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탈북한 탈북자 A씨는 11년 차 탈북자로 자영업을 하며 한국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이런 그의 정착에 방해가 되는 요인은 역설적이게도 탈북자 지원정책 중 하나인 ‘신변보호담당관’ 제도였다. 신변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경찰의 전화 및 방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2005년 12월 한국에 입국했다. 여느 탈북자들처럼 그는 한 달 간 국정원의 조사를 받고, 3개월 간 통일부 산하기관인 하나원에서 남한 정착교육을 받았다. 하나원에서 나갈 무렵 그는 A4 용지 한 장짜리 문서를 받는다. 앞으로 5년의 보호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문서였다.

일반적으로 탈북자가 하나원을 거쳐 거주지에 정착하면 거주지역 경찰서에 있는 ‘신변보호담당관’이 5년 동안 탈북자의 신상을 관리한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5조 2항은 “(북한이탈주민을) 거주지에서 보호하는 기간은 5년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보호기간인 5년이 지난 이후에도 거주지 경찰은 탈북자들에게 연락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42조에는 “통일부장관은 보호대상자가 거주지로 전입한 경우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국방부장관이나 경찰청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거주지보호지침’에 따르면 국방부장관이나 경찰청장이 탈북자의 신변보호기관장이며 이 신변보호기관장으로부터 탈북자의 거주지 신변보호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정받은 자, 즉 거주지 경찰서 경찰관이 ‘신변보호담당관’이다.

통일부 홈페이지에는 신변보호담당관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의 거주지 관할 경찰서에서 지정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신변을 보호하고 관련 상담업무를 수행한다”며 “2015년 1월 현재 전국적으로 800여명의 경찰관이 신변보호 담당관의 임무를 맡아 활동한다”고 나와 있다.

문제는 경찰이 탈북자 신변보호를 이유로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오히려 정착에 방해를 받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보호기간이 한참 지난 2014년 12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일하고 있는 오전 9시에 전화가 와서 이번에 새로 바뀐 형사(신변보호담당관)인데 인사하자고 경찰서에 오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업체와 미팅 약속이 있던 오후3시에 전화가 와서 (미팅에) 나가지 못해 화가 나 있던 상황”이라며 “항의하려고 경찰서에 갔다”고 말했다.

A씨는 “경찰서에 방문해서 ‘조용하게 잘 사는데 왜 우리를 괴롭히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경찰이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라고 하더라. 나처럼 항의하는 사람을 많이 겪어본 것 같았다”라며 “통일부 정착지원과에 항의했는데 이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청이나 시청에 가서 5년이 지났다는 서류를 떼서 경찰에 항의하라는 말만 했다”고 전했다.

▲ 지난 4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출해 귀순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A씨는 경찰의 전화감시가 부당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6개월이 지난 2015년 5월 13일 A씨의 진정을 기각시켰다. 인권위는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담당자들이 통상적인 업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만든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 △경찰이 업무 담당자 교체 인사차, 쌀 선물 및 김장김치 전달 등을 위해 전화를 한 것이기에 진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정도라고 보기 어려운 점 △ 전화내용도 ‘요즘 뭐하나’ ‘어떻게 지내느냐’ 등 단순한 신상확인 또는 안부성 전화라는 점 등을 기각의 이유로 들었다.

인권위는 또한 “피진정인(경찰)이 앞으로 진정인의 요청이 없는 경우 일체의 신변보호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진정내용으로 피진정인이 진정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되지 않아 기각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A씨는 이에 해당 경찰관들을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은 2015년 9월 21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경찰청 지침과 지시에 따라 고소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신변안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소인에게 전화하거나 집으로 찾아가는 등 신변보호 활동을 한 것은 불법적인 사생활 침해라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A씨는 불기소처분에 대해 재정신청을 하고 항고장을 제출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인권위가 신변보호담당관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인권위는 지난 2014년 7월13일 자신의 신변보호담당관으로 인해 탈북자라는 신원이 노출돼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탈북자 B씨의 진정을 받아들였다. 인권위는 해당 신변보호담당관이 속한 경찰서 서장에게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관련된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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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입국한 탈북자 B씨는 2014년 자신이 일하는 식당 건물로 이사했다. 이에 신변보호담당관이 B씨가 진짜 이사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식당 건물의 관리소장에 전화를 걸었고 관리소장이 식당으로 찾아가 “여기 탈북자가 있다는 데 누구냐”고 물으면서 B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이 동료직원들에게 공개됐다.

