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의혹을 증명한 검증보고서가 발표됐다. 지난해 2월 제기된 표절 의혹이 최초 확인된 것으로, 다른 학자의 논문을 ‘복사 수준’으로 표절한 사실과 독창적 논지를 인용없이 표절한 사실이 해당 논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고서다. 보광스님 박사학위 논문이 공식적인 표절 심사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표절 검증 작업에 함께 한 연경불교정책연구소는 지난 14일 A4 기준 36쪽으로 구성된 ‘한태식(보광스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검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논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3, 4장 233쪽 중 100여 쪽을 우선 검토한 것으로 원본으로 지목된 논문과 직접 대조 작업을 거쳐 표절 정황을 제시했다. 연구소는 익명의 불교학자 5인이 지난 1월부터 검증 작업에 착수했고 남은 133쪽에 대한 검증 작업도 계속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보광스님은 일본 1989년 북쿄대학에서 ‘신라 정토사상의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검증 보고서는 해당 주제의 선행 연구서인 미나모토 히로유키의 ‘신라정토교의 특색(1978)’, 에타니 류카이의 ‘정토교의 신연구(1976)’, 안계현의 ‘경흥의 미타왕생사상(1962)’과 ‘신라시대 정토왕생사상사 연구(1974)’ 등을 중심으로 검증 작업을 거쳤다. 박사논문의 핵심 개념인 ‘십념론’과 관련해서는 다른 논문의 독창적 논지를 출처 표시없이 인용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연경불교정책연구소는 동국대학교 대학원학생회, 교단자정센터 등과 함께 지난 10일 보고서 일부를 공개하며 논문 표절 재심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원본 보고서엔 10일 공개된 부분 외에 더 많은 표절 의혹 사례가 담겨 있어 의혹 수준이 더 광범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지적은 ‘복사 수준’의 문장 도용이다. 보고서에 실린 보광스님의 논문과 기존 연구서의 좌우대조표를 보면 조사, 쉼표·마침표, 심지어 각주의 위치까지 선행 연구 논문과 동일한 문장들이 다수 발견됐다. 가령 보광스님의 논문 379쪽의 6~14번째 줄과 미나모토의 연구서 14쪽 8~15번째 줄을 비교하면 문헌 명칭이나 대명사 등을 제외하면 8줄의 문장이 거의 동일하다.

▲ 검증보고서 3쪽. 미나모토 히로유키의 '신라정토교의 특색(1978)'과 보광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비교분석한 결과다. 사진=검증보고서 캡쳐
▲ 보광스님의 박사 논문 381쪽 2째줄~10째줄과 미나모토의 저서 17쪽 17째줄~18쪽 12째줄까지 문장이 같은 부분을 표시해 놓은 자료. 사진=검증보고서 캡쳐.

원저자의 독자적인 의문점과 견해가 제시된 문장까지 출처 표기없이 인용한 사례도 수차례 발견됐다. 미나모토의 연구논문 17쪽~18쪽에는 신라 정토사상의 핵심 개념인 ‘십념’의 기원에 대해 그가 최초로 제기한 학설이 나오는데 보광스님은 이를 출처를 명기하지 않고 그대로 차용했다.

이처럼 핵심 논지를 무단 도용한 사례는 미나모토 논문과 대조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에타니의 1976년 논문 4편, 안계현의 연구서 2권과의 비교에서도 발견됐다. 특히 보고서는 보광의 박사 논문 386쪽 15번째 줄부터 다음 장 12번째 줄까지가 에타니의 1976년 논문 ‘제사(諸師)의 십념론’ 101쪽 9번째 줄부터 103쪽 1번째 줄까지와 절반가량 동일한 데 대해 “특히 마지막 부분은 에타니의 독자적 소감이 진술된 곳인데 비유까지도 자기견해인 것처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학자적 양심까지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 검증보고서 11쪽. 에타니 류카이의 기존 연구서와 비교검토한 결과다. 사진=검증보고서 캡쳐.

‘도표 무단 도용’도 다수 발견됐다. 보고서는 보광의 박사논문은 한국학자 안계현이 선행연구에서 제시한 도표 총 16건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도표는 상당한 정보와 연구결과의 요약이므로 도표들의 배치 구도는 논문의 전반적인 서술구조와 방향을 결정한다”며 “(안계현은) 관련 도표들이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과정을 통해 정리한 것임을 거의 매번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보광의 박사논문에 실린 도표가 안계현의 도표와 행렬 방향만 다르거나 두 개의 도표를 하나로 합성했기 때문에 달라 보일 뿐이지 내용과 구성이 거의 같다고 주장했다. 일부 도표는 안계현의 도표와 동일하면서 일부 내용이 첨가된 형식을 띠었으나 보고서는 “이런 경우에도 원자료 출처를 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도표 중 인용 출처가 명시된 표는 없다.

