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두 가게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지난 5년 동안 건물주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건물주가 바뀌더니 월세가 30% 인상됐고 두 번째 바뀐 건물주는 월세를 35% 인상했다. 3년간 임대료만 두 배가 올랐다. 두 가게는 임대료를 감내했다.

3년 후, 건물주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입주’를 말하며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그럴 수 없다고 버티던 두 가게엔 명도소송이 걸렸고 소송 도중 건물주가 또 바뀌었다. 소송을 그대로 승계한 ‘삼청새마을금고’는 지난 2월 승소했다. 버티고 있던 두 가게엔 급기야 지난 2일 강제집행 계고장이 날아왔다. 6월9일까지 나가지 않으면 강제퇴거 집행은 10일부터 가능할 것이란 통보였다.

위기가 시작된 10일, 씨앗과 장남주우리옷은 투쟁을 선포했다. 전통 수제 공예품을 파는 씨앗은 2009년 4월에, 장남주우리옷은 2010년 2월에 가회동에 자리를 잡은 상가다. 장사를 시작한 지 불과 6년이 지난 시점에 이들은 보상 없이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씨앗'과 '장남주우리옷'.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4년 동안 월세 두 배, 5년 장사하니 ‘나가라’… “아직 부채 고스란히… 여기가 마지막이다”

이들이 싸움에 나선 이유는 상인의 생존권 때문이다. 퇴거를 통보한 두 건물주 모두 권리금을 지급할 수 없고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가게를 비울 것을 요구했다. 임차상인으로선 삶터를 빼앗기는 상황인 동시에 상권을 가꿔온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내쫓기는 상황이었다.

김유하씨는 아버지의 퇴직금과 은행대출금을 기반으로 가게 ‘씨앗’을 시작했고 매달 몇백만 원의 이자를 갚으면서 가게를 운영해왔다. ‘장남주우리옷’을 운영하는 김영리씨는 치솟는 임대료를 이기지 못하고 2010년 대학로에서 가회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영리씨 또한 은행 대출금과 지인의 도움으로 가게를 열 수 있었고 “365일 일요일도 쉬지 못한 채” 일하며 매달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처지였다.

이들은 상가 양수 과정에서 영업가치를 인정해 이전 상인에게 내는 지급금인 권리금도 냈다. 두 가게 모두 4500여만 원의 권리금과 2800여만 원의 시설투자금을 들여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북촌은 서서히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었고 이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기간 동안 상권은 더욱 발달했다.

북촌이 뜨는 동네로 주목받는 동안 이들은 건물주의 요구를 따르기만 했지 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당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엔 임대료 인상 규제, ‘권리금 약탈’ 방지, 계약갱신권 보호 등의 법규가 없었다. 2010년 9월 새 건물주의 30% 임대료 인상은 현재 법이 규정하는 9% 상한선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김영리씨는 “그래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고 여기며 인상을 따랐다. 당시 해당 건물 매매를 중개하던 부동산은 김유하씨에게 “건물주가 리모델링한다고 나가라고 하면 그땐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난다. 40% 인상하려던 걸 30%로 조정해준 거니 감사히 여기고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 '장남주우리옷'을 운영하는 김영리씨(왼쪽)와 '씨앗'을 운영하는 김유하씨(오른쪽)가 6월10일 오후 건물주 삼청새마을금고 앞에서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12년 또 다른 새 건물주가 35% 인상안을 요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유하씨는 “장사 시작 4년 만에 임대료가 두 배가 됐지만 장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면서 “은행이자와 월세를 내느라 허덕이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3일 새해 영업을 개시하는 날 두 가게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통째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종으로 바꿀 생각이니 나가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치솟은 임대료를 3년간 감내해왔던 두 사장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계약 기간을 갱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권리금 보상이었다. 2009~2010년에 냈던 권리금 7000만 원을 각각 지급할 것을 퇴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상가임차인 사이에서 ‘의미있는 성과’라 평가받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법이 통과되기 한 달 여 전 임대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보호법은 소급돼 적용되지 않았다. 2015년 5월13일 통과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요구권 5년 보장 △권리금 보장 제도화 △임대료 인상 상한선 9%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건물주는 권리금 지급없이 퇴거를 명령했지만 이들이 의지할 법적 수단은 없었다. 건물주는 그해 5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삼청새마을금고로 건물주가 다시 바뀌게 된 때는 4개월 후다. 금고는 명도소송을 승계했고 지난 2월 승소했다. 금고는 7000만 원 권리금 보상을 요구하는 임차인에 대해 ‘불법부당한 요구’라며 “임차인들은 2015년 5월13일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과는 무관하다는 법적 자문을 거쳤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승소결과를 근거로 금고는 지난 5월부터 자진퇴거를 통고해왔고 지난 2일 강제퇴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강제집행 계고장을 발송했다.

