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수용자들이 TV와 신문을 떠나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스마트 시대’, 미디어 사용법은 어떻게 재정의돼야 할까. 똑똑한 수용자를 위한 미디어는 어떻게 바뀌어나가야 할까.

지난 8일 한국외대 교수회관에서는 한국외대 언론정보연구소 주최로 ‘네트워트 시대의 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에 대한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의 배경에는 ‘스마트 미디어’라는 환경이 놓여있다. 수천만원 상당의 기기로 촬영과 편집을 거쳐야 가능했던 영상들조차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수동적인 수용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콘텐츠에 직접 담아 유통할 수 있는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가리키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과 방향은 어떻게 재정립돼야 하는지가 이번 세미나의 화두였다.

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이날 세미나에서 소셜벤처 ‘파울러스’의 김경신 대표가 보여줬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 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 사업을 진행해봤던 사례를 제시했다. 파울러스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현지인 2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1주일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했다. 탄자니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많은 미디어 수용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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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신 대표는 교육에 참여한 현지인들과 현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짧은 코미디 단막극을 분석하고 이야기 전개 방법을 살피며 기존 미디어 콘텐츠 구성을 공부했다. 몽타주 이론이나 미디어 재현 이론 등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미디어 이론들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고 편집해 하나의 단편 드라마 영상물로 제작하는 실습도 함께 했다.

특히 김 대표가 교육을 진행하며 흥미로웠던 점은 인종이나 정치담론에 대한 미디어 재현이론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종이나 성별, 계급 등 탄자니아 사회의 층위들이 어떻게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표로 재생산되는지를 보면서, 교육에 참여한 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뉴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함의에 대해 “뉴미디어 환경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 때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언어와 코드, 이미지 등 사회적 생산 재료를 덧입히는 역량을 제공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변화된 환경에선 한국의 전통 언론사 종사자들에게도 스마트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수용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면서 점차 그 파급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반면, 기존 미디어들은 콘텐츠 내용에 대한 고민보다는 온라인에서 인기있는 콘텐츠 형식을 따라하는 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통 언론의 뉴미디어 콘텐츠는 인턴 등 비정규직에게 값싸게 맡겨 형식만 비슷하게 생산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디어 수용자뿐만아니라 생산자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디지털 분야 콘텐츠는 소비자에서 시작해 소비자로 끝나는 흐름으로 간다. 아날로그 중심의 전통 콘텐츠 유통은 반면 프로페셔널한 인력에서 시작해 소비자로 가는 일방 흐름이다. 현재 미디어 현장은 뉴스룸 통합도 되어있지 않고 조직 구조가 다 분리돼있다. 미디어 수용자 리터러시 이전에 생산자 차원의 리터러시가 해결되지 않고 옛날 방식으로 머물러선 안된다”고 전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특히 KBS나 MBC 등 공영방송의 경우 사장이 ‘3년 계약직’이다.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한 투자를 많이 안한다. 자원이 시청률이 아닌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부분도 있다. 이 때문에 직접 일반 시청자들을 만나서 승부를 봐야 하는 (디지털 콘텐츠) 영역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라 저항감이 있다. 이는 리더십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올해 방송통신위원회의 4대 정책 목표 중 하나가 미디어 리터러시일 정도다.

사실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체계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수준이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한국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최숙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부처 등과 시민단체가 지향하는 교육목표는 영상문화 향유권, 언론자유, 문화적 감수성 제고, 소외계층 목소리 대변 등 제각기 다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도 미래부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시청자미디어재단 등으로 다양하다.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각각의 정책들이 상충되거나 일관성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도 아직 허약하다. 사회 차원에서 이뤄지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린이나 학부모, 소수자 등 특정 계층을 위한 미디어 활용 능력 정도를 가르치는 단기 프로젝트 교육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또한 정규 교육과정 내에는 여전히 ‘NIE’같은 신문 읽기 교육 이상의 미디어 교육은 편성돼있지 않은 상황이다.

배진아 공주대 교수는 “미디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관장하는 단일한 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프로젝트성의 교육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상시화된 형태로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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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세미나에서는 스마트 시대 미디어 리터러시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다수의 토론자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정책 차원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세미나에서는 기존 미디어 교육이 강조해왔던 시민성과 비판적 사고 능력 등이 여전히 중요시돼야 한다는 의견과 미래 사회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창의성 등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그 모든 가치들을 수렴하는 교육 방향이 잡히고 한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체계적 교육이 실시되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는 이유다.

배 교수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제작 경험이나 노하우 등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시민에게 요구하는 소양과 자질 등을 기르는 과정에서 미디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 미디어의 개념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시대를 고려해볼 때 특히 기존의 시민성의 개념에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비판적 사고가 더해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다양한 가치의 충돌 가운데에도 결국 미디어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스마트 환경과 기술의 발전은 저널리즘의 발전에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는 관점에서다. 결국 스마트 환경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이전에 미디어가 제 역할을 다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것이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활용을 위해 어떤 능력을 함양해야 하는지, 생산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수준 정도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뉴스가 생산되기 전의 관행 등 언론사의 정보 생산 과정의 매커니즘과 미디어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미디어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못하는 체제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장밋빛 구호에 그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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