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사무총장의 방한에 여야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반 총장의 일정에 친박 의원들이 동행하면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은 25일 오후 한국을 방문해 25일~26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포럼에 참석한다. 반 총장은 이후 G7 정상회의(26일~27일) 참석차 일본에 갔다가 27일 저녁 서울에 올 예정이다. 반 총장은 이어 29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리는 국제로터리 세계대회,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유엔 NGO 콘퍼런스 참석차 경주로 갔다 30일 출국한다.

주목되는 부분은 반 총장의 일정에 새누리당, 특히 친박 의원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반 총장의 방한 첫 일정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홍문표 사무총장,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 이재영 의원 등이 참석한다. 정 원내대표와 홍 사무총장과 반 총장이 겹치는 부분은 ‘충청’이다. 특히 정 원내대표는 제주행을 급작스럽게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에는 지역구 의원인 친박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동행한다. 경주일정 때는 친박 김석기 당선인과 함께할 예정이다. 친박 의원들이 반 총장을 ‘에스코트’하는 모양새다.

친박이 반 총장을 차기 대권 주자로 밀고 있다는 말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친박 홍문종 의원은 지난 16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반기문 총장은 새누리당에게는 상수다. 변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친박의 정치는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친박은 4.13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색깔과 맞지 않는 유승민 의원 등을 공천에서 배제했고 총선 이후 꾸려질 예정이었던 혁신위 구성도 무산시켰다. 혁신위에 ‘비박이 많다’는 이유였다. 언론에 대놓고 “비박이 당을 나가면 좋다”는 말까지 한다. 친박이 차기 대선에서 원하는 그림은 ‘친박의 재집권’이라는 뜻이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 iStock
이런 상황에서 친박의 고민은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다는 것이다. 친박이 밀려고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4.13 총선에서 낙선하며 대권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했다. 나아가 총선을 통해 친박이 TK지역 외에서는 소구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따라서 친박에게 반기문 총장은 최적의 카드다. 반 총장은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갖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6일 여론조사기관 (주)에스티아이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권 정치의식 조사에서 36.7%의 응답자가 반기문-문재인-안철수 3자 대결에서 새누리당으로 후보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반기문 사무총장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친박 입장에서 반기문 총장은 고립된 처지를 돌파할 수 있는 카드라는 셈이다. 반 총장이 ‘충청대망론’의 당사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친박과 반 총장의 연합을 TK와 충청의 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친박과 비박의 갈등이 부각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올수록 인기 없는 친박에게는 인기 있는 반기문 총장의 필요성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친박’을 등에 업은 반 총장의 본선 경쟁력이다. 친박 후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만, 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야권과 대결해 승리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더욱이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비박은 ‘반기문 대망론’에 부정적이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23일 BBS ‘고성국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당내 일각에서 반 사무총장만 옹립하면 내년 대선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지고 있는 문제가 새누리당의 더 큰 위기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비박과 친박 후보가 필요한 친박의 갈등이 ‘반기문 대망론’을 두고도 충돌하는 모양새다.

야당은 지지율이 높은 ‘반기문 대망론’에도 걱정할 것 없다는 눈치다. 민병두 더민주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국 태풍의 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한한다는데 태풍의 눈일 것 같지 않다”며 “반 총장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대통령 후보로 ‘내정’돼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본인의 분명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모호하다는 점, 내년 5월 대망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금의환향이 어렵다는 점, 경제실정 책임자인 친박 실세가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점 등은 보수정권이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게 될 것이란 관측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24일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상당히 많은 장벽을 돌파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스스로 의지를 보여야 하고 정치적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외부에 있는 사람을 영입을 해서 대통령이 별안간 된다는 것,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반기문 총장은 새누리당의 ‘뻥카’, 즉 본선에서 쓸 수 없는 카드라 본다”며 “야당 입장에서 반기문은 별로 두려운 카드가 아니다. 오히려 비박계가 주도해 남경필 등 새로운 후보가 부상하는 상황을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오면 대선 앞두고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이고 야당도 다른 대선 주자를 내세워야 한다는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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