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 은성PSD 내 ‘메트로 전적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조건 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규직원의 근무태도가 안전관리에 위협을 주는 수준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의 근태가 비정규직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근절 필요성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은성PSD는 지난달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점검 중 열차에 치여 숨진 정비공 고 김아무개(19)군을 고용했던 서울메트로 협력업체다. 은성PSD는 서울메트로 1~4호선 중 97개 역을 맡고 있으며 스크린도어 정비공은 정규직원 36명, 계약직원 107명으로 총 143명이다. 이들은 오전·오후·기술조로 나뉘어 매일 9시간씩 스크린도어 시설 점검과 장애 수리를 담당한다.

이들이 누적된 장애 신고 처리로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잦고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업무량 과중을 호소한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고 김군도 구의역 장애를 처리하면서 을지로4가역 장애 신고를 접수해 업무를 서둘렀던 것으로 알려졌고 유품인 가방에서 저녁 식사 거리로 보이는 컵라면이 발견돼 세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일부 정규직원의 상황은 이와 달랐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은성 PSD 내부 감사자료에 따르면 일부 정규직원들은 1시간 이내에 6개 역 점검 보고를 마치는 등 허위로 점검하거나, 근무 시간 중 귀가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하는 근태를 보였다.

정규직원 A씨의 경우 2014년 11월24일 을지로3가역, 녹번역, 불광역, 구파발역, 지축역, 연신내역 등 6개 역 스크린도어 점검을 50여 분 만에 마친 뒤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등 5시간 동안 근무지를 이탈했다. 그다음 날 11월25일에도 40여 분 만에 6개 역 점검을 마친 뒤 자택과 북한산을 오가며 5시간가량 근무지를 이탈했다. 지난해 6~7월 중 같은 사유로 회사 감사에 적발된 횟수만 세 번이다.

정비공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 역의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0분이다. 역 하나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80여 개다. 스크린도어마다 보통 센서 두 개가 부착돼있어 정비공은 160여 개의 센서를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정비공은 스크린도어 보충전력을 관리하는 ‘PSD UPS실’도 점검하고 역무실에 있는 스크린도어 로그기록도 확인할 의무가 있다. A씨의 근태 감사자료엔 “실제 작업시간은 없으며 ‘역장 서명만으로 작업종료’했다”고 적혀 있다.

감사자료는 A씨가 지난해 6월21일 100여 분간 근무지를 이탈해 영천시장에 머물면서 한 순댓국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고 지적했다. A씨는 2013년에 야간 근무 시 음주 및 사무실 술 반입 행위로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은 바 있다.

A씨는 2014년 11월, 2015년 6~7월 동안 부실·허위 점검, 근무지 무단이탈, 음주행위, 허위 보고서 작성 등의 근태가 다섯 차례 확인돼 2015년 9월 은성PSD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지노위는 징계가 과하다는 취지로 부당해고라 판단했다. 은성PSD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지난달 5월 중노위 또한 “양정이 과하고 양 당사자 간 해고의 효력을 다투지 않겠다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라 판단했다. A씨는 최종적으로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았다.

A씨는 표적 감사라고 반발했지만, 감사내용에 대해선 사실을 시인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서에 따르면 A씨는 “지하철 내 이중, 삼중 위험감지시스템이 있어 점검 시 많은 시간이 할애되지 않고 대기 시 대기장소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음주행위에 대해서도 “북한산 둘레길과 영천시장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막걸리를 마신 사실은 없다”고 답했다.

▲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먹으세요." 고 김군의 가방에는 컵라면이 들어있었다. 스크린도어 정비공은 잦은 이동으로 식사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또 다른 정규직원 B, C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7월 불시 표적 감사를 통해 B씨는 3회, C씨는 1회 ‘근태 불량’이 지적됐다.

B씨는 2015년 6월27일 실제 점검 없이 6개 역에 대한 점검보고를 2시간 내에 마쳤고 오후 6시경부터 오후 9시까지 자택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다음 달 2일과 5일에도 근무 시간 중 자택에 들어가 2시간가량 머물다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자료는 “근무지 이탈이 계속적·상습적”이라고 평가했다.

