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의 추모 쪽지들이 지적한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방치되고 있는 사회 전반이었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추모쪽지들이 지적한 언론의 문제를 크게 분류하자면 △피해자인 여성의 성별을 강조한 제목 △가해자를 변호하는 듯 한 보도 △‘묻지마 살인’ 프레임을 강조하는 보도 △‘여성혐오’시선을 지적하는 주장을 ‘남혐’으로 모는 보도로 나눌 수 있다.

1. 가해자가 남성임에도 피해자인 여성의 성별을 강조하는 보도 지적

“기자분들 ‘○○女’ 쓰지마세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왜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에 ○○女타이틀이 붙어야 하나요”

▲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를 위해 붙은 쪽지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여성이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기사 제목에 ‘○○女’라고 사건의 성격이 규정되는 것은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다. 대표적으로 살해당한 후 트렁크에 담긴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에 ‘트렁크녀’, 남성이 뿌린 염산에 맞은 피해자 여성을 ‘염산녀’라고 기사 제목을 뽑은 일 등이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도 기사 제목을 ‘강남 화장실 20대 女 살해범 검거’, ‘20대 女, 피 흘린 채…’, ‘강남역 20대 女 묻지마 살인’, ‘묻지마 강남女 살인’ 등과 같이 뽑은 언론이 있었다. 제목만 읽으면 여성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태다. 또한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女’라고 기사제목을 짓는 것은 가해자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다.

(관련기사: 염산남은 없는데 염산녀는 있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아바즈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성평등 관련 규제를 강화해달라는 서명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링크) 서명운동 페이지에는 “언론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집착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한편 잘못된 성관념을 지속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의 성평등 관련 시정권고 심의 기준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 가해자를 변호하는 듯 한 보도 지적

“언론은 왜 살인마의 꿈을 들먹이며 변호사 짓거리를 자청하는가”
“‘여자가 무시’, 은연중에 언론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여자가 무시해서 일어난 우발적 범죄라구요? 언론은 제발 정신 차리세요”

▲ 사진=정민경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범행동기를 “여자들이 날 무시해 범행했다”고 자백하자 언론은 이를 제목으로 뽑았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강남 유흥가 화장실서 묻지마 살인’, “여자들이 날 무시해” 노래방 화장실서 여성 살해“ 등이다. 또한 이러한 보도에 피의자 남성이 목사를 꿈꿨다는 신상까지 더해졌다.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과 같은 보도다. 이런 보도를 보고 분노한 시민들은 언론이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감정이입을 해 보도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취재 내용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모아 제목으로 뽑았을 것이다. 특히 피의자의 범행 동기는 매우 중요한 사건의 단서이고 이 사건이 어떤 종류의 사건인지 파악하는데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언뜻 가해자가 타당한 원인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한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이와 같은 보도에 대해 “가해자의 말들을 가감 없이 헤드로 뽑는 것은 범죄를 정당화하게 만드는 인식을 심을 수 있다”며 “요즘 제목만 보거나 요약된 부분만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선정적인 제목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한다”고 지적했다.

3. ‘묻지마 살인’ 프레임을 강조하는 보도 지적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인데도 묻지마 살인이라고 제목 붙이고 가해자의 꿈을 앞 다투어 보도하는 기자들도 여성혐오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론은 묻지마 살인을 멈추세요”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것은 이 사건이 ‘묻지마 살인사건’인지 ‘여성혐오 범죄’인지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특히 경찰은 피의자의 병력을 이유로 이 사건이 여성혐오로 인한 것이 아닌 정신 병력을 가진 피의자의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정신병력과 여성혐오성향은 한 사람에게 모두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두 가지가 양립될 수 없다는 이분법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강남역 살인사건’ 등 사건을 명확하게 지칭할 수 있는 용어가 있음에도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은 하나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의 권석천 논설위원은 ‘묻지마? 뭘 묻지 말라는 건가’라는 글에서 ’“‘묻지마’가 붙는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별적 삶은 증발되고 사회적 맥락은 생략되기 일쑤다”고 지적했다.

4. ‘여성혐오’ 사회를 지적하는 주장을 ‘남혐’으로 모는 보도 지적

“당신의 피켓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 이번 사건으로 여성들이 느낀 공포와 분노를 ‘성대결’로 몰아버리는 오독.”

▲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공동대응에 대한 기자회견이 25일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일부 언론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쪽지들과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의 주장을 ‘남성혐오’라는 식으로 전했다. 혹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순수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강남 묻지마 살인 여혐 vs 남혐 갈등으로 확산’, ‘강남역 10번 출구, 계속된 추모열기 속 여혐·남혐 갈등’과 같은 제목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특히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국민일보)과 같은 보도는 “이번 사건을 두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다”, “(한 남성이) 여자 친구에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기가 불안했다고 한다”고 썼다. 이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을 지적하는 주장을 마치 성대결을 하자는 것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와 관련해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한겨레 칼럼에서 “여성이 쉽게 원망의 대상이 되고 범죄의 표적이 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외치는 여성들을 향해서 ‘여혐-남혐 구도로 몰아가지 말라’고 받아치는 바로 그들로부터, 여성의 고립과, 절망과, 힘듦이 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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