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이어 온 기아차 하청노동자들을 무리하게 연행하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양 측은 고공농성자들이 농성 해제 후 발언 및 인사 시간을 가지는 데 합의했지만, 경찰이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농성자를 곧바로 연행해 현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조합원 최정명, 한규협씨는 농성 363일째인 8일 오후 농성을 해제하고 지상에 내려왔다. 이들은 지난해 6월11일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옥상 전광판에서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몽구가 책임져라”는 현수막을 걸고 고공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농성 해제 예정 시각인 오후 1시30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금세기빌딩 앞에서 ‘정몽구 처벌!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고공에서 지상으로 투쟁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아차지부 조합원, 한국진보연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등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 각계에서 참여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우원식·진선미 의원, 민주노총 지지후보였던 윤종오·김종훈 무소속 의원도 자리를 지켰다.

▲ 경찰이 발언 및 인사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연행하자 고공농성자와 그들과 동행한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이 저항하고 있다. 사진 중앙에 머리띠를 맨 조합원이 농성자 중 한 명인 한규협씨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빌딩 입구와 주변 인도를 수 겹으로 에워싼 경찰 병력으로 인해 기자회견은 매우 협소한 공간에서 진행됐다.

농성자들은 두 시간이 지난 오후 3시30분 경에야 지상에 내려왔다. 기아차지부와 경찰 간 합의 불발로 인해 농성자를 데리러 간 노조 간부들은 1층 로비에서 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종원 기아차지부 상황실장은 “이날 오전 기아차지부와 남대문경찰서 정보과는 농성자들이 내려오는 길목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그 앞에 노조 간부 8인이 함께 서는 데 합의를 했다”면서 “농성자가 내려와서도 잠시 발언을 한 후 녹색병원에 후송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기아차지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조 측과 경찰은 두 시간 동안 빌딩 로비에서 농성자의 기자회견 개최 여부, 후송될 병원, 후송 차량 등에 합의를 진행했다. 조정우 사내하청분회 상황실장은 “한규협, 최정명 동지가 내려오면 구급차 앞에서 1분 정도 소회를 얘기하고 동부시립병원으로 후송한다고 합의했다. 농성자가 경찰이 준비한 차량에 타고 우리가 준비한 차량도 뒤따라 출발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성자들은 빌딩 입구를 나서자마자 119 구급대 후송 차량으로 연행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400여 명의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길거리로 나서 차도에 몸을 눕히며 차량 진로를 막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약 한 시간가량 시민과 경찰 간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기아차지부 조합원은 “경찰이 약속을 어기고 있다”, “기자회견 보장하라”고 소리치며 차량 진입로로 뛰어들었고 경찰은 이들의 사지를 붙들고 인도로 끌어냈다.

연대한 다른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이 머리를 바닥에 찧고 넘어져 5분여간 일어서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 고공농성자가 탄 119 후송 차량.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후송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노동조합 관계자과 시민들이 연좌시위를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경찰은 고공농성자의 가족과 변호사의 차량 동승도 제지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가족이라도 만나게 해줘야 할 거 아니냐”고 격렬히 항의하며 구급차량 앞 차도에 연좌를 시도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현장 지휘관은 “폭행하는 것들에 대해선 무조건 검거한다”고 지시했다.

후송 차량은 방향을 바꾸며 도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기아차 조합원을 포함한 시민들이 길을 막으며 한 시간가량 고착상태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관계자 및 시민 20여 명이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공농성자들이 내려온 지 약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 40분이 돼서야 후송 차량은 진로를 확보했다. 기아차지부는 대치상태를 풀기 전 농성자 중 한 명인 한규협씨의 가족과 변호사를 후송 차량에 탑승시켰다. 최정명씨의 가족과 변호사는 함께 타지 못했다.

후송차량이 떠난 후 김수억 기아차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분회장은 도로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약속이고 뭐고 연행에만 미쳐있는 공권력이다. 불법과 폭력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면서 “경찰은 정몽구한테 그렇게 해보라”고 소리쳤다.

최정명·한규협씨는 체포영장이 집행된 상태에서 동부시립병원으로 후송됐다. 두 사람은 당분간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남대문경찰서는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입원이 필요하면 입원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영장 집행으로 유치장으로 이송될 것”이라면서 “유치장에서 조사를 받은 후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검찰에 송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1여 년을 고공에서 생활한 최정명·한규협씨는 현재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다. 조정우 상황실장은 “(한규협씨의 경우) 올라간 혈압이 안 떨어지고 있다. 잇몸이 다 올라가서 이가 흔들리는 증상도 겹쳤고 고산병 증세도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공농성 해제는 지난달 24일 기아차지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됐다. 기아차지부는 ‘고공농성이 종료될 수 있도록 대의원대회 결의로 권고하고, 농성종료 후 금속노조 신분보장기금 심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대의원대회에서 고공농성 중단이 결정된 것이다. 이밖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부는 최정명.한규협의 복직 및 손배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안도 안건에 포함돼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은 법적으로 인정받은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9월5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자동차공장 내 사내하청은 불법이니 기아차는 비정규직 468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과 유사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대법원에서 정규직 인정을 받은 바 있다.

▲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최정명, 한규협씨의 고공농성 해제 직전, 고공농성자들이 있는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앞에서 6월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대기아자동차는 1심 판결에 항소했고 양측은 서울고등법원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2심 판결은 지난해 9월에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당해 12월, 2016년 2월, 4월까지 세 차례 연기됐고 오는 7월4일로 다시 연기된 상태다.

향후 계획에 대해 조정우 사내하청분회 상황실장은 “기아차지부가 (사측과) 특별 교섭 진행을 앞두고 있다”면서 “올해가 임단협 시기다. 파업권이 확보되는 대로 (사내하청분회는)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아차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기아차 내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을 위한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모든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다는 법원의 결정도, 불법파견 공정의 정규직화도 거부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고 있다”면서 “현대기아차 그룹이 계속적으로 그룹사 공동교섭을 거부한다면, 7월 중 15만 조합원이 양재동 집결투쟁을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이어 지부는 “두 동지의 차별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헌신적인 투쟁을 이제 기아차지부가 이어받아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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