▲ 검증보고서 29쪽. 논문을 검토한 측은 출처 표기없이 인용된 표가 16개라고 주장했다. 사진=검증보고서 캡쳐

“27년 전 연구관행에 현재 기준 적용 어려워… 전체적으로 인용·정리했다는 언급 있어”

이와 관련해 동국대학교 홍보팀은 27년 전의 학계 관행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홍보팀은 해명 보도자료를 내 “27년 전에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는 연구자의 업적을 검증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연구자의 윤리규정 등도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면서 “27년이나 지난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겠다는 것은 일반적인 학계의 관행을 벗어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위”라고 밝혔다.

홍보팀은 27년 전의 연구환경을 강조하며 “일본의 경우 2000년대까지 컴퓨터 조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청타라는 방법으로 논문이나 저서가 출판됐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 속에 누락이 발생할 소지가 더 많다”면서 “한 문단 한 문단 인용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누구의 저서를 요약 정리했다는 언급을 대신했다”고 해명했다.

보광스님 또한 15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보고서가 언급한 부분) 두세 줄 뒤에 출처가 있는데 보고서는 그것을 빼버리고 앞에 것만 해놓고 표절이다 한 것이 있다”면서 “전체 논문집을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보팀은 “다른 연구자의 업적 인용을 모두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은 지적받을 수 있는 문제이지만, 논문의 본래적 학술적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27년 전 논문이라 표절 심사 못한다는 붓쿄대학, 거짓말 의혹?

붓쿄대 연구공정통괄관리책임자인 나카하라 겐지 부학장이 지난해 5월22일에 보낸 공문을 해명자료로 첨부했다. 나카하라 부학장은 "'붓쿄대학연구공정관리규정' 제12조(신청의 책무)에 따르면 신청은 해당 신청과 관련된 사실 발생일로부터 5년 이내에 해야 하므로, 금번 신청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보광스님 박사 논문 표절 시비 논란이 처음 불거졌던 시기 동국대가 붓쿄대학에 박사 논문 표절 심사를 의뢰한 데 대한 회신이다.

▲ 2015년 5월22일 붓쿄대학 연구공정통괄관리책임자 나카하라 겐지 부학장이 동국대학교 총장에게 보낸 '조사의뢰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회신 공문. "본교가 2015년 3월24일 접수한 조사의뢰에 대한 검토결과를 회답드립니다. 본교 규정 '붓쿄대학연구공정관리규정' 제12조(신청의 책무)에서는, 신청은 해당신청과 관련된 사실 발생일로부터 기산하여 5년 이내에 해야한다 함에 근거하여, 금번 신청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가 쓰여있다. 사진=동국대 해명자료

연구소 측은 보광스님의 해명을 전면 반박했다. 논문 검증에 참여한 김영국 소장은 붓쿄대학 회신 공문 내용을 직접 확인한 결과 해당 규정엔 ‘5년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소장은 “붓쿄대학과 일본 문부성 자료를 다 검토했으나 ‘5년’ 규정은 찾지 못했다. 매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조만간 붓쿄대학을 직접 방문해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27년 전에 발표했든 아니든 표절은 표절이다. 27년 전엔 인터넷 같은 게 없어 표절을 알기 힘들었을 뿐이지 당시에도 남의 논문을 도둑질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면서 “떳떳하다면 표절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야지 ‘27년 전 논문이다’, ‘5년 이내 신청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라고 해명하면 결국 표절 시인한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논문 표절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연경불교정책연구소, 동국대학교 대학원학생회, 교단자정센터 등은 이달 내로 일본 붓쿄대학을 직접 방문해 해당 논문의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미진한 건 있지만 잘못한 건 없다"
[인터뷰]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 "30년 전 걸 왜… 의혹 제기, 고의성 있다"

보광스님은 검증보고서의 내용이 엄밀하지 못한 데다 일부 출처 표기가 고의적으로 누락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독창적 해석 부분이 선행연구서의 문장과 일치한다는 보고서의 지적도 “대부분이 반론을 제기하는 부분인데, 내 학설을 주장하는 부분만 빼놓은것”이라 비판했다. 표절 의혹이 있는 16개 도표에 대해서도 표절일 수 없다고 해명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저녁 동국대학교에서 보광스님을 만나 논란과 관련된 입장을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를 1문1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검증보고서는 750여 쪽 중 100쪽을 우선 검토해서 동일한 문장을 찾아냈다.

