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군 서면 두미리엔 신창철 씨 집안의 300년 넘은 선산이 있었다. 어느날 선산을 찾은 신창철 씨는 조상묘 4기가 파헤쳐져 맨 땅이 돼 있는 것을 보고 “죽고만 싶었다”고 했다. 평산 신씨 34대 장손으로서 조상 유골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대명리조트는 홍천군에 골프장과 위락시설이 딸린 소노펠리체 리조트를 추진하면서 신씨 집안 6기의 분묘 중 4기를 무연고 묘소라고 신고했다. 공교롭게도 나머지 2기는 골프장 경계에 위치해 공사 진행과는 무관했고, 공사를 진행하려면 묘소 주인과의 협의가 필요한 4기에 대해서만 무연고 묘소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신 씨는 여러 차례 홍천군청에 사업자 지장물조사서에 고의적인 분묘 누락이 있다고 민원을 넣었다. 분묘 발굴 이전에 대명 쪽에도 이 묘소들이 신씨 집안의 묘소라고 알린 바 있어 대명 쪽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러나 신씨에게 돌아온 것은 공사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뿐이었다.

▲ 대명리조트 법률대리인 이 아무개 변호사가 분묘 훼손 후 수원지법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 사진.

두 차례 내용증명이 날아온 뒤 대명리조트 측은 신씨 집안의 조상묘들을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묘지나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창철씨는 “골프장 만든다고 조상 대대로 가꿔온 땅까지 빼앗아가고 남의 분묘까지 훼손하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며 “자기네 공사 빨리하려고 멀쩡한 산소를 파헤쳐 놓으니 대명리조트 쪽에도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신창철 씨는 조상 분묘마다 연고자가 있는 분묘라는 사실과 연락처까지 입간판으로 부착해놨지만, 대명 측은 묘지를 파헤치던 당일 신씨에게 전화 한 통 넣지 않았다.

대명 측 법률대리를 맡은 건 강원지방변호사협회장 출신의 이 아무개 변호사였다. 그 역시 묘지를 파헤치기 6개월 전인 2011년 9월 강원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 소위원회에 참석해 신씨의 이의신청서와 대리인 의견서를 받아보고 구술 변론까지 해서 이 묘지들이 무연고 묘소가 아님을 인지했던 상황이었다.

묘지가 없었다는 대명 측의 주장과 달리 재판부의 현장 검증에선 유골과 목관이 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왔다.

대명리조트의 사과는 없었다. 재판과정에선 대명리조트의 말바꾸기가 계속됐다.

대명리조트는 2011년 12월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는 “분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2011년 9월 대명 측은 이 묘지들에 대해 무연고 묘지 이전 신고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묘지라고 신고를 해놓고 의도적으로 분묘가 아니라고 주장을 한 것이다.

춘천지법에서 실시한 현장검증에서 유골과 묘소의 흔적이 나온 이후엔 ‘분묘는 맞지만, 신 씨가 분묘의 주인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신씨로선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이런 주장도 오래가지 않았다. 대명 측은 다시 “고소인의 선조 분묘는 맞는데 신씨의 집안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두미리 마을 주민들이 신씨의 집안 묘소가 맞다고 증언하자 “고소인 선조 분묘는 맞는데 수호봉사를 안했다”고도 했다.

“공무원도 사법부도 약자의 편은 아니었다”

현장검증에서 유골이 나온 이후에도 대명의 고자세는 계속됐다. 신씨가 느낀 것은 검찰도 공무원도, 심지어 재판부도 약자의 편이 아니라는 거였다.

대명측이 고의적으로 분묘를 파헤쳐 유골을 오욕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검찰은 단순히 분묘발굴죄만을 적용했다. 사업자 쪽의 사과는 없었다. 대명 측은 이미 사건은 벌어진 것이니 합의금이나 받으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신씨는 재판부에도 ‘골프장 공사는 하더라도 분묘는 훼손하지 말아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넣었지만, 가처분 신청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2년 동안 캐비넷에 묻혀있었다.

공무원들 역시 신씨의 호소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홍천군청과 강원도청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공무원들은 묘소가 파헤쳐지기까지 현장 실사 한번 나가지 않았다.

“현장에만 나가봤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만 봐도 확인이 되잖아요. 이런 지경까지 오지 않는거죠. 공무원들의 부작위에 의한 것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안한 것이죠.”

▲ 신씨 집안의 조상묘소가 파헤쳐진 자리.

고자세로 일관하던 대명측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다. 서울고법 제29형사부는 신창철 씨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대명의 법률대리인인 이아무개 변호사에 대해 분묘발굴과 유골은닉, 유골오욕 혐의로 공소제기를 결정했다.

대명리조트 관계자는 “(분묘 발굴이)절차에 의해서 진행을 한 것인데 신씨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소송도 진행되는 시점에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신씨에게 사과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사과도 아니고 ‘이 부분을 대화로 할 수 없느냐’는 기회가 (검찰에서)있었다”며 “이 사람(신창철씨)은 사과하라 뭐하라 하는데 아직도 소송 중이니까 확정이 돼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대명 측 법률대리인 이○○ 변호사는 “(발굴을)합의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포크레인으로 파봤다.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현장을 변형을 시킨 것이다. 유골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신창철 씨는 “벌써 7~8년 동안 땅을 뺐기고 산소를 찾으러 다니고 있다. 장손으로서 억울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죠. 아무리 돈 있고 빽이 좋고, 힘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지킬 인륜이 있고 천륜이 있는 거잖아요. 법이 그렇다 해서 땅을 빼앗아 가더라도 최소한 협의는 해야하는 거잖아요. 자기들 돈 벌기 위해선 온갖 불법, 탈법을 다하고. 내가 만약 골프장 재벌 선산을 파헤쳤으면 저는 이미 감옥에 가 있을 겁니다. 이 사회에 정의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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