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알박기 집회’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경찰이 현대자동차에 집회 신고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편파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경찰의 현대차 봐주기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와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24시간 옥외 집회를 서초경찰서에 신고했으나 ‘1순위 신고자’에 밀려 제대로 집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이들보다 먼저 집회를 신고한 현대자동차가 1순위를 부여받았고, 이들은 2순위로 접수돼 ‘1순위 집회 시 집회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다.

▲ 5월19일 집회를 진행하는 유성범대위를 경찰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유성범대위

이들은 집회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지난 17일부터 기자회견 개최에 어려움을 겪었고 21일엔 본사 앞에 세워놓은 분향소도 철거당했다. 경찰 통제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지난 7일동안 47명이 연행됐다. 결국 이들은 농성장을 본사 왼편 인도로 자리 잡고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이 집회 신고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문제는 현대자동차 측의 집회가 사측에 항의하는 집회를 막기 위한 ‘알박기 집회’라는 사실이다. 알박기 집회는 다른 집회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기간 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관행이다. 지난 23일 현대자동차 관계자 15여 명은 ‘노사관계 선진화로 기업경쟁력 강화’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본사 입구에 하루 종일 서 있었다.

서초경찰서는 현대자동차 측의 신고 시점이 이르다는 이유로 현대차에 한 달 여 간 집회 개최 우선권을 부여했다. 집시법은 신고된 집회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될 시 경찰이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하여 각 집회가 평화롭게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신고 시점을 기준으로 집회 개최 우선권을 준다는 규정은 없다. 유성기업 노동자들로선 신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한 달 여 간 집회 자유를 침해당한 것과 같다.

서초경찰서의 조정 노력에 대해 오진호 유성범대위 선전홍보팀장은 “남대문경찰서의 경우 동시 집회 신고가 들어올 때 12시간씩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조정하는 노력을 한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 서초경찰서는 어떤 조정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선전홍보팀장은 서초경찰서가 현대자동차에 편파적으로 집회 자유를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2일 서초경찰서는 사측보다 집회신고서를 먼저 내기 위해 당시 오후 11시50분 경에 도착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신고서보다 자정 넘어 도착한 사측 관계자의 신고서를 우선 접수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집회 신고가 집회 당일 720시간(30일) 전부터 가능함에 따라 6월23일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 23일 자정을 넘기기 전에 도착했던 터였다.

▲ 유성범대위는 5월23일 자정부터 15시간 동안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서초경찰서에서 대기했다. 사진=유성범대위

이에 대해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사측 직원이 아침 7시부터 와 있었다. (출입) 명부를 보면 나와있다. 일찍 온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을 따른 것”이라 해명했다. 해당 관계자가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서초경찰서에 머물렀는지 확인을 했냐는 질문에 서초경찰서는 “오전 7시부터 경찰서에 계속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오 선전홍보팀장은 “정보계가 있는 3층으로 가는 동안 경찰과 우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본 적이 없다. 신고서를 접수하던 경찰에게 ‘신고하러 온 사람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성범대위는 23일 긴급성명을 내 “지금까지 서초경찰서는 현대차의 집회신고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한다며 유성기업 노동자 분향소와 유성기업지회와 유성범대위의 집회를 강제해산하고, 폭력적으로 연행해왔다”며 “폭력경찰, 정몽구지킴이를 자임했던 서초경찰서가 이번에 어떤 근거로 집회신고도 못하게 할지 지켜보겠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같은 사측 방어를 위한 알박기 집회를 막을 법적 수단은 없는 실정이다. 알박기 집회가 남용됨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해 집시법이 개정됐으나 신고를 해놓고 집회를 열지 않는 ‘유령 알박기 집회’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시법은 옥외 집회를 하지 않을 경우 신고 일시 24시간 전에 철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사측 관계자가 신고 장소에 나와 형식상 집회 조건을 갖추기 때문에 과태료 대상이 되지 않는다.

▲ 5월2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왼편 인도에 자리잡은 유성범대위 농성장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6년째 노조 파괴 및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조는 지난 17일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한광호 열사’ 분향소를 차리며 농성을 시작했다. 고 한광호 조합원은 유성기업의 끊임없는 노조파괴 및 괴롭힘에 시달리다 지난 3월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 노조는 사측의 ‘살인적인’ 노조탄압이 한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노조파괴는 사실상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노조는 ‘노조탄압 중단 및 정몽구 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유성기업 및 현대자동차가 이들과 만날 때까지 농성을 철회하지 않을 예정이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전략에 현대차가 개입한 정황은 일부 문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유성범대위가 지난달 공개한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 현황과 전망’이란 제목의 자료에는 현대차와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2011년 12월에 모여 “강경파의 지부장ㆍ지회장 당선, 총선과 대선, 노동정책의 변화 등 영향으로 노사관계가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대책을 수립하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해당 문건은 유성기업에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자문한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고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유성기업이 다시 현대차 대리인에게 이메일로 전달한 흐름도 확인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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