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개인적인가? 경찰이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한 것에 전문가들은 반대한다. 이번사건은 개인적인 폭력일까?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이 주최한 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강남 살인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에서 ‘폭력은 사회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집권기에 살인과 자살사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공화당 집권기에는 대체로 살인과 자살사건이 증가하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살인과 자살이 개인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한국에서도 강력범죄 추이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실업률과 자살률도 거의 비슷하게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의 범죄 비율은 0.3%로 일반인구의 범죄율 3.6%의 10분의 1수준이지만 권력은 폭력을 정신질환이 있는 개인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진=pixabay

이 교수는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데 이중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63%, 일용노동자가 24%로 대부분”이라며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정신질환 범죄로 만들면서 실업문제, 빈곤문제를 덮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의 관점 의심하지 않는 언론

이런 권력의 관점을 언론을 통해 그대로 확대됐다.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부산에서 50대 남성이 각목을 여성에게 휘두른 사건, 수락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등에 대해서도 정신질환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부산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2000년도에 정신장애 3급, 기초수급자 판단을 받았지만 이후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지 않았고, 이로 인해 조건부 수급자가 된 상황에서 수급비가 끊겼다. 생활비 40만원은 받지 못한채 주거급여 11만원만 받게 됐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6만원짜리 집에 살고 있었고 가족과 단절됐다. 돈이 없어서 사건 며칠전 바나나 하나를 훔쳐먹다가 걸리기도 했다. 언론은 이런 사회적 맥락을 보지 않고, 정신질환자라는 조건만 보고 강남역 사건과 묶어 정신질환 범죄라고 보도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하면 부산에서 일어난 해당 사건은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다. 정신장애 판단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사건 당시 정신장애인은 아니었고, 단지 정신질환 병력이 있던 사람이다. 또한 정신장애인이라고 해서 항상 정신질환(망상, 환청 등) 증상에 의해 고통받는 것도 아니다.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범죄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신질환 증세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구분돼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정신장애인의 사건과 정신질환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조차 구분하지 않았다는 게 강 기자의 지적이다.

심지어 지난달 수락산에서 6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은 용의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는지 확인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강 기자는 “한 사람이 벼랑 끝에 서는 데는 많은 맥락이 있는데 사회적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피곤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산 사람을 해치워버리는 것 아닌가”라며 “자기 삶의 돌파구가 더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약자를 찾아서 분노한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 누구의 발언을 캐스팅하는가

강 기자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도할 때 정신질환자의 범죄로 보도하면서 언론은 정신과 전문의, 범죄심리가라는 전문가의 발언이 주로 캐스팅했다”며 “정신과 전문의, 병원과 장기입원, 강제입원의 관계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객관적일 수 없는 이해당사자가 전문가라는 이유로 언론이 더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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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기자에 따르면 2015년 건강보험이랑 의료급여 2조8000억원 중 입원비가 절반가량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병상수가 많을수록 안정적인 수입원이 된다. 강 기자는 “의사들의 발언을 보면 정신장애인이 치료를 잘 받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치료를 잘 받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살수 있도록 직장, 복지, 사회적관계 등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발언은 별로 없었다. 강 기자는 “당사자들이 기자회견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두 차례나 했는데 장애인계 신문과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가 별로 없다”며 “주류 언론에서 누구의 발언을 캐스팅하는지가 주류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주류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이슈보다 장애인 이슈는 사유할만한지, 요즘 간혹 ‘시의적절한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단지 ‘시의적절하게’ 소비만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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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집단학살의 전에 혐오의 말 증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정리하면, 공권력은 정신질환이 있는 개인의 일탈로 사건을 규정하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언론은 이슈에 맞게 공권력의 관점을 전달하고 있고, 정신과 전문의 등과 같은 전문가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정신과 전문의들은 정신질환산업의 수혜를 받고 있는 이해관계자다. 이 과정에서 약자(정신장애인)가 약자(여성)을 공격한 사건으로 변질됐다.

신영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정부는 늘 범죄를 정신장애인의 문제로 몰았고, 이런 위기는 늘 있을 수 있다”며 “당분간은 정부에게도 뭔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다.

신 교수는 “파시즘과 같은 집단학살 전에는 ‘바퀴벌레’, ‘쥐새끼’ 등 증오와 혐오의 말이 급증한다”며 “강남역 사건 뿐 아니라 최근 한국사회의 모습이 앞으로 올 혼란의 징조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제노사이드는 옆에 있는 사람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아우슈비츠는 돌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미움의 말로 세워졌다” 등의 말은 인용하며 “강남역 살인사건은 약자에 의한 약자의 범죄이고 약자들이 싸울 때 좋아하는 것은 강자”라고 말했다.

▲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공동대응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장애인 단체들이 여성혐오 싸움에 맨 앞에 서고, 여성들이 오랫동안 약자로 피해를 받았던 정신장애인 싸움에 서겠다며 연대하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만만한 상대와 싸울 게 아니라 진짜로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누군지, 약자끼리 연대하고 싸움을 1:99의 구도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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