인권위는 “탈북자라는 정보는 유출되면 취업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민감한 정보다. 경찰관의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밝혔다.

A씨 역시 “인권위에 진정 넣고 고발하기 전에도 전화도 없이 집에 찾아와 부재중이면 ‘경찰관 누구인데 연락이 안 돼서 붙여 놨다’는 쪽지를 붙여놓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보면 죄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A씨는 “인천 부천 일대에는 아웃소싱 업체에 일하는 탈북자들이 많다. 업체에서 탈북자들을 쓰고 싶은데 고용하면 경찰서에서 ‘이런 사람 일하고 있냐’고 전화가 온다”며 “회사 입장에서 어떤 내용이든 경찰서에서 자꾸 전화 오는데 고용하고 싶겠나. 그래서 안 받거나 있던 탈북자들도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신변보호담당관 제도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고가 없는 탈북자들에게 신변보호담당관은 말 그대로 ‘정착도우미’ 역할을 한다. 교통사고가 났거나 부당한 해고를 당했을 때 형사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있고 취업 알선이나 정착교육에 도움을 제공할 때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와 신원 노출이다.

A씨는 “신변보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봐도 수상한 애들이 있다”며 “5년 간 열심히 하고, 신원 확인할 것이 있으면 당사자랑 주변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예컨대 진짜 취업한 지 궁금하면 회사에 전화를 할 게 아니라 출근 시간대에 지키고 있다가 진짜 그 회사에 들어가는지 한 달만 보면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찰청 탈북자관리전담계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가이드라인, 근무수칙 가운데 가급적이면 근무 중이 아닌 시간대, 근무 장소가 아닌 곳을 통해 연락을 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탈북자들이 사회적응 과정에서 신원 노출을 꺼려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사실을 각 경찰서에 홍보를 하는데 탈북자들이 전화번호도 자주 바꾸고 직장을 자주 옮겨서 잘 확인이 안 되니 불가피하게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신변보호담당관 제도가 감시로 작동하는 원인으로는 부족한 인력이 꼽힌다. 경찰관 한 명이 평균 10명 이상의 탈북자를 관리하고 있다. 탈북자가 많이 거주하는 경기, 인천지역에는 한 경찰관이 50명 이상 맡는 경우도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기보다 가끔 전화해서 ‘지금 어디냐’는 식으로 묻는 데 그치다 보니 감시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인권위도 2014년 7월13일 신변보호담당관의 인권침해를 인정하며 “(거주지) 주소로 찾아가서 실제 거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제3자에게 확인을 요청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B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 명의 경찰관이 많은 탈북자들을 관리하다보니 발생한 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통은 경찰 한 명마다 10명 이상을 맡는데, 관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탈북자가 많은 지역은 경찰관 한 명이 수십 명을 관리하기도 한다”며 “그렇다보니 무성의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감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은 많이 들었다. 인력을 충원하면서, 세심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탈북민으로 구성된 사회봉사단인 '착한(着韓) 봉사단' 단원들과 남한주민 등이 2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환경미화봉사에서 묘비를 닦고 있다. 이날 행사는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주최로 열렸다.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감시사회를 경험한 탈북자들의 상황과 신변보호담당관 제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탈북자들이 신변보호담당관 제도를 ‘또 다른 감시’로 인식한다는 것. 경찰청 관계자는 “북한에서 지내온 탈북자들은 경찰을 (북한의) ‘보위부’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몇 달에 한 번 전화하거나 잘 지내시냐고 하고 국가기관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감시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며 “개인차가 있는데, 반발하는 분들 외에 ‘왜 연락이 뜸하나’ ‘옛날에는 많이 챙겨주더니’라며 서운해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에 자신의 사정을 전한 A씨는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A씨는 “한국 정부는 탈북자를 위해 푸드 트럭을 주겠다느니 탈북자들을 초청해 통일박람회를 연다느니 하는 이벤트만 하지 정작 실제 탈북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이런 제도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며 “탈북자들이 여기서 잘 정착하고 살아야 북한 주민들이 동요하고 통일을 생각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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