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몇 번 자리에서 안 일어나는 기자”
“회사에 어르신들 보면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미디어오늘이 창간한 1995년 입사한 기자들은 어느새 21년차 기자가 됐습니다. 21년차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주니어 기자들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니어 기자들은 보고배울 만한 선배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합니다.

실제 40대 초반 전후에 많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기도 하고 젊은 기자들만 현장에 투입되는 분위기 탓도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이 각자의 분야를 개발해 열심히 뛰는 ‘엉덩이 가벼운’ 21년차 즈음의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편집자주>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직함이 많다. 논설위원, 노동전문기자,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공인노무사 등. 1992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강 기자는 24년차인 지금도 활발하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기자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한국기자상’을 네 차례나 받았다. 그 중 두 개가 노동 관련 주제다. 

노동 분야에 특별한 사명을 갖고 기자가 됐을법한 인상을 주지만 그는 “고백컨대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왔던 건 아니”라며 “당시 삼성 월급이 50만원이었는데 경향 월급이 80만원이었다 게다가 대기업은 기업 머슴 사는 느낌인데 언론사는 그나마 자유로울 것 같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가 2015년 민언련 올해의 좋은신문보도 시상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강진구 제공
입사할 당시 경향신문의 소유주는 한화그룹이었다. “재벌신문이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달랐다. 당시 한화 계열사 임원들이 사장으로 내려왔고 국장도 그룹에서 지정했다. 임원들이 재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조중동과는 다른 논조를 추구했기 때문에 양심에 반하는 지시는 없었다.” 

하지만 삼성보다 높은 월급을 줄 수 있었던 한화그룹은 1997년 경향신문에서 손을 뗐다. 임금은 절반가량 삭감됐고 많은 기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럼에도 그는 회사에 남았다. “정론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의나 각오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나만 나가면 미안하니까, 그리고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보자’는 몇몇 선배들의 모습에서 약간의 희망을 봤다.”

사명감이나 기자직의 무거움은 오히려 연차를 더해가면서 생겼다. 그는 기억에 남는 취재로 2005년 ‘이헌재 경제부총리 부동산 투기 의혹 추적보도'를 꼽았다. 1보가 나가기 직전 경제부총리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이 기사가 나가면 오보다. 당신이 1면 오보를 책임질 수 있겠나.” 회사에 전화를 걸어 윤전기를 멈추거나 밀어붙이는 것,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이 기사는 다음날 경향신문 1면을 장식했다. “기자실에 갔더니 다른 회사 기자들이 나를 동정했다. ‘이 부총리가 어떤 사람인데’ 라는 거다. 아무도 내 기사를 받아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6보까지 썼고 결국 이 전 부총리가 사퇴했다. 혼자 작두 위에 선 무당의 기분이었다. 믿을 건 팩트와 나 자신뿐이었다. 그때 기자로서 조금 성장했다.” 

▲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사진=미디어스 제공
노동에 천착하게 된 건 2012년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딴 이후다. 당시 그는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기자 최초로 노무사 자격증을 땄다. 한국에 노동자가 1700만 명인데 여행, 건강, 머니 섹션은 있으면서 노동섹션이 없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엉덩이가 무거워진다’고들 하는 20년 차에 그는 노동을 전담하는 기자가 됐다. 

사실 언론사에서 노동은 중요한 분야로 여겨지지 않는다. 품은 많이 드는데 돈은 안 되기 때문이다. “정치나 경제는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광고주로 대표되는 경제권력이 신문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노동 담당 기자들은 ‘내가 아니면 쓸 사람이 없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이자 논설위원이지만 언론환경은 24년 전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변했다. 그는 연차가 차면서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젊은 기자들의 경우 쏟아지는 출입처 보도자료를 처리하기도 힘겨운 상황이다. 강 기자는 이를 “이 시대의 언론탄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전문기자답게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노동이 소외되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강 기자는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기자들은 어느 것이 더 가치있고 무가치한지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내던져지고 있다”며 “기사는 클릭수를 높이고 광고주에게 어필하기 위한 컨베이어벨트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열악한 현장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작은 기사 하나라도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소스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보다는 여론형성을 조성하는 ‘공공재’로서 기사의 역할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며 “당장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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