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악취 풍기는 정신장애인인가? 여성은 밤늦게 강남역에 가면 안 되나? 피해자는 착해야 하는가?

지난 4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 용의자의 주변상황과 사건 당일 상황을 보면서, 여성혐오범죄를 부정하고 정신장애(조현병)인의 범죄로 규정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경찰의 시선을 그대로 활용하는 등 차별적 시선을 확대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건을 담당한 오준식 형사의 말을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다. 용의자가 “여성들이 자기한테 스트레스를 주고, 출근하는데 날 가로막아 일부러 천천히 가 내가 지각을 했다”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오 형사는 “좀 이상하지 않냐, 정신과 치료 받은 적 있는지 확인해봐라”라고 했다.

▲ 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 갈무리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도 아니고, 폭력적인 방식이다. 범죄 원인은 정신장애로 굳어져갔다. 방송에서 의사의 말을 통해 “계속 치료를 받았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여러 차례 전달됐다.

또한 용의자가 이전부터 악취를 심하게 풍겼다면서 이를 조현병의 하나의 증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앞으로 악취가 나는 사람을 조현병으로 봐야 할까? 조현병이 있으면 잠재적 범죄자니까 악취가 나는 사람은 예비 살인자로 의심해야할까? 

용의자는 조현병, 남성, 30대, 빈곤층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편견이 이 중 하나인 조현병을 가지고 범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관련 보도에서는 범죄와 조현병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정교하게 설명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그동안 정신장애인이 오히려 범죄율이 낮고, 왜 낮을 수밖에 없는지, 치안을 강조하는 경찰과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전문가들이 왜 객관·중립적일 수 없는지, 언론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에만 의존하면서 어떻게 정신장애인의 주장을 외면하고 차별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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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만난 정신장애인들은 악취가 심하게 나거나 누군가에게 위협을 주는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용의자는 가족들에게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할까봐 가출했고, 지난 3월말부터 화장실에서 노숙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강제입원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나 인간관계의 단절된 원인, 오랜 노숙생활로 악취가 났다는 사실 등이 아닐까?

피해자는 개념있는 여자?

지난 2일 시사인 “강남역 사건 피해자의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자 누리꾼들이 분노했다. 분노한 부분은 “그녀는 한 달에 20만원가량만 생활비로 썼다. 회사 기숙사에 살면서 생활비를 아꼈다. 샤넬이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를 몰랐고, 저가 화장품과 옷만 샀다”라는 부분이었다.

“피해자는 착하고, 검소하며, 명품백을 사모으지 않는 소위 ‘개념녀’였다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차례 논란이 일었음에도 ‘그것이 알고싶다’는 피해자의 선한 측면을 부각했다. ‘착했다’, ‘미래가 환한 젊은이’, ‘멍청할 정도로 착한 아이’가 아니면 죽어도 되는가?

여성혐오를 다루면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여성혐오를 확대했다. 여성혐오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피해자화하는 것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남성이 성공을 경쟁하지만 여성은 불행을 경쟁한다. 여성이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선호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야 피해가 인정된다. 피해자로서의 권력을 부여받는 것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참고)

여성혐오 발언 그대로 보도

‘그것이 알고싶다’는 여성이 조용히 추모만 해야지 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느냐는 일부 과격한 시민들의 발언도 여과 없이 보도했다. ‘기계적 중립성’을 빌미로 마치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시청자들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처럼 만든 것이다.

▲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 10번출구 앞에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시위대가 등장했다. 해당 방송에는 한 남성이 “미친 사람이 여자를 죽인 사건에 가까운데 저기 (추모) 메모지를 보면 ‘저는 여자라서 죽어습니다’는 내용이 많은데 피해자 추모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고 싶다”는 발언이 소개됐다. 한 여성이 “정신병자가 사람을 죽인거나 남자라서 죽인거냐”고 외치는 장면도 소개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른 전문가나 진행자 김상중씨의 설명·보충·반박은 없었다.

피해자가 강남역 갔던 이유를 왜 추적하는가

방송초반부터 제작진은 피해자가 강남역에 갔던 이유를 추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작진의 의도와 관련없이 해당 방송은 ‘피해자가 그날 그 시간에 강남역에 가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의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다’, ‘밤늦게 돌아다녀서 그렇다’는 식의 생각은 피해자에게 사건의 원인을 돌리고 가해자를 옹호한다.

방송은 지나치게 사건 당일 피해자의 신변에 초점을 뒀다. 방송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그날 남자친구에게 말도 없이 대학선배와 밤늦은 시각에 평소에 잘 가지도 않던 강남역에 갔다가 살해당했다. 대학선배는 구급차를 부르면서 응급상황이라 남자친구라고 둘러댔고, 심지어 대학선배는 사건 당시 상황을 피해자 부모님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사건의 피해자들인 피해자와 대학선배가 도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런 구구절절한 상황설명이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사건이후 여성들이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공포,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 등을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사실 사건초기 ‘CCTV에서 오열하던 남성이 남자친구가 아니었다’는 팩트를 발견해 보도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하나의 스릴러물로 소비됐다.

사건 당일인 5월17일 용의자는 50분 넘게 화장실 앞에서 서성였다. 오전 12시33분 남녀공용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 범행을 기다렸고, 6명의 남성이 오간 뒤 피해자가 화장실에 나타났다. 피해자가 화장실에 있을 때 남성이 한명 더 들어왔지만 손만 씻고 나갔다. 이후 범행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진행자 김상중의 설명은 이렇다. “(손만 씻고 나간)남자가 좀 더 있었다면, 피해자가 조금만 먼저 화장실에서 나갔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남역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외쳤던 말은 ‘누구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 있다’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5월17일 오전1시 경의 상황만 모면했다면 괜찮은 걸까?

해당 방송에서는 의미있는 메시지도 분명 전달했다. 여성으로서 겪었던 피해사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남성에게 강간을 당한 남성이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여성들과 모여 여성들의 공포에 대해 공감하는 내용도 소개했다. 하지만 해당 남성의 사례를 소개하기 직전에 여성이 당한 피해사례를 남성이 당한 것처럼 각색해 소개하면서 자칫 진짜 남성피해사례가 묻힐 수 있게 했다. 본질을 흐릴 수 있는 편집이다.

▲ 5일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트위터

여성이 여성혐오를 남성에게 설득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도 전파를 탔다. 사건 이후 혐오에 대한 주장을 펼쳐온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공포에 대해 남성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인터뷰가 나갔다. 홍 교수는 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설득하지 못한 여성의 책임이라거나, 설득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저의 저 말 한마디가 곡해돼 활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방송 편집방향을 보면 제작진의 의도는 악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제기된 정신장애인 혐오·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이 반영되지 않았다. 몰랐다고 정당화할 수 있을까? 무지(無知)는 권력의 특권이다.

▲ 4일 밤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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