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는 단어는 지겨울 정도지만 제대로 혁신을 이룬 언론은 많지 않다. 위기를 겪던 워싱턴포스트는 2013년 아마존의 창업주 제프 베조스가 인수하면서 1년만에 순방문자수가 70%가량 늘어나는 등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SBS가 주최한 SDF(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조이 마버거 워싱턴포스트 제품·디자인 디렉터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접목한 다음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그는 기술적인 진화가 계속 이어져야 하겠지만, ‘최고의 저널리즘’이 전제된 게 워싱턴포스트라고 강조했다.

‘채팅 인공지능’이 앵커를 대체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뉴스를 보는 것도 ‘일’이다. 모니터를 봐야 하고, 클릭을 해야 하고 글을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맥락을 이해하려면 알아서 이슈를 더 공부하거나, 다른 기사도 찾아봐야 한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가 내다보는 멀지 않은 미래엔 뉴스를 읽고 이해하는 게 훨씬 쉬워질 수 있다. “조작하고 만지지 않아도 뉴스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에 뉴스를 접목시킬 계획이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신문사가 스마트홈(사물인터넷)으로 뭘 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뉴스를 집 곳곳에 넣을 수 있다”면서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면 거울 한쪽에 주요뉴스 헤드라인과 날씨기사가 떠 클릭하지 않고 뉴스를 볼 수 있다. 현재 이 같은 제품을 내 사무실에 설치해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 SBS가 주최한 SDF(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조이 마버거 워싱턴포스트 제품·디자인 디렉터를 지난 20일 인터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채팅을 통해 뉴스를 이해할 수도 있고, 궁금한 점만 음성을 통해 전달받을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인공지능을 통한 채팅인 ‘chatbot’을 발전시켜 이용자가 뉴스와 소통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채팅메시지가 일종의 URL 없는 언론사사이트처럼 작동하는 것”이라며 “문자 채팅을 하고, 이를 음성으로도 대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현재 기반기술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스마트홈 스피커 아마존에어는 제휴언론사의 기사 헤드라인을 읽어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고도화한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기사 헤드라인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소통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기사를 요약한 내용만 들려주거나, 이용자가 알고 싶어 하는 점을 들려주게 된다”고 말했다. 

비유하자면 노종면 기자가 선보인 메신저 대화형 뉴스해설을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한다고 보면 된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집회’에 대한 보도라면, 이용자가 “내용을 요약해줘”라고 요구할 수 있고. ‘여성혐오인 근거는 뭐지?’ ‘핑크코끼리탈을 쓴 사람은 일베 회원인가?’ 등을 물어보면 ‘chatbot’이 설명하는 방식이다.

빅데이터 통해 기사추천하고 트래픽까지 ‘예측’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워싱턴포스트의 장기적인 전략이라면, 오늘날 워싱턴포스트의 혁신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전략은 ‘데이터’다. 기사추천 알고리즘인 클래비스를 비롯한 CMS ‘아크 퍼블리싱 시스템’이 이용자의 정보 분석을 통해 독자를 늘리고 광고효과를 높인 것이다.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 엔지니어링 팀의 라이벌은 다른 언론사가 아닌 실리콘밸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술수준이 뛰어나다. 

클래비스는 독자들이 읽은 기사 내용의 키워드들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다른 기사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으로 아마존의 책 추천 알고리즘을 응용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래비스를 통해 광고 추천 엔진 ‘브랜드커넥트 인텔리전스’도 개발하기도 했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클래비스는 당신이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읽지 않았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어떤 뉴스를 좋아할지, 어떤 뉴스를 싫어할지도 알려준다”면서 “전자에 비해 후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데이터 기술”이라고 말했다. 

▲ 워싱턴 노스웨스트에 위치한 워싱턴포스트 본사. 사진=워싱턴포스트
한국에서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하는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체류시간이 길지 않고 한번 들어와서 보는 기사량도 많지 않다. 이 역시 데이터 활용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조이 마버거 디렉터의 견해다. “빅데이터 측면의 개인맞춤화가 필요하다.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읽고 싶어할) 다른 콘텐츠를 던져주는 거다. 사용자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는 기억을 갖게 되고, 당신의 제품에 ‘재미’나 ‘행복’과 같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접속하거나 더 오래 머무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데이터 활용의 배경에는 ‘공급자’중심의 뉴스유통을 ‘수용자’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고객을 중시하는 건 제프 베조스의 가치관이다. 우리는 ‘독자’라고 부르지만 제프 베조스는 ‘고객’이라고 불렀다.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의 성격이 다르다보니 논쟁도 있었다. 기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알리는 데 관심이 많은데 반해 제프는 ‘공감’이라는 가치를 (독자들이 느끼는 걸) 중시했다. 우리의 상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야한다는 거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제프 베조스가 오고 나서 우리는 기술과 상품 중심의 회사가 됐다. 우리는 이미 최고의 저널리즘 조직을 가진 상황에서 기술까지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만 발전시킨다고 혁신이 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양질의 뉴스 콘텐츠기 기반이 돼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저널리즘과 연성기사 둘 다 잡겠다”

