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전 MBC 사장은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노조 탄압의 상징적 존재로 이름을 알렸다. 무려 8명의 해직 언론인을 만들어냈고 170일간의 최장기 파업을 야기했다.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사천시장에 출마했다가 후보경선에서 떨어졌고, 지난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모에서도 탈락했다.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그가 노조가 아닌 MBC 회사에 소송을 걸며 다시 등장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그를 만났다. 김 전 사장 인터뷰는 3차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주


김재철 전 MBC 사장이 4년 만에 입을 뗐다. 지난 2012년 5월 MBC ‘공정방송’ 파업 당시 서울 만리동의 한 대중목욕탕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나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람”이라며 “(낙하산 사장 퇴진 요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후, 이듬해 3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 해임됐던 그였다. 

물론 해임 절차에 따른 주주총회 의결 전 자진 사표 제출 ‘꼼수’로(김 전 사장 본인은 MBC가 혼란에 빠질까 봐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퇴직연금까지 받아갔지만, 사장 재직 시 ‘큰집(청와대)’에서 ‘조인트(혼쭐)’도 까이고 박근혜 정부 들어선 후 ‘토사구팽’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관련기사 : MBC 사장 김재철씨의 비참한 말로)

김재철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김 전 사장이 MBC에 퇴직 시 받지 못한 ‘특별퇴직위로금’ 2억3973만 원을 받기 위한 소송을 냈다. 그가 지난 3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접수한 특별퇴직위로금 등에 대한 청구 소송은 현재 조정재판부에서 조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진행된 법원 조정기일에 당사자 출석이 원칙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법원 조정실을 찾아가 김재철 전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전 사장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진실을 밝혀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먼저 ‘왜 퇴직위로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느냐’고 물었다. 김 전 사장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김 전 사장은 “MBC에서 나온 후 1년이 지났을 때 내가 일반인이 된 다음에도 언론에 계속 내 얘기가 나오는데 마치 내가 퇴직한 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됐다”며 “나는 MBC에서 나올 때도 귀책사유가 없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방문진이 김 전 사장을 해임 의결했던 2013년 3월26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방문진(김문환 이사장)은 임원 임명권 침해를 사유로 김 전 사장의 해임안을 의결했다. 지역MBC와 MBC 관계사 사장 임명은 방문진 협의사항인데도 김 전 사장이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전 사장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내가 방문진에서 해임됐던 사유인 지역사 임원 인사는 방문진 협의사항이었는데 지역사 임원에 대한 것은 사장이 인사를 해서 방문진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뒤 “방문진 이사 9명과 공식적인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때 상황이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엔 그때가 너무나 중대한 시점이었다”고 술회했다. 

김 전 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방문진에서 그에 대한 해임 결의안이 올라오기 전에 당시 김문환 이사장을 두 세 차례 만났다. 2013년 3월12일 김재우 전 이사장이 논문 표절 건으로 사퇴한 후 김문환 이사장이 막 취임했을 때였다. 

김 전 사장은 “3월15일이 됐어도 (지역사) 인사가 안 나고 있었는데 인사를 오래 안 하면 시끄럽게 된다”며 “그래서 회사를 위해서 내가 욕을 먹고 김문환 이사장이랑 두세 번 만나서 내정한 거고 김 이사장도 이에 대해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MBC가 지역사와 자회사 모두 합쳐 28개나 되는데 임기가 3년이어서 해마다 3분의 1은 바뀐다”며 “매년 2월 말이 되면 지역사나 자회사 모두 인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빨리 인사를 해야 하는데 계속 청탁도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원래 인사 때 지역사와 자회사 사장 청탁이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들어왔다”고 밝혔다. 지역·관계사 인사를 빨리 하지 않으면 온갖 청탁으로 MBC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급한 상황이었다는 거다.

2012년 10월11일 김재철 전 MBC 사장(가운데)이 이진숙 당시 기획홍보본부장(오른쪽)과 함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인사가 만사 아니냐. 지금 MBC 사장이 가진 건 인사권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급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사장이 바뀌어 이사장과 급하게 상의해 3월을 넘기면 안 돼서 그랬다고 이사회에 나가서도 다 소명했다. 내가 내정한 사람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인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나간 후 표결에 들어가서 5대 4로 해임안이 가결됐다.”

결국 당시 방문진 해임의결 과정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앞서 고영주 현 방문진 이사장은 2일 정기이사회에서 김 전 사장의 특별퇴직위로금 소송과 관련해 “MBC 측은 ‘김 전 사장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건 김 전 사장의 개인 문제이고 전직 사장을 징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논의를 일축했다. (관련기사 : 김재철 2억 ‘위로금’ 소송, MBC 경영진이 자초했다)

김 전 사장은 방문진에서 해임안이 의결됐음에도 주주총회에서 해임이 확정되기 전에 사표를 제출했고, MBC 사측은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MBC ‘임원 퇴직연금 지급규정’에 따르면 회사 사정으로 임기 만료 전에 퇴직하는 임원에게는 퇴직연금 이외에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 김 전 사장은 퇴직하면서 3억여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받아갔고, MBC 측은 주총 해임결의 전에 그를 퇴직 처리해 귀책사유마저 면제해 줬다. 

김 전 사장에 따르면 MBC 측은 김 전 사장의 퇴직위로금 청구 소송에 대해 조정 불성립 후 소송으로 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사장은 “MBC는 지금까지 관행대로 전직 사장들에게 퇴직 위로금 다 줬고 고문료까지 줬는데 나는 MBC에서 고문료도 받은 적이 없다”며 “지금 경영진은 귀책사유가 나에게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그 귀책사유가 뭔지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월 폭로된 ‘MBC 백종문 녹취록’에 따르면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 같은 경우에는 임기 중에 최고의 시청률, 최고의 매출, 최고의 영업이익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로금을 주는 건 당연한데도 방문진에서 안 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백 본부장은 당시 “안광한 사장이나 같이 일했던 동지들이 그걸 안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안 사장이 3월에 왔을 때 김 전 사장이 새누리당에 가입해서 선거에 출마했고, 그다음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김종국 전 사장에게 자문역을 맡겼다”며 “이런 와중에 김재철 전 사장한테도 자문역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고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에 대해서도 “최 이사장이 주총 전에 나한테 전화해서 MBC에서 나가지 말라고 했다”며 “주총에선 김문환 이사장과 최필립 이사장 두 사람이 방문진과 정수장학회 대표로 결정하는데, 최 이사장은 방문진 이사회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고 분노했고, 김문환 이사장도 내가 사표 낸 이후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반대에도 사표를 쓴 이유에 대해 그는 “그 당시 상황에서 내가 MBC에서 버티면 방문진 의결이 뭐가 되며 최 이사장이 주총에서 반대하면 노조와도 문제가 생겨 혼란에 빠지게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만약 내가 사표를 안 냈으면 주총에서 대주주 두 명이서 해임을 안 시켰을 수도 있었는데 여러 상황을 봐서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기사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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