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법리적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실질적인 법률안 폐기로 이어질 수 있기에 권한 남용이며 원천무효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27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 즉 거부권을 의결했다. 해외순방 중이던 박 대통령이 이를 재가함에 따라 거부권 행사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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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국회는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상임위원회 재적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중요 현안에 대해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황교안 총리는 이에 대해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이라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률안 거부권’의 정확한 명칭은 ‘재의요구권’이다. 헌법제53조 2항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정부 이송 후 15일)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헌법은 대통령에게 법률을 거부하고 이를 폐기할 수 있는 권한를 부여한 게 아니라 국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달라,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소극적인 권한만 부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시점은 19대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법률안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5월27일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 ⓒ포커스뉴스

또한 국회법 제5조는 1항은 “임시회의 집회요구가 있을 때에는 의장은 집회기일 3일전에 공고한다”고 되어 있다. 박 대통령의 재의 요구에 따라 국회를 소집한다 해도, 3일 전에 공고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19대 국회 마지막 날이자 주말인 5월29일 국회를 소집한다고 해도, 5월26일에는 의장이 회의 소집을 공고해야 한다는 것.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27일 현안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도 한계가 있다. 국회법 5조 1항 임시국회 소집 요건에 따르면 3일 전까지 공고하게 되어 있다”며 “19대 임기가 29일까지 임을 감안한다면 유효한 소집 공고일은 26일까지이다. 27일 이후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게 되면 재의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재의 요구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재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대통령의 재의 요구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며 법률적으로도 그 효력이 없다”며 “대통령의 재의 요구는 원천 무효”라고 강조했다.

야당이 박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꼼수’라고 규정한 이유다. 이런 꼼수를 인정하게 되면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 실질적인 법률안폐지권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에는 불가능한 명령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박 대통령의 재의요구는 불가능을 요구한 것이기에 원천무효라고 봐야 한다”며 “만약 법률 폐기를 염두에 두고 재의를 요구했다면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법률안폐지권을 행사한 것으로, 입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한 “미국의 거부권 제도는 법률안을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 헌법이 부여한 거부권에는 그런 권한이 없다”며 “박근혜 정부는 3권 분립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이 3권 분립 원칙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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