C씨도 거짓점검, 부실점검, 근무지 이탈 지적을 받았다. 감사가 이뤄진 당일 C씨의 근무상황 확인서를 보면 6개 지하철역에 머문 시간이 평균 11분에 불과했다. 11분은 80여 개 스크린도어, UPS실, 로그 기록 등을 모두 점검할 수 없는 시간이다. 감사자료는 점검 후 C씨가 약 100분간 근무지를 무단이탈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원의 부실 점검 문제는 비정규직 정비공 사이에서 공공연히 지적돼 온 문제다. 지금까지 근무지 이탈, 음주, 부실점검 등으로 징계를 받은 정규직원은 확인된 인원만 6명이다. 전체 정규직원 6명 중 1명꼴이다.

▲ 지난 5월31일 고 김군의 친구와 흙수저당, 청년전태일 등에서 나온 청년들, 시민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김군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은성PSD 비정규직 정비공 D씨는 “전적자들이 제대로 근무 안하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회사도 하도 문제제기가 되니 감사에 나선 것”이라면서 “(나머지 정비공들의) 이 문제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규직인 또다른 정비공 E씨도 “근무 상황이 엉망인 상태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사안이 단지 근무 태만 문제가 아니라 역내 안전 문제를 악화시키고 비정규직 정비공의 업무를 과중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상시적 점검에 구멍이 나면서 안정적인 스크린도어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부실점검으로 인한 장애 발생 및 근무지 이탈로 인한 늑장 대응이 다른 정비공들의 업무로 전가된다는 주장이다. D씨는 “일상적인 점검이 중요한데 그게 되지 않는 상황이다. 몇 전직자의 경우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아 수리 능력도 부족하다”면서 “다른 직원들은 식사 시간을 놓쳐가며 점검한다. 부실점검이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정비공의 경우 이 같은 근무 태도는 해고 사유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D씨는 “비정규직이 이렇게 일했다면 재계약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적자는 정년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황준식 은성PSD 노조위원장은 9일 서울시장, 서울시 교통본부장과의 간담회에서 “아무리 재발방지를 한다 해도 이런 식이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메트로 출신을) 안전 문제와 무관한 분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 협력업체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문제는 은성PSD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동차 경정비를 맡는 협력업체 프로종합관리의 비정규직 정비공들은 지난 7일 박원순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정규직은 양반이고 우리는 평민인 것 같다”, “봉건제 사회 같은 신분제를 9년째 맞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은성PSD, 프로종합관리 등 협력업체 직원들은 6월9일 고덕차량기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구의역 사고 재발방지책을 논의했다. 간담회엔 서울시 교통본부장 및 교통과장, 노동전문관, 서울도시철도사장, 도시철도ENG 사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은성PSD노동조합

경정비는 매일 전동차를 점검해 사고를 예방하는 업무로 형광등 교체, 전동차 수리, '외야 청소' 등이 포함된다. 전동차 밑에 직접 들어가 공기총으로 먼지를 제거하는 외야 청소는 가장 힘든 작업으로 분진이 많이 발생해 방진복과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외야 청소는 비정규직 정비공이 맡고 있다.

프로종합관리 비정규직 직원 F씨는 간담회에서 “우리가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먼저 하게 되고 나중에 직원분들이 와서 기술적인 일 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직원이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면서 “우리 얘기를 들으러 온 시장이 이런 부분을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정규직 정비공 G씨는 “같은 공간에서 일해도 정규직은 늦게 나와서 일하고 우리는 정규직과 일이 겹칠까봐 먼저 나와 서둘러 일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 확률도 높은 것 같다”면서 “정규직원이 일이 몰리면 우리에게 일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이번에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 신분이라고 까지 느껴질 체제는 용납하기 어렵다. (담당자는) 어떻게 개혁할 건지 정확히 현장에 맡게 정비해주시고, 자회사가 됐든 직영이 됐든 그런(바뀌는) 경우에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면서 “메트로 직원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어린 친구들은 일하는데 자기는 앉아서 시키는 구조가 말이 되냐. (담당자는) 교육도 하고 체계도 바꿔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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