물론, 2013년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이래 워싱턴포스트는 연성기사를 늘리기도 했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우리는 진실한 저널리즘을 지켜왔지만 디지털 세대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면서 “허핑턴포스트식의 저널리즘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다가가기 쉬운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 모든 뉴스가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언론은 ‘저널리즘’과 ‘연성기사’를 구분해 하나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두가지 다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양질의 정치기사와 모든 분야의 분석기사는 여전히 워싱턴포스트의 장기다.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IS에 대한 논픽션과 미국경찰이 총기를 사용해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 990건을 분석한 결과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내용의 기사로 퓰리쳐 상을 받았다.

“자본덕에 혁신? 예정된 변화가 앞당겨진 것”

워싱턴포스트의 혁신을 지켜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동시에 좌절을 불러오기도 한다. 언론이 대규모 자본을 만나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제프가 가져온 건 돈이 아니라 실패할 자유”라고 답했다. “이전과 달리 우리 회사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신문사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도 일단 도전하고, 실패를 해도 됐다.” 주목해야 할 건 ‘자본력’이 아니라 ‘혁신에 대한 모험적인 시도’가 이어졌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에 왔을 때 우리는 이미 미래를 위한 계획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다만 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프가 앞당긴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iPad 앱을 만드는 게 대단한 목표인 것처럼 추진되기도 했다. 혁신 시도는 1년에 2~3가지 있었는데, 제프 베조스는 ‘당장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100명이 넘는 기술자, 디자이너, 기자를 고용했다.” 

단순히 인력만 새로 뽑고, 혁신 시도만 밀어붙인 게 아니라 조직의 체질도 바뀌었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당신이 우리 뉴스룸에 방문하면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에디터를 서로 구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앉아서, 같은 지위를 갖고 작업을 한다. 기자가 엔지니어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기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당신의 기술적 사고를 합쳐서 논의해보자’고 하는 식이다. ‘프로젝트’작업 때는 프로덕트 리더, 엔지니어 리더, 디자인 리더가 모여 논의를 거친다.”

아마존의 ‘메모’ 업무시스템을 워싱턴포스트에 도입한 것도 참신한 시도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아마존 직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 때 메모를 써서 공유한다. 그러면 다른 직원들이 각자 그 메모를 읽은 후에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구성원들이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보니 따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설득시킬 필요가 없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좋은 방식이다.”

▲ SBS가 주최한 SDF(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조이 마버거 워싱턴포스트 제품·디자인 디렉터를 지난 20일 인터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독자 있는 모든 곳에 뉴스가 도달해야”

워싱턴포스트는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충성독자를 늘렸지만, 언론사 플랫폼만 고수하지 않는다. 브렌들, 페이스북, 플립보드 등을 통한 크로스플랫폼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기사를 페이스북 인스턴트아티클로 내보내기도 한다.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우리는 워싱턴포스트가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특정 플랫폼의 영향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종속’우려는 피할 수 없다. 더욱이 페이스북이 뉴스 알고리즘에 임의적으로 개입한다는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다. 그는 “우려가 약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페이스북이 우리 브랜드에 상처를 입히거나 사업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페이스북이 곧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아주 거대하다”고 말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특정 플랫폼에 대해 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우려는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10개의 소규모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집중할 수도 있다. 텀블러나, 레딧과 같은 다른 플랫폼에도 투자하면, 페이스북이 사라지더라도 우리에겐 적지 않은 규모의 독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종이신문의 몰락에 대해 묻자 조이 마버거 디렉터는 “여러 자료를 보면 2020년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종이신문은 우리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현재 규모의 뉴스룸을 유지하려면 아직 종이신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이 마버거는 “종이신문의 몰락이 먼 훗날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바로 다음 날 맞닥뜨리게 수도 있다”면서 언제든 디지털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판시장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우리는 디지털부문 수익을 종이신문에서 내던 수익과 동일한 수준으로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우리의 ‘아크 퍼블리싱 시스템’과 성장률을 보건데,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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