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기자들이 6·15 남북공동선언 16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북한 보도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고 반성하는 목소리를 내놓았다.

13일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공동상임대표 정일용) 주최로 서울 무교동 서울시NPO센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16주년 기념 토론회-평화통일을 위한 언론의 역할’에 참가한 현직 언론인들은 스스로 언론보도에 날선 비판을 했다.

최근 다시 북한 취재현장에 복귀한 김인구 뉴시스 북한전문기자는 이날 발제에서 “평화통일이라는 것이 합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라면, 이를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며 “대화는 선한 사람과만 할 수 없다. 칼 든 사람과도 하고, 테러범과도 해야 한다. 어떤 대화이냐는 것 뿐 안한다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대화를 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남북이 대화하도록 정부에 메시지를 주는 보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정상회담 두 차례를 비롯해 총리회담, 장관급회담 등 수많은 당국간 대화와 남북기본합의서 등 여러 합의문을 들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도 우리는 상대를 ‘모른다’고 한다”며 “순간순간의 목표와 목적 달성을 위한 대화만 해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보도에 대해 김 기자는 “(언론이) 사실을 고의적으로 뒤틀기도 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월급 때문이기도 하고, 시켜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사실보도에 입각했어야 하나 대북소식통, 탈북자 이야기 등 (부정확한 소설에 근거해) 마구잡이로 써왔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사전 배포한 발제문에서 북한 체제 붕괴설 보도를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북한 체제 붕괴설 보도를 두고 “정부 내에도 압박과 제재가 효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거나 정상적인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막연히 믿고 있는 분위기”라며 “우리 언론이 이를 확대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과연 그럴까? 정확하지 않는 정보에 근거한 북한 관련 보도는 언론의 신뢰도만 떨어뜨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온 이제훈 한겨레 통일외교팀장도 “북한 보도에서 사실보도만 지켜도 남북간에 벌어진 상당히 많은 문제가 안 일어났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에 사실확인이 불가능하고, 북한이 반론에 응하지도 않아 무엇이 오보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적 한계”라고 밝혔다.

▲ 13일 서울 무교동 서울NPO센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6주년 토론회에서 발제자 김인구(왼쪽) 뉴시스 북한전문기자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이 팀장은 이와 관련해 탈북자 보도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일간지 기자로 24년째 일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청와대 기자가 대통령이 뭐하는지 잘 모르고, 외교부 기자가 외교부 장관이 뭘하는지 잘 모른다”며 “그런데 폐쇄사회인 북한에 대해 그것도 탈북자들이 김정일·김정은이 뭘하는지 너무 잘 안다. 최소한의 검증 잣대 없이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가 공적 매체에 보도되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특히 지난 1995년 8월15일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과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이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 준칙의 보도 실천 요강에는 ‘남북 긴장해소 노력’, ‘관급자료 보도 유의’, ‘추측보도 지양’, ‘희화적 소재 지양’, ‘망명자 증언 신뢰 확보할 부분만 기사화’ 등이 담겨있다.

이제훈 팀장은 “보도제작 준칙도 언젠가는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95년도에 제정한 보도제작 준칙도 지키지 못하는 기자로서 죄송스럽다”고 반성했다.

한국기자협회 남북통일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류지영 서울신문 국제부 기자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과 현재 우리 언론을 비교했다.

