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권한대행에서 짤렸잖아. 섭섭해요.”

2일 국회 대회의실을 나서 기자들 앞에 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표정은 밝았다. 말은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그는 ‘허허’ 소리를 내며 언론 앞에서 웃었다. 지난 3월 총선에 패배한 당을 떠맡은 이후 한 달 동안 정진석 원내대표는 웃음을 잃었다.

그와 함께 그는 점점 말을 잃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기자들에게 “언론계 선배”라며 “기자들을 편하게 모시려고 애썼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기자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서청원 전 최고위원과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달 10일 정진석 원내대표는 긴급 티타임을 자청했다. 전날(5월9일) 당선인 총회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당대회를 7월 전에 열겠다”고 한 발언이 ‘혁신형 비대위 포기’라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관리형 비대위를 원한 친박계와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한 비박계 사이에서 정진석 원내대표가 결국 친박계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따라 붙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긴급 티타임에서 “혁신위와 비대위 투트랙은 가능하다”는 말로 갈등을 봉합했다.

하지만 껄끄러운 점이 남았다. 비대위 유지 기간이나 비대위원장 영입 등 기자들의 구체적인 질문이 시작될 찰나 정진석 원내대표는 “그 정도만 합시다”라며 기자들 질문을 끊었다.

정진석 원내대표에 대한 기자들의 불만은 전화 연결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주를 이룬다. 한 기자는 “정진석 원내대표 당선된 후 전화 한 통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며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다. 원내대표 취재도 못하면서 무슨 새누리당 출입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때는 지난 18일. 정진석 원내대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후 서울행 KTX에서 예정에 없던 중도 하차했다. 도착지는 충남 공주로 그의 고향이다. 정 원내대표는 “17일 상임 전국위원회 무산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기자들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기자들 휴대전화에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보낸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만 남겨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자들의 불만이 크게 표출되지는 않았다.

▲ 김용태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내정자가 5월17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추인받지 못한데 반발하며 사퇴기자회견 후 정론관을 나서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기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던 때는 지난달 24일이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의원, 정진석 원내대표가 조찬 회동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혁신위 무산 이후 친박·비박 계파 수장을 만나 야합을 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 제기됐다.

정작 “(당선인 총회) 토론회에서 모아진 총의가 제 유일한 가이드 라인이 되고 유일한 오더(주문)이 될 것”, “특정 계파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했던 그의 말을 정면으로 뒤집는 사건이었다.

보도가 알려지면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궁지에 몰렸다. 또 다시 기자들은 휴대번화를 붙들고 씨름해야 했다. 24일 심야와 25일 오후까지 정진석 원내대표와 연결됐다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연광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는 통화중이거나 통화중이 아닐 때에도 아예 연결되지 않았다는 기자들 하소연이 많았다. 일부 통화가 연결된 기자들은 “연합뉴스나 KBS 기사를 보고 쓰라”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다른 한 기자는 “24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연광 전 비서실장에게 전화한 기자들이 엄청 많은 것으로 아는데 워딩은 몇몇 일간지만 따고 나머지는 그냥 워딩 확인만 하고 기사가 나갔다”며 “기자들에게 ‘선배’라고 하면서 말만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일부 언론만 챙긴다’, ‘백브리핑도 일부 언론에만 해서 그 언론과 친하지 않은 기자들은 굽신거려야 겨우 받을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결국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떠밀려 25일 오후 2시30분 경 원내대표실 문을 열었다. 기자들은 김무성-최경환-정진석 오찬 회동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는 점을 토로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그건 언론 입장이고 내 입장은 다르다”며 “언론에 말하기 전에 제가 좀 처리해야할 문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진석 원내대표는 “다음에는 기자를 다 모아서 하겠다”, “아직 미숙해서 그렇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원내대표실을 나서면서도 기자들은 “전화 좀 잘 받아달라”, “정식 브리핑을 하라”, “질문을 할 테니 대답만 하면 된다”, “공식적인 자리가 없고 전화도 안 받는 상황에서 (24일) 보도가 나오면 어떻게 하냐, 어젯밤 정말 힘들었다”고 항의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하루 한 명만 전화해 달라. 하루 80~90통 전화를 받는데 죽겠다”, “매일 브리핑 할 내용이 없다”, “앞으로 원내대표 회의도 매주 할 거다”, “당직자가 두세 명 밖에 없(어 힘들)다”, “잘 하겠다”고 기자들을 달랬다.

그러면서도 한 기자를 향해 정진석 원내대표는 “아유, 저 분 되게 무섭다”며 눈총을 줬다. 당시 상황을 전해들었다는 한 기자는 “원내대표가 기자에게 한 말인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며 놀랐다.

▲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4일 오전 기자들 질문을 받으며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기자들에게 눈총을 주는 상황은 또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정진석 원내대표는 오랜만에 원내대표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나고 퇴장하는 기자들을 향해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 기자님, 빨리 나가주세요”라고 말했다. 사근한 말투에 웃는 얼굴이었다. 뒤이어 정진석 원내대표도 “○○○ 기자, 하루에 세 번 전화하기 없어”라고 웃으며 농담하듯 면박을 줬다.

언론 대응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 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임기를 다 못 채울 것 같다는 말도 돈다”고 했다. 5월 말쯤의 분위기였다.

또 다른 기자는 “그동안 원내대표로 구심점을 못 잡는 경우가 많았다”며 “언론인 출신이라면서도 언론과 소통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고 혹평했다. 이 기자는 또 “2~3번 실수가 있었는데 앞으로 또 실수가 나오면 측근(의원)이 없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언론과 불통 아이콘이 된 원인으로는 ‘낀박’의 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달 3일 원내대표에 당선된 후 ‘도로 친박당’ 비판을 받고 비박계 혁신위원장과 비대위를 구성했다가 친박계에 사퇴 위협을 받았다.

실제로 친박계는 정진석 원내대표의 ‘투트랙 혁신안’을 비토하면서 실력을 행사했고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광주행 KTX에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앞-뒷자리에 앉아 가면서도 2시간 동안 모른척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기환 수석은 정진석 원내대표가 뒷자리에 탄 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청와대와 여당 원내대표의 사이는 심상치 않은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야당 의원은 “옆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를 지켜보기 참 안쓰럽다”며 “친박이 초반부터 너무 흔들어놔서 벌써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원 구성 협상 과정을 보면 만날 때마다 새누리당 제안이 바뀐다고 하더라”며 “원내대표가 협상권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다보니 일관성 없는 엉뚱한 안만 가지고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가 여야 협상 후에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는 것 이상으로 논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면서도 “중진 아니면 청와대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2일 전국상임위가 끝난 후 미디어오늘 기자와 만나 “(기자들 전화를 일일이) 받을 수가 없다. 반장만 전화해라, 하루 종일 (전화를 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라며 “하루 80명씩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