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8000보.’ 최정우씨(가명)가 9시간 근무 동안 휴대폰으로 재어 본 걸음 수다. ‘장애’가 많이 발생한 날은 2만 보를 훌쩍 뛰어넘는다. 매일 지하철 선로를 따라 걷는 최씨는 9시간 동안 땅 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서울 지하철 역 내 스크린도어 점검·보수 일을 맡는 스크린도어 정비공이다.

지난달 28일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에서 한 스크린도어 정비공 김아무개(19)군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남역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여 만이다. 김 군은 입사한 지 7개월 된 스무 살 청년으로, 월 144여만 원 임금을 받는 서울메트로 비정규직 정비공으로 알려져 세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들의 안전업무를 위한 규정엔 ‘2인 1조’가 명시돼있으나 김군은 홀로 일하다 열차를 피하지 못했다. “인건비 아끼려다 사람을 죽였다.” 사고가 난 승강장은 추모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정작 자신의 안전은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회는 이제서야 하루에 몇천 번 여닫히는 스크린도어가 어떻게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김 군과 같은 정비공이 2만여 개에 달하는 스크린도어를 매일 검수하고 있었다. 지난 6월 △일, 미디어오늘은 한 정비공의 하루를 동행취재했다. 정비공의 신원보호를 위해 성명, 지하철 호선, 역 이름, 출근 시간 등은 모두 사실과 다르게 적었다.

▲ 사고가 발생한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이 붙인 추모 메세지가 붙어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점검, 장애, 점검, 장애” 온종일 20개 역 1600여 개 스크린도어 감시

지난 6월 △일 오전 8시, 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 사무실에서 작업복을 입은 정비공 예닐곱 명이 둘씩 짝을 지어 나왔다. 출근 시간은 7시지만 아침 회의를 거치면 검수 업무는 보통 오전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시작한다. 최씨가 든 투명파일에 오늘 작업 내용이 적힌 지시사항이 들어있었다. 최씨가 맡을 선로는 서울메트로 2호선이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작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뚝섬, 강변, 신천, 삼성, 역삼, 교대까지 8개 역을 점검하고 을지로입구부터 교대까지 20개 역의 장애를 커버하는게 그의 일이다.

사무실을 나와 을지로입구역을 향하는 그의 오른편엔 동료 김진영씨(가명)가 동행했다. 업체는 사고 후 ‘2인 1조’ 규정을 철칙처럼 지키고 있다. 김씨는 “사고 전엔 두 명이 일한 적이 없다. 사람 수도 많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게 당연했다”면서 “2인 1조로 하니 커버할 역이 두 배로 늘어나 불편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원래 한 명이 5개 역 점검, 10개 역 장애 신고 담당을 맡았으나 2인 1조 체제로 바뀌면서 10여 개 역 점검, 20개 역 장애 신고 담당으로 늘어난 것이다.

오전 8시 10분, 을지로입구역에 도착한 이들은 내리자마자 1-1 승강장으로 찾아갔다. 이들은 마지막 승강장 10-4까지 스크린도어에 바싹 붙어 벽 안을 확인하며 걸어갔다. 스크린도어 ‘센서’와 비상용 망치를 확인하는 게 점검 업무다. 센서는 문의 여닫힘 조절을 위해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장치다. 한 선로에 스크린도어는 40개, 역마다 상행과 하행이 있으니 총 스크린도어수는 80개다. 문마다 양쪽에 센서가 부착돼있어 맨눈으로 확인해야 할 센서는 총 160여 개다. 최씨는 센서 불빛이 잘 보이지 않을 땐 벽에 얼굴을 바싹대고 불빛을 확인했다.

역마다 마련된 ‘PSD UPS실’ 점검도 이들의 일이다. 이 방엔 스크린도어의 전력이 방전될 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스크린도어 작동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무정전전원공급(UPS)’ 장치가 있다. UPS실마다 소화기가 4~5대 있었고, 최씨와 김씨는 소화기 안전점검 상태표도 일일이 작성했다.

▲ 빨간 불빛이 나오는 기계가 스크린도어 양쪽에 설치된 센서다. 문 여닫힘을 조절하기 위해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장치다. 정비공들이 매일 점검한다. 사진=손가영 기자

역무실은 마지막 행선지다. 점검 사항을 보고하고 스크린도어 ‘로그기록’을 확인하러 들린다.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하면 빨간색 글씨로 관련 전자기록이 남는다. 로그기록까지 확인하고 스크린도어를 재점검하는 게 정비공들의 마지막 점검이다.

