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경리단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거다.”

지난달 27일 공인중개사 A씨가 재건축 중인 ‘길용우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중견 연기자 길용우씨는 지난 2014년 10월 경리단길에서 500여 미터 안 쪽에 위치한 좋은 목의 건물을 매입했고 그의 아들은 1층에서 맥주 펍 ‘남산 케미스트리’를 운영했다. 완공 후 1~2층엔 맥주 펍이 그대로 들어서고 3층엔 카페가 입주할 예정이다. 부동산 업주들은 이 건물이 경리단길에서 드물게 넓은 부지인데다 신축 프리미엄이 더해져 경리단길을 더 ‘뜨게’ 해 줄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부동산 개발의 언저리엔 쫓겨난 상인들이 있었다. ‘보상금을 받고 잘 마무리된 일’로 알려져있지만 상가 세입자들은 나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길씨는 지난해 2월 재건축을 이유로 세입자에게 퇴거통보를 해 세입자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해당 지역에서 상권을 다져온 상인에게 퇴거통보는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5년간의 계약갱신 요구권을 상가세입자에 주고 있으나 건물주가 재건축을 원할 경우는 예외다. 합의 후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남산 케미스트리가 이들이 비운 자리에 들어섰다. 그 후 재건축이 추진됐고 ‘새로운 중심지’로서 기대를 사고 있다. 이른바 ‘원주민 축출현상’ 불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건물주 연예인, 젠트리피케이션 편승

젠트리피케이션이 있는 곳엔 연예인이 있다. 막대한 수익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연예인은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층 중 하나다. 이들은 인기변동에 따라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부동산같은 장기적인 투자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 '젠트리피케이션 중심지' 이태원.한남 일대 연예인 9인의 부동산 보유 지도. 세입자는 투자금 회수 극대화를 꾀하는 건물주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재벌닷컴이 2014년 8월 발표한 유명 연예인 40명이 보유한 빌딩 실거래 가격 조사 결과를 보면 100억 원 이상 빌딩을 가진 이들은 18명으로, 이중 가수 서태지는 440억 원, 배우 전지현은 230억 원 등의 자산규모를 보였다. 

홍대, 신사동, 성수 등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이 뜨거운 지역에도 연예인의 부동산 보유는 활발히 이뤄졌다. 신동엽, 손예진은 각각 2014년, 2015년에 서교동에 건물을 매입했고 슈퍼주니어 예성은 지난 2013년 상수동 건물을 매입해 1년 만에 팔아 100%의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장우혁·박찬호·리쌍은 강남 신사역 주변 이면도로에 빌딩 투자를 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중심지로 불리는 서울 이태원동·한남동 일대를 조사한 결과 이 일대에 건물을 보유한 연예인으로 언론에 공개된 수만 9명이었다. 길용우·조인성·백지연 등은 모두 경리단길 도로변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수 마야·태진아는 용산구청 인근 이태원동에, 장동건·싸이·공효진은 6호선 한강진역에서부터 이태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꼼데가르송길’에 각각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이태원·한남동 일대 지대 상승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무렵에 건물을 매입했다. 경리단길 건물을 매입한 세 명 모두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이 한창이던 2012~2014년에 매입했고, 한남동에 자리잡은 공효진·싸이·마야·태진아 등은 2012~2013년에 매입을 완료했다.

카페, 식당, 고급 미용실 등 입주한 상가 종류는 다양했다. 조인성·백지연·싸이의 경우 까페가 입주해 있으며 길용우의 경우도 까페가 입점할 예정이다. 조인성·길용우의 경우 각각 동생과 아들에게 상가를 내줬다. 마야의 경우 고급 미용실과 네일아트숍이, 태진아의 경우 곰탕을 파는 식당과 아들 이루의 소속사 JA엔터테인먼트가 자리했다. 공효진이 보유한 6층 건물엔 여행사, 포토스튜디오, 광고기획사 등 다양한 회사가 임대하고 있었고 장동건의 경우 폭스바겐코리아의 공식 딜러인 ‘마이스터 모터스’가 있었다.