“책을 전부 조사했다. 본문의 주 1198개, 교정본의 주 1018개, 합치면 2216개 각주가 있다. 381쪽에 각주가 없다고 하는데, 378쪽, 381쪽, 383쪽 등을 보면 미나모토 연구서에 대한 주가 쭉 붙어있었다. 이 구절에 없는 것이지 저 구절에 표시했다. 일일이 각주를 붙일 수 없는 거 아니냐.

381쪽을 보면 밑줄 친 문장 다음 문장에서 미나모토 출처가 명시돼있다. 그렇다보니 고의로 누락한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일부는 성경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처럼 누구다 다 쓰는 것, 다른 경전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 문장이 동일한 점에서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학설을 주장하는 부분만 빼고 표절 검증을 한 부분이 많다. 보고서 11쪽, 15쪽이 그런데, 표절이라 밑줄 친 부분 바로 뒤에 ‘그러나’로 시작되는 문장이 나온다. 앞에서 논의된 내용을 부정하고 뒤에서 학설을 주장하는 부분들이다. 그런 점은 다 빼버리고 하나만 얘기하는 것이다.

에타니 선생 논문과 다르게 내 논문은 경전 원문을 다 밝혀놓기도 했다. 그것을 그대로 한자 한자 밝히고 해석했다. 그런 것도 다 빼고 문장이 동일한 것만 (표절이라고) 주장한다.“

- 도표도 선행연구서에 나온 것과 흡사한 게 많다는 지적이 있다.

“보고서 17페이지를 보면 ‘이름 순서만 바꾸고 표절했다’고 말하는데 이름 순서만 바꾼게 아니라 이름을 생존 연대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원효, 법의, 현일, 의적, 경흥 등 법사의 이름을 선배인 순서대로 바꾼 것으로 그 자체로 중요한 성과다.

28페이지 ‘완전일치’ 도표는 사전에도 나오고 어디에도 나올 정도로 기본 상식인 내용이다. 30페이지에 나온 도표 등은 앞 부분에서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요약하는 표다.

보고서는 한 두 부분 첨가한 것만 제외하면 내용이 동일하다고 도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데, 한 두 내용을 보충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연구와 분석의 결과다. 30쪽에 나온 표에 ‘의숙’ 부분만 추가된 표가 있는데, 이는 안계현 선생이 몰랐던 것을 내가 찾은 것이다.“

- 보고서에 미진한 부분이 또 있나?

“보고서는 ‘유심안락도’와 ‘원효’를 동일하다고 보고 논문 표절 의혹 근거로 썼는데, 둘은 동일하지 않다. 틀린 지적이다. ‘쇼라이사래루’라는 단어를 드물게 사용되는 어휘라며 이를 쓴 것을 표절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건 일본에서 드물지 않게 쓰는 말이다. 우리가 쓰는 일본어 한자가 있고 일본에서 쓰는 한자가 있다. 이걸 혼동해서 잘못 지적한 거다.”

- 표절이라는 지적에 대한 입장은?

“부주의했던 것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30년 전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쓴 논문을 고치고 있다. 글자 빠진 것 넣고, 재출판하려고 고치는 중이다. 나로서도 100% 만족한다 볼 수 없지만. 이해해줘야 할 것은 30년 전의 것을 지금 이렇게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느냐.

평생을 공부에 매진한 학자로 살아왔다. 인문학에선 논문 100편을 쓰기 어려운데 지금까지 논문 150편을 썼고 저술은 20권 정도 된다. 총장 나오기 전에는 이런 문제 꺼내는 사람도 없었는데 총장 나오고 나니 여러 허물이 들춰진다. 지금 잣대로 보면 문제겠지만, 30년 전의 그걸로 생각해보면… 어찌보면 상당히 고의성이 있다고 본다. 왜 두 줄 뒤에 주가 있는데, 앞부분만 가지고 얘기하느냐.

평생 학자가 애쓴 이것을 왜 하루 아침에 물거품 만드는지… 내 스스로 내 논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 내가 우리나라 최초의 정토박사다. 미진한 건 있지만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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