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백남기 농민 ‘살인미수 사건’은 첫 삽만 뜬 채 수사가 중단됐다. 지난해 11월18일 고발이 이뤄진 지 6개월이 지났으나 고발인 조사를 끝으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증거는 충분하다. 당시 현장의 사진, 영상, 각도별로 찍은 경찰 살수차 CCTV 영상까지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이미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1500여 명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700여 명을 사법처리한 검찰이다. 고의로 수사를 미룬다는 의심을 하는 게 상식적인 상황이다.

백도라지씨는 지난 반년 간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직장과 서울대병원을 오가면서도 각종 기자회견, 문화제 자리도 지킨다. 매주 일요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백씨는 지난 15일에도 같은 자리에 섰다. 백씨는 “형사고발, 헌법소원,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 등 할 건 다 한 상태”라며 “지금은 20대 국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왜 수사를 안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백씨가 1인 시위를 하는 곳은 경찰청에서 직접 파견 나온 경찰이 경비를 맡고 있다. 경찰은 ‘안전 유지’를 명분으로 백씨의 1인 시위 활동에 간섭해왔다. 가방을 열어보라고 요구하거나 백씨에게 말 거는 사람을 찾아가 ‘어떻게 왔나’, ‘아는 관계냐’고 캐묻는 등 “담당 경찰이 돌아가면서 괴롭히는 식”이다. 청와대·경찰청에서 백씨를 만나러 온 관계자가 있었냐는 말에 그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 매주 일요일 오후 백도라지씨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15일 1인 시위를 하는 백도라지씨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괴롭히는 경찰은 있지만 정작 수사에 나선 경찰은 없다. “6개월 넘게 수사가 진행 안 되는 사건이 한국에 또 있을까요?” 백씨가 가장 답답한 지점은 검·경 수사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그는 검찰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에 검찰 고발을 알아보았지만, 고발인 조사를 한 경우 직무유기로 고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기관이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는다면 기댈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국회 청문회다. 20대 국회 개회를 앞둔 시점, 백씨도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 대책위)’와 함께 직접 당선인들을 만나러 나섰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김현권 농민 비례 당선인, 표창원 당선인, 전남 보성 지역구의 황주홍 국민의당 당선인과 박주선 의원 등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보태주고 있다면서 “청문회에 가장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직접 해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라 말했다.

숨겨진 사실들, 언론에게 듣고 싶다

사안이 장기화하며 백남기 농민의 일도 서서히 여론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형국이다. 백씨가 힘든 상황에서도 언론의 취재에 부지런히 응하는 이유다. 그러나 백씨에게 언론은 그만한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1일 국회 청문회를 촉구하기 위해 백씨는 국회 정론관을 찾아가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를 보도한 ‘종이신문’과 방송사는 찾기 힘들었다.

“기자들이 수시로 진행 상황을 물어보지만 ‘새로운 게 없어서 기사를 못 썼다’고 한다. 국회까지 가서 청문회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건 새로운 소식이 아니냐” 지난 6개월간 언론의 조명을 받아온 백씨는 “언론은 (피해자가) 우는 사진을 찍는 것에 관심이 많은 걸까. 대상화가 심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정보를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 백씨는 “언론으로부터 듣고 싶다”고 지적했다. 왜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지, 서울경찰청이 자체적으로 꾸린 진상조사단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담당 검사가 왜 바뀌었고 검사의 이름은 무엇인지 등 백씨가 알아야 함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이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 언론이 좀 더 어려운 취재를 해서 알려줬으면 좋겠다”면서 “‘국가가 시민을 공격해도 되는가’, ‘해결이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기사도 써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 백남기 농민의 밀밭.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경찰청장 파면하고 책임자 감옥 보내야 해”

청와대의 사과, 강신명 경찰청장의 파면, 물대포 진압과 관련된 책임자 처벌 등 백씨의 요구는 지난 반년 전과 다름이 없다. 그는 “수사 촉구를 강조하고 있지만, 수사가 돼도 기소가 안 되면 어떡하나. 기소됐는데 무혐의가 나오면 어떡하냐”며 “우리가 바라는 건 처벌의 단계로 수사가 돼야 하고, 그 처벌도 마땅히 받아들일 정도가 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올해 8월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백씨는 “(용산참사 책임자 서울경찰청장이) 파면이 아니라 사퇴해서 아무도 기소가 안 됐지만, 그래도 사퇴라도 했다. 강신명은 그조차도 안 하고 있어서 더 끔찍하다”면서 “파면이 맞다고 생각하지 임기를 다 채우고 끝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기관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의무를 외면하는 가운데 백남기 농민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백씨는 “너무 오래 누워 있으면 장 마비가 올 수 있는데, 지금 배변이 원활하지 않아 관장이 잘 안 듣는다. 장 마비로 인해 장이 터지면 생명이 위급할 수 있다”면서 “코로 죽을 넣고 있었지만 그만두고 현재 수액으로 조절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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