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부실로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중인 현대상선이 연수원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은 사례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13일 자신이 4년 동안 보유해온 현대종합연수원(주) 주식 68.48% 전량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모두 855억9333만여 원(주당 46만2982만 원 씩, 18만4874주)에 매각 처분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상선은 지난 4일 공시자료에서 “현대종합연수원의 유가증권신탁 계약과 관련해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한 건”이라고 설명했다. 처분목적에 대해 “유동성 확보를 위한 지분 매각”이라고 현대상선은 밝혔다.

현대종합연수원은 현대그룹 사원 등이 이용하는 연수원 건물을 운영하는 회사로 2013년 준공 이후 최근 3년 간 37억~4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문제는 현대상선이 지난 2012년과 2013년 세차례에 걸쳐 현대종합연수원 주식을 매입 또는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주식을 취득한 가격보다 이번에 현대엘리베이터에 판 가격이 수백억 원이나 낮다는 데 있다. 비싸게 샀다 싸게 판 사례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2012년 5월16일 주당 22만8333만원 씩 4만2000주를 96억 원(95억8998만6000원)에 매입한데 이어 두달 뒤인 같은해 7월12일 유상증자 땐 주당 104만1000원 씩 7만주를 728억7000만 원에 매입했다. 현대상선은 이듬해인 2013년 4월13일엔 ‘연수원 건립을 위한 유상증자’ 때 주당 52만8330만 원 씩 7만2874주를 385억152만420원에 매입하는 등 2년 동안 모두 세차례에 걸쳐 연수원 주식 매입에 1209억6150만6420원을 투자했다. 

이에 반해 지난 13일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한 주식가격은 모두 855억9333만4270원이었다. 그 차액만 353억6817만2150원에 이른다. 한마디로 1209억 원 들여 산 주식을 856억 원에 판 것이다. 4년 만에 매매차익이 아닌 거액의 매매차손의 결과가 나온 셈이 됐다.

▲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 @ 연합뉴스
현대종합연수원 주식의 장부가액만 보더라도 이미 사들인 직후부터 계속 가격이 감소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상선 사업보고서의 ‘종속기업, 공동기업 및 관계기업 투자’ 현황 표를 보면, 2012년의 경우 모두 두차례 걸쳐 주식취득가격이 약 824억5000만 원에 이르지만, 12월 말 기준 사업보고서 상 장부가는 769억3800만 원으로 이미 6개월 만에 50여 억 원이 줄어들었다. 385억 원 어치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2013년의 경우, 그해 12월 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장부가액이 1131억5800만 원까지 올랐으나 다시 1년 뒤인 2014년 12월 말엔 1031억4800만 원으로 10억 원 가량이 줄었다. 그러다 이번 지난해 12월 말 기준 장부가액은 962억8900만 원까지 다시 떨어졌다. 현대종합연수원 주식의 장부가격은 4년 동안 계속 떨어지기만 한 것이다.

현대종합연수원 주식 처분 건은 현대상선이 현대그룹의 건설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었다 손해를 입은 투자실패의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에서 손을 떼는 수순으로 가면서 자신이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엔 손실을 회피한 결과가, 현대상선엔 손실을 입힌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 같은 투자실패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변호사는 3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근 현대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산을 사들이고, 현대상선은 매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특히 해운회사인 현대상선이 내륙에 있는 종합연수원에 1200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투자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투자리스크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에 의해 나온 판단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연수원을 매입해서 어떻게 활용할지, 사업성은 어떻게 마련할지, 과연 따져본 투자였는가”라며 “필요성과 우선순위 면에서 충분히 검토한 투자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4년 만에 그것도 그룹내의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보면서 판 것은 황당한 경영행위”라며 “그룹 내부의 공정성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긴 했는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현대상선이 이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본 것은 분명하다”며 “전형적인 투자실패의 사례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31일 “이(현대종합연수원 주식 매매)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경제개혁연대 회의에서 ‘적정한 가격에 이뤄졌는지’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연합뉴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정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는지 판단을 해야 한다”며 투자 실패여부에 대해 “수년 전 투자에 들어갔을 때부터 ‘현대상선 본업도 안좋은데 연수원에 돈 쏟아붓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난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4년 전엔 투자여력이 충분했으나 이제는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자산매각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커뮤니케이션실은 31일 오후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답변서에서 353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지적에 대해 “지난 2012년 현대상선은 재무구조상 1200억 원 규모의 투자 여력이 충분했다”며 “그해 1분기 기준, 현금성자산만 약 5500억 원이었으며, 현대그룹도 재계 21위로 그룹 차원의 연수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다만, 글로벌 해운업 불황 장기화에 따른 2015년 자본잠식은 불가피한 결과였다”며 “이 때문에 고강도 자구안을 마련하는 등 유동성 확충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고, 현대상선도 손실에 대한 부담보다는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보유한 모든 자산 매각은 불가피했다”고 답했다.

현정은 회장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 아니냐는 지적에 현대그룹은 “현대상선과 엘리베이터는 종합연수원 주식을 공정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매매한 것”이라며 “양 사가 공동으로 선정한 회계법인이 산정한 공정하고 객관적 가격”이라고 답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은 남은 자구안인 용선료 조정과 사채권자 집회가 마무리되면 채권단 출자전환 등을 통해 현대그룹에서 분리될 예정”이라며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는데 현대종합연수원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불필요한 비업무용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므로 현대그룹(현대엘리베이터)으로 매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종합연수원이 최근 3년 연속 40억 원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에 대해 현대그룹은 “그렇다고 투자 잘못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며 “당장의 큰 수익보다는 미래 인재육성 등의 목적에 맞춰진 것으로 완공 이후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다. 투자초기에 금융비용 등 발생으로 일부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나 곧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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