최씨는 “예전 같았으면 확인되자마자 바로 스크린도어로 가서 문 열고 센서를 닦는데, 지금은 우리가 문을 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비공들은 사고 후 ‘삼각키’를 모두 반납했다. 삼각형으로 생겨 스크린도어를 열 수 있는 ‘삼각키’는 현재 서울메트로 전자관리소가 가지고 있다. 사고 당시 고 김군이 스크린도어 안쪽에 정비하러 들어간 것을 서울메트로 직원이 아무도 몰랐다는 점을 반영한 규제다. 최씨는 “시간이 더 걸리고 귀찮아진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전자관리소에 오류를 보고하고 담당자가 직접 나와 문을 열어줘야 스크린도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30여 분이 흘렀다. 다음 행선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마찬가지의 일을 마친 뒤 뚝섬역에 다다른 찰나, 최씨의 휴대폰에 장애 신고 문자가 왔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발차 시 스크린도어가 늦게 닫힌다는 신고였다. 이들은 다음 역에서 즉시 내려 반대방면 선로로 넘어가 장애 신고 지점으로 향했다.

“장애가 나면 무조건 1시간 안에 가서 처리해야 돼요. 근데 장애가 3~4개가 한꺼번에 터질 때가 있어요. 1시간 이내에 다 처리할 수가 없는데 진짜 정신없고 마음이 급해지죠.” 김씨는 사고 전엔 한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압박감이 상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동하는 데에만 보통 20여 분이 걸리는데 장애 2개만 처리해도 1시간이 금세 가기 때문이다.

사고 후 ‘한 시간 내’ 규칙은 없어진 상태다. 김씨와 최씨 모두 “지금은 신경쓸 필요 없다고 (회사에서) 말한다”고 밝혔다.

신고된 장애는 ‘일시적 오류’였다. 최씨가 열차 마지막 칸에 승차한 기관사에게 확인을 요청했고 기관사는 문제가 없다고 손을 흔들었다. 두 정비공은 이렇게 접수되는 장애 신고 수는 체감상 70%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승객이 늦게 타서 문이 제대로 안 닫히거나 시스템의 일시적 오류가 발생할 때가 잦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런 장애 신고 때문에 일이 더 몰린다”고 지적했다.

▲ 지난 5월31일 고 김군의 친구와 흙수저당, 청년전태일 등에서 나온 청년들, 시민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김군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7시간 꼬박 걸어 스크린도어 장애 점검 완료, 식사는 운 좋아야 하는 것

다시 점검길에 나선 이들은 2호선을 타고 순차적으로 역을 방문했다. 마지막 교대역 점검을 마칠 때까지 이들은 제대로 앉지 못했다.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좌석이 날 때 잠시 앉는 것이 전부였다. 오전 8시부터 점검이 끝난 오후 1시30분까지 3시간 30분을 꼬박 걸어 다닌 것이다.

점심은 보통 업무가 다 끝나면 먹는다. 점검 도중 12시가 지났다고 해도 점검을 마치는 게 우선이다. 이날도 두 정비공은 1시30분이 지나서야 “점심밥 먹자”고 입을 뗐다. 어디서 장애신고가 날지 모르니 식사는 20개 역의 중간 위치인 잠실나루역에서 하기로 했다.

그러나 1시50분경 잠실나루에 도착했을 때 두 번째 장애 신고가 접수됐다. ‘교대역 외선순환 7-3’에서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했다는 신고였다. 교대역은 담당 선로의 마지막 역이었다. “오늘 점심은 날아갔네.” 정비공 둘은 20분 동안 지나온 거리를 그대로 돌아갔다.

“고인도 센서를 닦다가, 집중해서 닦았는지 열차 오는 걸 모르고 사고가 난 거예요. 그때는 열차 몰릴 시간대라 1분마다 오니까 더 그랬을(위험했을) 거예요.” 최씨와 김씨도 교대역에서 센서를 닦았다. 그들은 고 김군과는 다르게 역무실을 먼저 찾았고 전자사업소 관계자가 도착한 뒤 스크린도어를 열고 작업을 했다.

