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선거 여론조사’라고 평가받는 20대 총선 선거 여론조사에 대해, 이를 정책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공통된 목소리가 제기됐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방법에 대해서는 관련 업계 간 이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27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주최로 선거여론조사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윤재현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중앙선거여론공심위) 사무국장의 발제로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주홍 국민의당 국회의원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박승열 월드리서치 대표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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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현 사무국장은 발제를 통해 20대 총선의 선거 여론조사 문제점을 △전문성이 결여된 여론조사기관의 난립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표집틀의 부재와 조사 방법의 엄밀성 부족 △언론사의 경마식 보도관행 등을 꼽았다.

윤 사무국장에 의하면 선거 때만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떳다방’ 식 여론조사기관이 난립해 전문성 없는 여론조사가 남발된다.

2014년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에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업체는 83개였으나, 이번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총 186개 업체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특히 이 중 154개사는 한국조사협회나 한국정치조사협회 등에도 가입이 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비공표용 조사를 주로 수행(1873건, 비공표용 전체 조사 중 64.4%)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앙선거여론공심위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론조사 1744건 중 279건(16%)의 여론조사가 단 하루 만에 종결됐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조사를 수행하지 않게 되면 받지 않은 응답자에게 재접촉 노력이 부족해지고, 사실상 ‘답변할 준비가 된’ 당원 등 일부 사람들의 의견이 과대 반영되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대표성 있는 표본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론조사는 유선전화에 대한 의존도가 큰 편이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KT 등재 집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는 2008년에 발행된 것으로 정확한 표본으로 사용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무선 전화 표집틀의 경우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 활용도가 떨어진다.

여러 문제점을 노출한 여론조사에 대해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이 윤 사무국장의 의견이다.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의 행정조치나 관할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등의 조치에도 해당 업체들은 운영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로 총9건의 조치를 받았던 특정 업체 한 곳은 전체 공표된 조사건수의 24%에 해당하는 419건의 여론조사를 실시해 제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여론조사 기관보다 많은 조사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윤 사무국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여론조사기관 인증제 또는 등록제 실시 △안심번호 적용범위 확대 △공표용 조사의 응답률 제한 △여론조사결과 공표금지 제한규정 축소 또는 폐지 △조치 실효성 및 심의 효율성 제고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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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치권과 언론계, 여론조사 업계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한 해결방안은 안심번호의 적용 범위 확대와 여론조사결과 공표금지 제한규정 축소 혹은 폐지안이었다.

현재는 안심번호 형태의 휴대전화 번호 제공은 정당의 경선과 정당 정책 조사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선거 여론조사 등에서도 대표성있는 표본 확보를 위해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심번호 적용 범위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남용’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여론조사는 당내 경선 때는 활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에서 여론조사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 하며, 유권자의 정치 의사 표시를 대체해 이를 통해 공직 후보를 뽑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도 “이번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빗나간 이유로 국민들의 여론조사 혐오증도 한 몫했다. 당 경선, 단일화 등의 여론조사 전후로 응답 잘해달라, 1등했다 등의 문자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지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혐오 감정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현재 선거일 전 6일부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와 보도가 제한돼있다. 실질적으로 유권자들이 투표 당일이나 전날에 표심을 확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공표 금지 기간에 사전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무의미한 제도라는 지적이다. 이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패널들이 찬성 입장을 보였다.

다만 일부 개선안에 대해서는 업계와 언론계 등의 이견이 제시됐다. 공표용 여론조사 중 응답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경우 아예 공표를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윤 사무국장의 의견에 박승열 월드리서치 대표는 “응답률을 특정 수치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가 될 기초 자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홍영림 팀장 역시 “저품질 조사의 공표를 제한하기 위한 기준을 수치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선거 여론조사기관의 등록 및 인증제 도입 등 지나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안에 대한 의견이 이어졌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은 “우리나라의 선거 여론조사 규제는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규제가 적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여론조사의 최고 수혜자는 정부 및 정치권이다.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여론조사가 잘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와 투자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진 조원씨엔아이 대표도 “건전하지 못한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와 제한이 필요는 하지만 행정 편의주의적이거나 특정 조사방법에 대한 일방적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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