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 행정자치부가 이 시장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파악한다며 메모지 행태로 이 시장의 업무 일정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성남시 측은 중앙정부의 눈엣 가시가 된 이재명 시장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사찰'에 가까운 행태를 벌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2014년 1월 6일부터 2016년 6월 30일 사이 특정 날짜를 지정해 이재명 성남시장의 일정 내역을 제출하라고 성남시 감사관실에 요구했다. 모두 90건의 날짜별 일정 내역을 파악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말부터 경기도와 소속 시군구를 상대로 정부합동감사를 벌이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지자체단체장의 일정 내역을 파악하라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요청 형식도 파격적이다. 공식 공문이 아니라 메모지에 직접 적은 내용을 그대로 팩스로 성남시 감사관실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팩스 발신지는 '행정자치부 지방재정 세제실 회계제도과'로 돼 있지만 회계제도과는 자료를 요청한 곳은 행정자치부 감사담당관실이라고 밝혔다. 

행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시장의 일정 내역을 요청한 것은 특정 날짜에 이재명 성남시장의 업무추진비 사용과 관련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는 이 시장에 대한 사찰과 무관하고 이 시장에만 국한된 자료 요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메모지 형식으로 성남시 감사관실에 전달된 것도 역시 감사 대상인 경기도에 메모지 형태로 이재명 시장의 일정 내역을 파악하라고 요청했는데 경기도 측이 그대로 메모지를 팩스로 전달했을 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감사관실 측은 "행자부 쪽 메모지가 어떻게 성남시 쪽으로 갔는지 파악 중"이라며 "경기도가 감사 대상이기 때문에 감사 주체인 행자부가 자료를 요구하면 소속 시군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행자부는 이재명 시장의 일정 내역 자료 요구가 특별한 게 아니며 다른 지자체에도 요구했다는 입장이지만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용인시와 과천시에 대해서는 같은 내용의 자료를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용인시와 과천시는 지자체단체장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용인시 감사담당관실은 "저희 쪽으로 온 비슷한 자료 요청 내용은 단체장의 연가 현황을 제출하라고 한 것 뿐"이라며 "메모지 행태로 시장의 일정 내역을 요청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과천시 감사담당관실도 "일정 내역을 뽑아 달라는 요청은 없었다. 보통 문서로 와야 자료 요청 효력이 발생하는데 (성남시 전달 메모지는)이례적이긴 하다"고 말했다.

▲ 이재명 성남시장이 3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한 자치단체 감사관실 관계자는 "종합감사라는게 감사 주체에 따라 어떤 특정한 자료에 대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빠서 메일로 오기도 하고 다급하면 전화로 오기도 한다"면서 "그럼에도 사장의 업무 추진비를 파악하기 위해 내역을 제출하라는 것은 이례적이다. 큰일이 닥치거나 과거 문제가 되는 사건에 시장이 부재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감사관이 어떤 의도로 방향을 보느냐에 따라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시는 행정자치부가 요청한 자료 내용과 형식이 관례에 어긋날 뿐더러 중앙정부에 반발해 이재명 시장이 단식 농성 중이라는 점에서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 시장은 단식 농성 일정도 성남시 업무의 연장이라고 밝히면서 여론을 환기시킨 바 있다. 또한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들도 단식에 동참하면서 지방재정 문제로 중앙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는 돌풍의 핵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무추진비를 파악하겠다며 이재명 시장의 일정 내역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은 중앙정부의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시장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정례 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 합동감사도 진행 중인데 업무추진비 내역까지 다 내라고 한다. 수사, 감사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는데 부당한 요구에는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시장은 14일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성남시장은 정부가 임명한 관선시장이 아니라, 헌법이 인정한 지방정부의 100만 시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 지방정부수반"이라며 "행자부가 산하단체장에게도 이런 요구를 한 일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 시장은 "100만 자치도시 도시 시장의 일정을 내 놓으라고요?"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일정을 내 놓으면 내 90일의 일정도 내 놓지요"라고 썼다.

성남시는 수사기관과 감사원도 무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자료 요청도 의도적인 성남시 죽이기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이재명 시장이 반정부인사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전방위 압박이 들어오는 중"이라며 "검찰에서 성남시 SNS 소통관과 관련해서 김모씨의 사람이 고발한 사건을 수사 중이고 13일엔 마을버스 증차 과정에서 금품 거래 의혹이 있다며 성남시청 교통도로국을 압수수색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말 안 듣고 정부의 부당지시 거부하고 반항한다고 보복차원에서 하는 먼지털이 수사 감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수사 감사 과정에서 마치 성남시를 부정부패 집단인양 요란하게 언론플레이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가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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