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승무원들은 가처분 지급금 한 푼도 낼 수 없다”

한국철도공사(사장 홍순만)가 KTX 해고 승무원을 대상으로 1인당 9000여만 원의 가처분 지급금 환수를 통보한 가운데, KTX 해고승무원들은 환수를 당장 중단하고 승무원 복직 교섭에 즉각 나설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열차승무지부는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무원들은 10년 투쟁에서 직장으로 돌아가기는커녕 1인당 1억 원 가까이 되는 가처분 지급금을 돌려줘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며 “KTX 승무원들은 대법원의 엉터리 판결에 따라 철도공사가 환수하는 가처분 지급금을 한 푼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열차승무지부는 5월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KTX 해고 승무원의 복직 교섭 재개와 가처분 지급금 환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철도공사는 지난 4월12일과 5월11일 두 번에 걸쳐 ‘소송 종결에 따른 가지급금 납부 안내’라는 내용증명을 해고승무원 33명에게 보내 오는 31일까지 8640만 원을 반환할 것을 통보했다. 철도공사는 기한 내 내지 않을 시 연이율 5%의 이자가 발생하고 법적 청구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철도공사의 환수 근거는 지난해 11월27일에 있었던 서울고등법원의 근로자지위확인 등 파기환송심 판결이다. 지난해 2월26일 대법원은 KTX 승무원 불법 파견을 합법적 도급이라 판단하며 이들의 파견을 위장도급이라 인정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 전까지 KTX 해고 승무원은 철도공사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 ‘위장 도급’으로 파견된 불법 파견 근로자임을 확인받았다. 2008년 12월2일 서울중앙지법은 근로자지위 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소송에서 해고 승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서도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과 2심 재판부 서울고등법원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해고승무원은 2008년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가처분 소송 승소에 따라 2008년 1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매달 180만 원 임금을 지급받았는데 파기환송심으로 판결이 뒤집힘에 따라 철도공사가 지급금 반환을 통보하고 나선 것이다.

▲ 지난 5월11일 한국철도공사가 KTX 해고 승무원에게 보낸 2차 '소송 종결에 따른 자기급금 납부 안내' 내용증명서. 사진=KTX 해고승무원 페이스북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위장도급 사실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이정미 정의당 당선인은 “고객에 대한 안전 업무와 서비스 업무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나. 여기 승무원들의 업무인 고객서비스의 일차적인 목적은 고객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이런 일(해고 및 장기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기업들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데서 벌어진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동일한 열차에 탑승하는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 하청 자회사 소속 열차승무원의 업무가 무관”하고 “승무원의 안전 업무는 이례적”이라는 이유로 KTX 해고 승무원의 파견을 ‘합법적 도급’이라 판결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류은숙 서울여성회장은 2004년 승무원 고용 당시 ‘2년 내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철도공사에 대해 “초등학교 1학년도 ‘약속을 해놓고 그걸 안 지키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안다. 친구, 선생님, 가족과 한 약속을 지키고 못 지켰을 땐 책임을 지는 것이 도덕이고 권리고 의무라는 걸 학교에 들어가면 배운다”면서 “그 책임을 철도공사는 져버리고 있다. 반 도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1심 판결에 따라 이들을 정당하게 노동하게 했다면 승무원에게 지금과 같은 모진 굴레, 돈 몇 푼의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사법의 정치와 행정독재 시대에, KTX 승무원 문제를 철도공사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장은 마지막 발언에 나서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 밝혔다. 김 지부장은 “(철도공사는) 그 유명한 법무법인 김앤장·세종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돈보다 몇 배가 될지도 모르는 돈을 써가면서 승무지부 패소 판결이 나게끔 만들었다”면서 “5월31일까지 8000만 원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들어가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공기업이 잔인해질 수 있는지 여실히 깨닫고 있다”고 철도공사를 규탄했다.

이어 그는 “지난 10년간 이런 세월 버텨냈다. 앞으로도 얼마나 낳은 시간을 버텨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절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겠다”며 “그 길에 여러분의 연대, 지지,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좌절하고 끝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전진하고 우리 자리 찾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 5월27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KTX 해고 승무원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승하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5월27일 기자회견에서 KTX 해고 승무원 복직 교섭 재개와 가처분 지급금 환수 불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철도공사와의 교섭 가능성에 대해 정미정 KTX 승무지부 총무는 “철도노조가 교섭테이블에서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공사 측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3차 내용 증명 발송한 후 법적 절차 들어간다는데 그렇게 하게 놔둘 수 없다. 승무지부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이정미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사회변혁노동자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회,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동양시멘트지부, 철도노조 등 정당 및 시민사회 각계에서 함께 했다.

▲ 지난 2006년 9월28일 KTX 민세원 전 지부장의 삭발단식농성 3일째 결의대회를 마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행진하는 KTX여승무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KTX 승무원과 한국철도공사의 싸움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철도공사(당시 철도청)은 KTX가 개통하기 전 2003년 11월, 노동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익회’와 도급위탁계약을 맺고 서비스업무를 외주화했다. 홍익회는 2004년 12월 이를 다시 ‘한국철도유통’에 위탁했고 한국철도유통은 2006년 5월 ‘KTX관광레저’에 위탁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철도유통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KTX관광레저로 이적을 거부한 KTX 승무원 280명을 해고했다.

이후 KTX 승무원 34명은 2010년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한국철도공사와 철도유통 사이의 위탁협약은 위장도급 △2006년 해고는 부당해고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지급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 모두 승소했다. 재판부는 승무원의 실질적인 사용자를 철도공사라고 판단했다. 철도공사 소속의 열차팀장의 ‘안전업무’와 승무원의 ‘서비스업무’가 완전히 분리될 수 없고 실제로도 분리되지 않다는 것이 요지였다. 2심 재판부는 “철도유통 등은 사실상 불법파견사업주로서 피고(한국철도공사) 등의 노무대행기관”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26일 대법원 재판부는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열차팀장과 원고 업무협조가 없진 않지만 각 업무 영역은 구분돼있고, (파견할 수 없는) 안전업무는 열차팀장이 담당했으며, 위탁협약을 맺은 철도유통 등은 피고(한국철도공사)와 독립적”이라 판단해 원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