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이 재임시절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보도에 간섭 또는 간여했다는 폭로가 담긴 이른바 ‘김시곤 비망록’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진 권력의 압력이 누가 보도국장에게 어떤 주문과 지시가 있었는지 그 일단이 구체적인 일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BS 내부에서는 ‘김시곤 비망록’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지난달 12일 자신의 징계무효확인소송 재판부(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에 국장업무일일기록(비망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이 비망록엔 ‘사장이 국정원 댓글 단독 리포트 빼라 지시’, ‘기계적 중립마저 포기하라 지시’, ‘박근혜 대통령 리포트는 앞쪽으 전진 배치 또는 수를 늘리라 지시’, ‘이정현 홍보수석이 박 대통령의 청와대 행사 리포트가 맨뒤에 배치되자 항의전화’ 등의 기록이 담겨있다.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13일과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시곤 비망록’에 대해 “과거 이런 것이 공개된 적이 없다”며 “KBS나 다른 방송,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권력에 의해 기사가 왜곡되거나 누락, 삭제되거나 은폐될 때 외압이 있었음을 느끼지만 구체적인 과정을 잘 모른다. 당사자가 얘기를 하지 않고, 은밀한 루트를 통해 들어오곤 한다. 하지만 이번엔 보도국장의 지위가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 본부장은 “보도국장이라는 지위에서 작성한 비망록이자 기록이기 때문에 재판부도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 인정해서 (사장의 보도 개입 또는 간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며 “회사측인 길환영 사장의 주장과 맞춰봐도 신빙성이 있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력이 어떻게 KBS 공영방송의 방송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었는지 드러났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전했다.

▲ 김환균(왼쪽)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16일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송법 위반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진=조현호 기자 chh@
특히 이 비망록과 같은 형태의 메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지난 2014년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당시 사장의 보도 독립성 훼손 사례를 처음 폭로했을 때부터 일부 알려지기도 했다. 성 본부장은 “2014년에도 ‘당시 메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김 국장이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 본부장은 “이렇게 (KBS 뉴스제작과 편집과정에)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비망록을 통해) 보면서 굉장히 참담하다”며 “‘(KBS 뉴스가) 이렇게 유린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길환영 때만 그랬겠느냐”며 “길환영 사장이 연임을 앞두고 있었고, 이후 조대현 고대영 사장 이어지도록 항상 당시 사장들이 연임을 목표로 해왔기 때문에 단지 과거 어느 시절의 한 사례로만 치부될 수 없다. 현재에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걱정이 된다. KBS 보도에 대한 평가가 나아진 면이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성 본부장은 “비망록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그동안 걱정됐던 권력에 의한 압력의 프로세스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라며 “김 전 국장에 대한 징계가 정당한가 무효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장이 방송독립성을 침해하고, 정치권력을 쥔 자들이 어떻게 외압을 행사했는지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평했다.

성 본부장은 “지나간 사람에 대한 문제를 삼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재발되거나 현재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고와 경각심을 갖겠다는 것”이라며 “책임을 묻는 행위를 안한다면 책임방기에 해당하므로 그런 면에서 끝까지 추적하고 책임을 물어 시금석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새누리당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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