류 기자는 “동서독은 1960년대부터 방송교류와 교차 시청을 해왔고, 이후 특파원 파견에 합의해 서독의 13개사 특파원이 동독에 가서 보도해왔다”며 “서독에서 파견된 동독 특파원들은 서독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상대 체제를 비난하는 것을 자제하고 사실위주 보도만 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류 기자는 “하지만 남북한은 상대방 정권 비난이 주가 돼있다 보니 이런 동질성 부분의 회복이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북한 붕괴설을 계속 보도하는 점을 두고 류 기자는 “우리가 계속 북한이 망한다, 망한다면서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통일 시대를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예수 재림을 예측하는 것처럼 무의미하며 조급증을 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 기자는 “뉴스를 통해 개혁개방을 이끌어야 한다는 계도적 생각도 버려야 한다”며 “탈북자들 대상 하나원 조사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남한 뉴스를 안믿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류 기자는 “통일 대박론이나 비핵개방 3000의 경우는 북한 주민들이 볼 때 불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보도의 신뢰성과 관련해 류 기자는 “최근 도쿄에서 기자가 김정은 요리사를 인터뷰하려고 했더니 20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날 토론회에서는 총선 전후 KBS 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발제를 통해 KBS의 북한 보도 량이 총선 전 뿐만 아니라 총선 이후에도 많았다는 모니터 결과를 제시했다.

김 팀장은 4월14일부터 5월31일까지 KBS의 1일 평균 북한 보도량은 3.8건으로서 총선 기간 6.4건에 비해 40% 가량 감소한 점을 들어 “지상파 3사가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안보정국을 만들기 위해 ‘북풍 몰이’에 힘쓴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방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KBS의 북한 보도량은 총선 전보다 줄어들었지만 총선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있다고 김 팀장은 전했다. 그는 “총선 이후 48일 간 MBC는 13일, SBS는 12일에 걸쳐 북한뉴스를 내지 않은 반면, KBS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북한 보도를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토론자로 참석한 이정민 KBS 기자는 자사 보도의 문제점과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KBS에 마련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도 ‘북한에 대해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전한다’고 나와있다”며 “과연 이것이 지켜지고 있는가, 의문이 많이 든다”고 전했다. 이런 준칙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기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총선 전후 KBS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 기자는 “KBS 내부에서도 북한보도에 대해 얘기가 많았다”며 “주로 국정원 발 정부발 기사 많았고 정부보도 받아쓴 것이 많았다는 점 등”이라고 제시했다. 이 기자는 그 원인을 두고 “남북관계가 긴장상황에 놓이면서 북한소식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기자들과 제작진이) 생각한 것 같다”며 “더구나 시청률이라는 수치가 나쁘지 않다. 그러니 기사가 실린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많이 생산해야 하는데도 기자들이 북한을 어느 정도 알고 진실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이 기자는 전했다.

KBS 기자들의 반응을 두고 이 기자는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이번처럼 절실히 느낀 적이 없다”며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기자부터 이게 무엇이 문제냐는 기자까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의 북한뉴스 독점에 이은 언론플레이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치관 통일뉴스 편집국장은 “정부가 북한정보를 독점하고 언론플레이하는 것은 위험스럽다”며 “독점을 위해 언론취재를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통일뉴스가 6.15 남북 공동위원장 회의에 다녀와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자 통일부로부터 ‘엄중경고’라는 행정조치를 받은 사례를 들었다. 김 국장은 벌칙의 강도는 낮았지만 엄연한 행정처분이라며 이러니 어떻게 현장에 근거한 보도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이와는 달리 이 같은 우려와 지적이 틀에 박힌 문제제기라는 반론도 나왔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은 이날 제기된 논의를 두고 “6·15 이후 진전돤 상황을 반영하기 보다 1990년 대의 낡은 틀에 아직도 묶여있지 않은가”라며 “KBS 보도 등에서 ‘도발뉴스가 많다’는 지적을 하는데 실제로 도발이 많아서 보도가 많았고, 큰 일 벌어졌듯 보도했다는데 실제로 큰일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팩트를 전하고 보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김정은이 스스로 ‘장거리미사일로 워싱턴을 타격하겠다’ 얘기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이제 너무나 생생하게 보고 있다”며 “90년대 핵개발 안한다고 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 간부가 핵탄두를 갖고 나온 장면은 그동안 어디에도 없었다”며 “이미 소형 핵탄두를 배치한 것으로 안다. KBS가 48일간 빠짐없이 보도했다고 뭐라 하는데, 저는 보도를 안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동종교배, 동어반복, 자학적 논의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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