오후 2시 30분, 점검을 완료하고 추가 장애 신고도 접수되지 않은 시각 최씨와 김씨는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오후 4시 퇴근 전에 사무실에서 업무 보고와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교대역 로그기록에 오작동 흔적이 있던데, 분명 다시 장애 나와서 또 돌아간다.” 복귀하는 지하철 안, 이씨가 반 농담조로 말했다.

▲ 스크린도어 정비공이 항상 휴대하는 공구.

‘하루 2만 보’ 수많은 정비공의 발걸음이 스크린도어 유지하는 동력

최씨와 이씨는 7시간을 꼬박 걸어 다녔다. 지하철 선로를 따라 걸었고 역 사이를 이동하면서 걸었고 역무실을 오가고 장애를 점검하면서 걸었다. 중간에 쉬기도 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지하철 기다리면서도 타면서 쉰다. UPS실에 의자가 있어 거기서 잠시 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상역인 대림역, 옥수역은 정비공들 사이에서 ‘쉴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는 말도 했다. UPS실에 쇼파처럼 푹신한 의자가 있고 에어컨이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에어컨은 지상역에 설치된 기계가 발열로 인해 시스템 오류를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특히 대림역은 창문이 있어 환기가 잘 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이날 들러본 지하 UPS실 대부분은 쉬기에 적절치 않을 정도로 공기가 탁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최씨는 “장애가 많이 나서 밥을 못 챙겨 먹고 급하게 일 처리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출근하자마자 2건이 접수돼 처리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2건이 추가로 접수된 적이 있다. 1시간 안에 무조건 도착해야 하니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다”면서 “그런 날엔 퇴근 때까지 꽉 채워 점검일을 한다. 밥은 못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장애는 하루 평균 2~3개가 나고 많이 날 땐 5~6개까지 나기도 한다. 이날 장애 신고는 2건이었음에도 최씨는 점심시간을 챙기지 못했다.

정비공 사이에선 “일시적 장애만 줄여줘도 일하기가 수월할 것”이란 지적이 팽배하다. 지난 3일 고 김군의 분향소가 차려진 건국대학교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비공 8명은 입을 모아 “장애 신고로 가봐도 70% 정도가 문제가 없었던 경우”라면서 “(역에서) 한 번 더 걸러주면 될 텐데, 역무원이 한 번만 봐주면 될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 "컵라면 말고 따뜻한 밥 먹으세요." 고 김군의 가방에는 컵라면이 들어있었다. 스크린도어 정비공은 잦은 이동으로 식사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두 정비공은 지하철 선로 개찰구를 25번 통과했다. 그들은 매번 역무실 호출을 눌러 “○○○입니다”라고 밝힌 뒤 통과할 수 있었다. 최씨는 “청소 미화원분도 출입증이 있는데, 그분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들락날락’ 거리는데 우리에겐 안 주더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만난 황준식 은성PSD 노조위원장 또한 “출입증을 만들어달라고 두 번이나 공문을 보냈지만, 결과가 없었다”면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오전조를 맡은 최씨와 이씨는 2주 후엔 오후조를 맡을 예정이다. 오후조는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스크린도어를 점검한다. 오후 조의 경우 퇴근시간이 겹쳐 장애가 몰려 발생해 더 노동강도가 세고 저녁밥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최씨와 이씨가 속한 업체는 97개 역의 스크린도어를 맡고 있다. 스크린도어는 최대 7760개, 확인해야 할 센서는 최대 1만5520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5~28명의 인력이 점검·보수 작업을 한다. 최씨가 잰 발걸음 수는 2만 보, 매일 56만 보의 발걸음이 선로를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이다. 오후 10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7시 반까지 일하는 야간조 32명을 합하면 그 기여는 더 늘어난다. ‘자동문’이라 여겼던 스크린도어가 유지되는 동력은 이들 정비공의 수많은 발걸음에 있다. 매일 한 번씩 모든 역을 육안으로 점검하는 노동과 장애가 발생할 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노동이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원리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 2016년 5월 구의역,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세 분 청춘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10여 일간 지속되는 시민 추모 행렬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정비공이 희생됐다’는 죄책감 섞인 메모도 발견됐다. 그런 이들이 한 달 동안 손에 쥐는 금액은 144만 원, 고용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고 김군이 고용됐던 ‘은성PSD’의 경우 정비공들의 계약 만료 기간은 올해 6월이다. ‘죽음의 외주화에 맞서자’는 구호가 확대되는 가운데, 은성PSD 노조도 재발방지를 위한 ‘직접고용 요구’를 앞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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