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당연하고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하고, 진실을 파헤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 중의 하나는 누구의 이익에 기여하는가이다. 권력자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명제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언론에서 국민을 우선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공익을 책무로 하는 공영방송을 비롯해 대다수의 언론보도는 시청자에게 ‘팩트체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마저 유발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사저널의 보도(4/11)를 시작으로 주목되었던 ‘어버이연합 게이트’만 해도 그렇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고 단체는 그 돈으로 탈북자를 고용해 ‘친청와대 집회’를 벌여 왔다는 것이다.

JTBC는 해당 단체가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이며 자금의 출처는 전경련임을 밝혔고, 전경련-어버이연합-국정원-청와대로 이어지는 ‘4각 커넥션’의 ‘여론 개입’ 정황도 단독으로 구체화해 보여줬다.

이 보도로 “국정원이 무상급식이나 대북지원 등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시위를 지시한 뒤 광고나 기사를 내도록 하고 이 내용을 댓글로 전파하며 조직적으로 움직”(4/26)인 것이 확인되었고 국정원도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도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사실상 ‘은폐’다

이후 JTBC가 4월 17일부터 28일까지 매일 관련 보도를 한 것에 비해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보도량은 매우 적었다. 4월17일부터 30일까지, 두 공영방송의 보도 건수는 KBS 1.5건, MBC 1건 뿐이다. JTBC가 총 51건의 보도로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진상을 파헤친 것과 비교하면 KBS와 MBC는 사실상 사태를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다.

SBS, TV조선, 채널A, MBN은 20일과 21에 걸쳐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커넥션’ 전반을 소개했지만 KBS와 MBC는 침묵했다.

두 공영방송은 26일이 되어서야 약속이나 한 듯 관련 첫 보도를 냈다. 그동안 밝혀진 의혹과 ‘청와대 지시설’이 무엇인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서울중앙지검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보수성향 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만 전했다. ‘청와대 지시설’ 등 주요 사안은 모두 누락됐고 여야의 대립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최근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보도에서도 공영방송을 비롯한 방송뉴스에서 ‘팩트체크’를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사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두환 씨가 자신의 책임을 부정한 발언을 지상파 3사와 TV조선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 방송사는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훼손한 충격적인 사안을 외면한 것이다.

MBN은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며 발포 명령을 부인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논란의 발언들은 그대로 보도하면서 정작 전 씨의 태도에 격분한 5.18 희생자 가족과 광주 시민들, 정치권의 반응은 외면하기도 했다.

이들 방송과 달리 JTBC는 ‘발포 상황에 대한 군의 공식 문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명령 없이 이뤄진 발포에 대해 훈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어불성설임을 보도했다.

5.18 기념식 보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광주민주항쟁의 가치를 지우려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가 반복됐지만 방송사들은 또 침묵했다. 5.18 기념식 보도에서도 JTBC를 제외한 6개 방송사 모두 ‘쫓겨난 보훈처장’의 관점에서 보도했다. 지상파 3사는 보훈처장이 입장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합창’ 여부만 전하며 스케치 수준의 보도에 그쳤고 TV조선과 채널A, MBN은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국민 분열을 낳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게다가 기념식에 참석한 야당 정치인들을 ‘야권 대선 잠룡’이라며 5.18 가치와는 무관한 보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언론, 개선이 절실해

5・18의 의미를 퇴색시킨 정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보도는 JTBC 뿐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왜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시민들이 선량한 시민이었느냐, 아니면 폭도였느냐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앵커의 말은 국민에게도 독재권력에 저항한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팩트체크’의 기준이 되었다.

공영방송의 뉴스를 보면서 진위를 의심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국민의 피로를 덜어 줄 언론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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