김영리씨는 “10년 만에 두 번이나 쫓겨났다. 한 번 쫓겨났을 땐 빚을 내든, 부채를 안든, 해봤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더이상 대안이 없다”면서 “6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지만 아직 부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강제집행을 하면 집행하는 대로 맞을 것”이라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회동 영세 상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장사를 해오고 북촌이 관광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되자 권리금 한 푼 주지 않고 내쫓는 처사(가 나타난다)”며 “이제는 안되겠다. 보상 못 받고 쫓겨나서 신용불량자가 돼 비참한 생활을 하다 죽느니 차라리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새마을금고가 아니라 새마을도둑, 새마을건달, 새마을조폭이라 불러야”

“질긴 놈이 이긴다.” 김유하씨와 김영리씨가 투쟁선포식에서 선언문을 읊으며 외쳤다.

▲ 투쟁선포식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법정의국민연대, 아르바이트노동조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각계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정의당 등 4개 진보정당이 모두 참여했다. 맘상모 고문인 장하나 전 국회의원도 참석해 연대발언을 전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법정의국민연대, 아르바이트노동조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각계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정의당 등 4개 진보정당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김유하씨와 김영리씨는 10일 오후 건물주 삼청새마을금고 앞에서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해 지역사회 개발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 새마을금고를 향한 규탄발언이 줄을 이었다.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상부상조 정신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그냥 내쫓는 것이냐. 피 같은 권리금, 목숨 같은 권리금 빼앗고 내쫓는 것이 상부상조 정신이냐”고 비판했다.

‘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창완 정의당 중소상공인부 본부장도 연대발언에 나서 “새마을금고법에 따르면 새마을금고는 상부상조를 위한 협동조직임은 분명하고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개발에 동참해야 한다”면서 “새마을금고에게 소상공인의 경제는 지역사회에서 제외되는 것이냐. (금고는) 정신 차리고 상인들 권리를 보장하는데 앞장 서 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은 “새마을금고가 건물을 산 20억, 모두 여기 상인들, 시민들이 낸 세금”이라면서 “새마을금고가 아니라 새마을도둑, 새마을건달, 새마을조폭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이주 요구를 받고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서효성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상인의 생존권을 강조했다. 그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45년 전엔 허허벌판, 무인도와 같았다.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열심히 키워내서 상권 만들었더니 ‘수협마트’에 들어가라고 한다”며 “전 인생 바쳐서 만든 상권인데 얼마나 서러운지 모른다. 생존권 없는 나라, 을들의 슬픔”이라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시장 현대화 사업에 따라 건설된 새 상가건물로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기존 시장보다 장사 공간이 협소한 데다 임대료가 2배 이상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입장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과제도 제기됐다. 참여연대의 황규현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임대인이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이용하는 행태를 지적하며 “소유권은 (건물주가) 갖고 싶은 만큼 갖고 있다가 팔 수 있다. 임차권도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지고 대가를 받고 팔 수 있도록 10년, 20년, 30년 보장해야 한다”면서 “(환산보증금 4억 이하 임차상인에게만 계약갱신권을 부여하는) 환산보증금 제도를 없애야 한다. 이 두 가지가 20대 국회에서 통과돼 제대로 된 임차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리씨는 "'오늘은 비록 힘들어도 그래도 내일은 나아지겠지' 스스로 격려하며 정말 이 악물고 장사를 해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쫓겨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승리하여 사회적 약자라도 끝까지 싸우면 승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김영리씨와 김유하씨는 투쟁선포식 기자회견 후 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의 중재로 만들어진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으나 간담회는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김영리씨는 "그동안 계속 이야기해왔지만 천상욱 삼청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직접 만나 얘기 자리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천 이사장은 권리금 보상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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