하지만 행정․사법부와 달리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다. 국민께서 일할 기회를 주신 거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인간의 고통을 객관화하고 사무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고통을 마치 가족처럼 나눠야한다. 진짜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해도 진단하고 돌아서는 의사가 아니라 가족처럼 친구처럼 병상을 지켜야 한다. 정말 방법은 없는지 집요하게 타인의 고통에 집착해야 한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없는 정치인은 거의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정치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일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이다. 정치인은 수도자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해야한다. 그런 정치인이 있기는 한가?

▲ 지난 6월10일 맘상모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 전 의원은 맘상모 고문도 맡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하에서 곱창을 굽는 서윤수 사장은 이제 어려운 시절 다 보내고 맘 편히 장사만 하면 되는 것일까? 지난 4월 갓물주 리쌍은 서윤수 사장에게 2차 사형선고를 내렸다. 계약갱신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색이 맘상모의 대표가 허를 찔린 것이다.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서울 기준)이 넘는 상가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아예 받지 못한다는 법의 허점을 잘도 활용해서, 리쌍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윤수 사장의 등에 다시 칼을 겨눴다.

▲ 서윤수 씨가 우장창창 앞에서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래서 서윤수 사장은 또 다시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에 가지 못하고, 불 꺼진 곱창집에서 서러운 불면의 밤을 지새운 지 벌써 오래다. 그러나 매일 새벽 6시, 지킴이조를 짜서 우장창창으로 출근하는 맘상모 회원들이 있기에 이번에도 서윤수 사장은 이기고 리쌍은 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리쌍은 방송에서처럼 멋진 모습을 진짜 삶에서도 보여주시기 바란다. 공교롭게 서 사장도 나도 건물주도 77년생 동갑이라고 하더라. 길씨, 멋지게 잘 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맘상모의 여러 현장에 연대한 블루스 뮤지션, 출장작곡가, 내 오랜 친구 김동산의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윤수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4인 가족’이다.

4인 가족- 작사,곡 김동산

1. 계고장을 받은 첫날은 깜깜했지
하루정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
맘상모 회원들의 강제집행 막으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내가 그런 어이없는 이유로 질 줄은 몰랐어

2. 건설회사 다니다가 그만둔 이유는
나도 모르는 걸 사람들에게 강요했었지
하루에 두 번 시장에 가고 건강한 밥을 짓는 건
거짓이 아닌 진실한 삶이야
하지만 없는 사람에게 법은 너무나 가혹하구나

* 그저 맘편히 장사하고 싶어
제일 좋은 재료 구해서 정성껏 대접하면
4인 가족이 그저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삶을 지키고 싶어


부탁의 말씀이 하나 더 있다. 무한도전, 런닝맨 같은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불특정다수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공인으로서, 인기도 수입도 적지 않을 리쌍(길, 개리)이 단지 돈을 더 벌기 위해 서윤수 사장과 4인 가족의 미래를 빼앗겠다는 발상은 아무리 합법적이라 해도 납득이 어렵다.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리쌍이 출연하는 방송 게시판에 우장창창을 지지하는 글, 리쌍에게 상생을 촉구하는 글을 남겨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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