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행복할 날만 남은 줄 알았는데….”

KBS 신입사원 한아무개(32)씨는 지난 1월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KBS 드라마센터 내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한씨는 건물 밖으로 나가다 추락사를 당했다. 연수 마지막 날에 발생한 참사였다.

갑작스럽게 형을 잃은 동생 동수(가명)씨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은 감정 표현을 잘했다. 아버지가 없는 우리에게 형은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다. 이젠 행복할 날만 남은 줄 알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형은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올해 7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신랑이었다. 

지난 1월4일부터 29일까지 실시된 KBS 신입사원 연수는 연수원 내에 신입사원 100여명을 모아놓고 단체 합숙 방식으로 진행됐다. 

▲ KBS 신입사원 고(故) 한아무개씨가 지난 1월부터 한 달여간 KBS연수 생활을 하면서 남긴 기록물. (사진= 유가족 제공)
과거에는 주말 가운데 하루 정도 외부 활동이 가능했지만 올해는 외부 활동이 전면 통제됐다고 한다.

연수생들이 밖으로 나가다 적발되면 회사는 벌점을 매겼다.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연수원 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10명씩 묶어 10개로 나뉜 조 가운데 한씨는 연수원 43기 8조 조장이었다. 기록조 조장까지 맡아 신입사원들의 연수 활동사진과 일과를 정리하는 작업도 수행했다.

한씨의 동기들과 KBS 관계자들이 유가족에 전한 이야기 등을 종합하면, 한씨는 규칙을 잘 지키고 모범적이었으며 사교성이 뛰어났던 사원으로 평가받았다. 

“규칙을 잘 지키는 성격”, “연수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동료를 잘 챙겨주고 리더십이 있다” “동기회장이 될 거라 생각했다”는 말이 동기들 입에서 나왔다.

이 기간 동안 적잖은 연수생들은 정문이 아닌 출구를 찾아 연수원 밖으로 나가 음주를 하거나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왔다. 한씨는 밖으로 나가는 동기들을 ‘말리는 쪽’에 있었다.

한씨는 동료들과의 단체 카카오톡 채팅창에 “이건 아닌 것 같아”,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들.” “참자ㅋㅋ조금만”, “(숙소 탈출은) 절대불가”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조원들의 일탈을 만류했던 것.

그랬던 한씨도 29일 새벽 KBS연수원 내 1층 여자화장실 창문을 통해 연수원 밖으로 나가려다 변을 당했다. 그가 나가려던 이유는 현재 명확하지 않다.

음주를 하려 나갔던 것인지 아니면 먹을거리를 사러 그랬던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1층 화장실 창문 밖 아래 채광창이었다. 채광창이 그의 무게를 못 견뎠고 한씨는 지하로 추락했다. 

사고 이전에도 연수생들은 이 통로를 통해 외부로 나갔다. 

한씨와 함께 연수를 받은 한 신입사원은 “사고 전에도 그 통로로 많이 나갔고 다른 동기들도 그 통로를 이용했다”며 “화장실 창문 밖 바닥의 왼쪽은 콘크리트, 오른쪽은 채광창이었다. 동기들로부터 ‘조심히 밟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한씨)는 그 정보를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1월29일 KBS 신입사원 고(故) 한아무개씨가 추락사한 사고 현장이다. 사고 이후 유가족이 현장을 찾아 찍은 영상을 캡처했다. 파란색으로 표기된 곳이 화장실 창문이고 그 아래는 채광창이었다.
당초 금요일인 1월29일 퇴소가 예정돼 있었으나 이 사고로 인해 연수생들은 주말까지 남아 심리‧치료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한씨의 사고는 동료들에게도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사고가 난 지 4개월여가 지났다. 유가족들은 한씨가 KBS 사람들에게 ‘KBS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순직으로 인정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하지만 순직 인정을 포함해 보상 문제 등 KBS와 유족간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수씨는 “KBS는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라며 “KBS는 이후 유가족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사장님을 뵈려고 했지만 ‘화장실도 갈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특히 ‘KBS는 잘못한 게 없다’는 책임자의 말을 직접 들었을 때 큰 상처를 받았다. 고인이 된 형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형의 사고를 안타까워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자세가 먼저였어야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5일 KBS 홍보실과 황우섭 KBS 인재개발원장에 △사고 당일 연수생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 위반 여부 △전면적인 집체활동이 이뤄진 까닭 △채광창에 대한 관리 의무 위반 여부 △KBS가 생각하는 과실의 정도 △유가족과의 보상 문제 등에 대해 질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정 및 반론보도]

본 신문은 지난 5.27.자 "KBS 신입사원 연수 중 사망, 그때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월 KBS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한아무개씨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 추락사를 당했으나 보상 문제 등에서 KBS와 유족 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KBS는 잘못한 게 없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라는 등의 유족의 의견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와 관련해 KBS는 사장 이하 전 임원이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했고 장례비 전액을 지원하는 전례없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울러 KBS 관계자는 "유족들과는 여러차례 만나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보상 방안을 협의했고 사고와 관련해 검찰이 KBS의 과실이 없는 것으로 내사 종결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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