이들은 지대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연구 및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재난연구소’가 매입가격과 현 가격을 비교한 결과 8명 건물 가격의 평균상승률은 45%였다. 재난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52억에 매입한 백지연의 건물은 90% 상승률을 보이며 현재 99억 원 시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매입가격 62억 2500만 원이었던 길용우 보유 건물의 현 시세는 120억으로 92% 상승률을 보였고, 2012년 78억5천에 매입된 싸이 보유 건물도 시세 130억을 보이며 가격이 65% 상승했다.

성공투자? 칭찬만 할 건가

연예인의 부동산 보유를 ‘재테크’라고 칭찬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는 장본인 중 하나라는 데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필연적으로 건물주와 상인 간의 분쟁을 낳는다. 투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려는 건물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가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연예인도 결국 이 분쟁에 얽힐 가능성이 크다.

▲ 지난 1월28일 오후 찾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강제집행을 막기 위한 자물쇠가 유리문에 걸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경리단길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리단 일대 지가는 2년 여 전 두 배로 뛰었다. 그 결과 입구 번화가 쪽 시세는 3㎡당 1억, 뒷쪽 도로변은 3㎡당 5000만 원에 달한다. 지대와 권리금도 배로 뛰었다. 번화가 쪽 1층 10평 규모의 경우 권리금은 1억여 원 정도, 보증금 5000만 원에 임대료는 250~350만 원 선이다.

연예인의 부동산 보유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는 부수효과를 내기도 한다. 부동산 관계자 B씨는 “스타 마케팅이 확실히 있다. 경리단 ‘조인성 까페’만 해도 사람들이 기대심리를 가지고 많이 찾아오고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간다”면서 “2년 전 경리단 시세가 2배 오른 것도 매스컴이 하도 띄웠기 때문인데, 연예인 입소문 효과로 땅값이 더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가 세입자들이 상권 형성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는 훌쩍 뛰는 임대료 문제에 있다. 10년 정도 슈퍼마켓을 해 온 C씨는 “3년 전만 해도 60만 원을 냈는데, 갑자기 150만 원을 달라고 한다. 누가 낼 수 있겠냐”라며 “못 견뎌서 나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우리는 (임대료를 대폭 올리지 않는)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30년 동안 옷가게를 해 온 D씨도 “‘뜨는 동네’라면서 장사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가게를 찾는 사람은 그 정도가 안 된다”며 “벌이가 크게 는 것도 아닌데 집값은 오른다”고 지적했다.

건물주 싸이와 싸웠던 까페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가수 리쌍과 싸우고 있는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은 연예인 건물주와 실제로 법적 분쟁까지 간 대표적인 상가다. 드로잉은 입주한 지 3년, 우장창창은 1년 반 만에 재건축을 한다는 이유로 퇴거 통보를 받았다.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자리잡는 데에만 평균 5년이 필요한 장사 기간 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내쫓기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드로잉은 강제퇴거 집행까지 당하면서 3년을 싸운 뒤 합의를 보며 분쟁을 마무리했지만 우장창창은 합의 후 다시 퇴거 통보를 받으며 싸움을 시작한 상태다.

이선민 맘편시장사하고픈상인모임 조직국장은 “(이같은 상가투자는) 합법적인 약탈이고 재테크라고 할 수 없다”면서 “‘내 건물 내가 쓰겠다’는 주장인데, 왜 누군가의 재산만 지켜지고 누군가의 것은 지켜지지 않느냐. 가게 한 켠이 임차 상인의 재산, 노력이 녹여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건물주 입장에서 연예인일 뿐이지, 고이율로 대출받아 상가 투자하고 이걸 임대 월세에 그대로 전가하게 하는 잘못된 임대차 문화에 너도 나도 참여하며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이 지금의 임대차 시장”이라면서 “임대인 권리는 임대수익 내는 데 있지 임차상인 내쫓는 데 있지 않다. 임차상인이 건물에서 상권을 일궈내면서 먹고 살 여지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임대수익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리단의 상인들은 높은 임대료에 울상을 짓고 있지만 부동산 업계는 ‘시세가 더 오를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다. 경리단 일대는 오랫동안 저평가를 받아서 이제 만들어지는 시장이며 내년 미군 부대 철수에 따라 공원이 조성돼 또 다른 분위기의 상권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태원·한남 일대는 더 거센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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