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최근 법정에 제출한 보도국장 시절의 이른바 ‘비망록’(국장업무일일기록)과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길환영 전 사장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16일 오전 길 전 사장과 이 의원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모두 KBS 사장과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시절 KBS 보도에 부당하게 개입·간섭해 ‘법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된 방송법 4조 2항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길 전 사장이 2013년~2014년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오후 5시를 전후로 매일 9시 뉴스 큐시트 전송을 지시하고 이를 받아본 뒤 ‘국정원 댓글 리포트를 빼라’, ‘대통령 관련 리포트 순서를 앞쪽으로 배치하라’, ‘해경비판을 자제하라’며 김 전 국장 비망록 및 기자회견 폭로내용을 들었다.

이들은 “길 전 사장이 KBS 업무총괄자로서 뉴스 큐시트를 자유롭게 받아볼 수는 있으나 실무자의 취재 및 제작 내용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수정해서는 안된다”며 “길 전 사장은 KBS 임직원들의 인사권자로서 단순한 의견제시라도 실질적으로 강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므로, 뉴스 보도순서·배치·자막·내용의 수위에 대한 의견 제시는 곧 KBS 보도본부의 독립성 침해이자 방송편성에 위법하게 개입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환균(왼쪽)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1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현관앞에서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고발장 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chh@
김시곤 전 국장이 길환영 전 사장의 개입에 대해 “‘뉴스편집의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였을 뿐 아니라 방송법이 규정한 ‘공정성’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었음”이라고 평할 만큼, 길 전 사장은 무리하게 9시 뉴스 보도에 개입했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이정현 의원에 대해서도 이들은 정무수석 및 홍보수석 재직 시절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 방미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하는 등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방송편성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부당하게 간섭했다고 지적했다. 김시곤 전 국장은 비망록에서 이 의원의 간섭 사례를 아래와 같이 기재했다.

-2013년 5월13일 윤창중 사건 속보를 1~5번째로 편집한 것에 대해 전화를 걸어 ‘대통령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

-2013년 10월27일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을 문화부성 아이템으로 해석해 뉴스9 맨 마지막 순서(백톱) 16번째로 편집했으나 당일 저녁 무렵 이정현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아리랑 공연이 맨 뒤에 편집된 것은 문제가 있는 아니냐’고 항의

이를 두고 언론노조는 “이 전 수석이 2013년 2월 19일부터 6월3일까지 정무수석을, 6월3일부터 2014년 6월8일까지 홍보수석을 역임해 총 1년4개월여 간 청와대 수석으로 재직한 기간을 고려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며 “KBS 보도국 임원 및 당시 정치부장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경우 추가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2013년 브리핑 장면. ⓒ 연합뉴스
이들은 “비망록 내용과 같이 실제 내용 또는 순서 변동의 결과에 이르지 않더라도 이 당시 청와대 수석의 직위가 주는 영향력으로 인해 방송사에 단순히 의견만 제시해도 방송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압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이 전수석이 방송편성에 구체적인 주문 또는 항의를 하는 것은 방송법 4조 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어떠한 형태의 규제나 간섭’에 명백히 해당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길 전 사장과 이 전 수석에 대해서는 앞서 KBS 기자협회 및 언론사회단체가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 직후인 2014년에 고발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이번에 핵심 참고인인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비망록이 확인되고 하급심이지만 법원에서 방송편성 개입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증거불충분으로 종결할 수만은 없으므로 수사과정에서 이들의 죄증이 확인되면 엄벌해달라고 이들은 고발장에 썼다.

성재호 KBS본부장은 이날 고발장 접수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사장에게 고발장을 낸 이유는 공영방송 망쳐놓고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관행에 경종 울리기 위함”이라며 “이정현의 경우 MB 정부 이후 정치권력이 낙하산 사장 및 선거특보 사장 임명 등 지속적으로 시도한 공영방송 장악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독립성 침해할 수 없다는 법정신 조항에 따라 고발한 것이며, 이후로 몇 번의 이런 고발이 예고돼 있다”며 “정부가 언론자유에 대해 어떻게 앞장서서 해쳤는지 전모를 밝히는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며 “길환영 사장 재임시절 저질렀던 방송독립성 훼손에 대해 사법기관이 의지 갖고 밝혀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언론의 자유는 그 어떤 것의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며 “민주사회에서 본질이 돼야 한다. 언론을 수단으로 하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길환영 전 KB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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