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KBS 보도국장에 직접 전화해 박근혜 대통령 관련 청와대 내부 행사 소식이 뉴스 맨 뒷부분에 방송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전화를 걸었다고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KBS 뉴스 배치 순서에까지 관여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이정현 의원은 오래된 일이라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불만 제기는 당연힐 할 수 있는 것이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 의원에 대해 방송법 위반에 따른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국장업무 일일기록’, 이른바 비망록을 보면, KBS는 지난 2013년 10월27일 <뉴스9>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이라는 청와대 내부행사 소식을 뉴스의 맨 마지막 순서인 16번째 리포트로 방송했다. KBS는 이날 이 것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이날 코리안시리즈에서 깜짝 시구를 했다는 내용도 뉴스의 5번째 꼭지로 방송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방송이 나간 뒤 이정현 수석이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고 김 전 국장이 비망록에 썼다. 김 전 국장은 “저녁 무렵 이정현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을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길래 내가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이른바 빽톱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얘기를 정치부장에게 전하자 정치부장은 이정현 수석에게 전화해 ‘앞으로 사장이나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하지 말고 정치부장에게 얘기하라’고 항의했다며 내게 전했다”고 적었다.

▲ 지난 2013년 10월27일 방송된 KBS <뉴스9>
▲ 지난 2013년 10월27일 방송된 KBS <뉴스9>
당시 다른 방송사는 ‘박대통령, 코리아 시리즈 깜짝 시구’와 ‘청와대 아리랑 공연’을 1건으로 묶어 5번째로(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보도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12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뚜렷한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내가 전화했다면 당시 임시 홍보수석을 하고 있었던 때였고, 정치인생 20여 년을 주로 공보단장~홍보수석 등 언론쪽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언론인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알던 언론인이) 그동안 편집국장 보도국장, 사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당시 내 업무가 홍보수석이니 내 입장에서 어떤 정황인지 모르겠으나 아쉬움을 얘기한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게다가 방송에서 이미 나가버렸는데 불만을 토로하면 뭘하냐”며 “아리랑(공연이) 순수한 것인데, 청와대 안에 이례적으로 불러들여 한 것이기 때문에 (뉴스) 앞에서 내줬으면 좋았을 것인데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내가 홍보수석으로서 (청와대의) 언론 심부름을 하는 입장에서 이미 나간 뉴스에 대해 (KBS에) 전화해서 ‘좀 앞으로 내어주지’ 하는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언론창구로서 아쉬움과 불만(을 얘기한 것)”이라며 “(나는) 이를 자연스럽게 한다, 안하는 것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취재를 봉쇄해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도 아니고, 좋은 행사이니 잘 부각시켜달라는 것이 지시냐, 사정과 부탁이지, 들어주고 말고는 언론사 데스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기업이나 행정부처, 일반인이 이런 저런 바람을 얘기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홍보담당자의) 직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내가 전화)했다면 그런 식으로 했을 것”이라며 “내 성격상, 성품상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런 친분있는 언론사 간부에게 그런 정도 아쉬움을 표시할 수 있다. 지금 (해당) 업무를 수행한다 치더라도 그런 사정이나 아쉬움을 친분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 당시 KBS 정치부장으로부터 ‘사장 보도국장에 전화하지 말고 내게 하라’는 항의전화를 받았다는 비망록 내용에 대해 이 의원은 “그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평상시 대화하고 친분관계가 있다면 얘기하는 과정에 국민들이 좋아하는 아리랑에 대통령이 노래 따라부르고 했는데 국민과 더 가깝게 하기 위해 더 좋은 것 아니냐. 그러나 정치부장에게 통화하면 하는 것이고,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공영방송 KBS 뉴스 총책임자인 보도국장에게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전화해 뉴스 편집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KBS를 청와대의 홍보방송이나 확성기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례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의원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며 “KBS 수준을 같은 기자가 그렇게 모욕하는 것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KBS 사람들이 그런 취급을 당할 곳이냐”며 “그렇게 모욕해가면서 그런 식으로 하는 언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기도노조가 있고, 구성원이 있는데, 아쉬움 하나 표시했다고, KBS가 당할 기관이냐”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다수의 여당 추천이사들의 제청을 통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지 않느냐는 지적에 이 의원은 “박권상 사장 때나 다른 정권 땐 어땠느냐”며 “이렇게 확대하느냐. 내가 지금도 홍보수석 업무 맡고 있다면 아쉬움을 표시할 것이다. 항상 존중하고 범위를 넘지 않는다. 상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12월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 비판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를 두고 KBS 내부에서는 해당 내용의 사실관계 등 경위 파악에 나서는 움직임도 있다.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의원이 공보역할을 오래하면서 언론이해도도 높고 기자와 친한 것은 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관련 뉴스와 소식이 왜곡됐거나 억울하게 잘못 보도됐을 때 시정요구와 항의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뉴스의 기본적인 편집순서를 ‘어디에 배치해야 한다, 반드시 방송에 나가야 한다, 말아야 한다, 이렇게 나가야 한다, 빼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방송법 4조 2항의 방송독립을 전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성 본부장은 “더구나 그런 일을 잘 알면 더욱 그래서는 안된다”며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비망록 일지에 나온 것처럼, 맨 마지막 편집이 문제라는 식의 불만은 방송 독립성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고발받아 처벌받을 사항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성 본부장은 “현재 길환영 전 사장에 대한 고발장 준비와 함께 이정현 의원에게 확인해서 전화한 사실이 있다면 고발당해야 한다”며 “청와대 수석이든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전화할 수 있으나 정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정치부장이 이 의원에게 당시 항의전화를 했다는 비망록 내용을 들어 성 본부장은 “KBS 뉴스 편집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KBS를 산하기관 구내 방송처럼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항의라고 본다”며 “전화하는 것도 자제하는 것이 맞다. 하고 싶으면 출입기자에게 항의하는 것이 절차에도 맞고 그래야 압력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성 본부장은 “항의 내용이 방송 독립이나 뉴스저널리즘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돼선 안된다”며 “뉴스 순서를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이 사실이면 정치인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범법행위를 하는 것이다. 주목하고 있으며, 법률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0월27일 김진태 검찰총장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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